척추교정부문의 30대 녀성박사

 

김일성종합대학 평양의학대학병원 의사 정성영동무가 지난해 여름 박사의 학위를 받았을 때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한창나이인 37살에 박사가 되여서만이 아니다. 척추교정부문에서 새로운 과학기술적문제를 해결한것으로 하여 학계의 이목을 모은 그의 림상년한이 불과 10년밖에 되지 않기때문이였다.

2008년에 박사원을 졸업하고 병원의 회복치료과 의사로 배치되여 일을 시작하였을 때 정성영동무의 마음은 가볍지 못했다.

환자치료에 지극한 정성을 기울였지만 재발률이 많아 그들에게 생활상불편을 주었기때문이였다.

오래동안의 생각끝에 그 원인이 증상치료에 있음을 파악한 정성영동무는 몇해동안 척추교정과 관련한 최신의학기술자료들을 탐독하며 우리 사람들의 체질적특성에 맞는 교정치료방법을 터득하기 위해 애썼다.

림상년한이 매우 적은 그에게 있어서 척추교정부문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다는것은 사실 힘에 부친 일이였다.

그러나 그는 고심어린 노력을 기울여 국소부위에 대한 교정치료를 위주로 하던 지난 시기와는 달리 아픔을 느끼는 국소부위와 그것의 원인으로 되는 근육 및 척추골에 대한 교정치료를 운동료법과 배합하여 진행하는 새로운 방법을 연구하여 림상실천에 받아들였다. 그로 하여 환자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재발률을 훨씬 낮추었다.

그후 정성영동무는 연구를 더욱 심화시켜 수술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하던 경추 및 요추추간판탈출증, 변형성척추증 등에 걸린 환자들에게 수법 및 운동료법을 적용하여 대지를 활보하게 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환자의 자세를 보고도 순간에 질병상태를 파악하고 대책을 세울줄 아는 의사, 잠간동안의 수법치료로 환자의 상태를 보다 호전시킬줄 아는 의사, 매일 수십명의 환자들이 찾아오지만 언제 한번 웃음을 잃지 않고 따뜻이 돌보는 의사,

이것은 정성영동무가 대학은 물론 병원의 일군들과 종업원들, 환자들로부터 자주 듣군 하는 말이다.

어떻게 되여 오늘과 같은 성과를 이룩할수 있었는가고 묻는 우리에게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30여년전 조국에 귀국한 부모로부터 일본땅에서는 평범한 가정의 딸이 의학대학입학은커녕 중앙병원의 의사로 일할 생각은 하지도 못한다는, 높은 의학과학기술성과로 고마운 이 제도를 굳세게 받들어야 한다는 말을 늘 들으며 성장했다고.

본사기자 방경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