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담당의사, 그 부름을 두고

 

얼마전 강원도에 대한 취재길에서였다.

그때 우리는 영예군인의 건강회복에 바쳐진 한 보건일군의 아름다운 소행에 접하고 도고려병원을 찾았었다.

사연을 알게 된 그는 대뜸 얼굴을 붉히며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저야 그 영예군인의 담당의사가 아닙니까?》

담당의사, 한 영예군인에 대한 치료를 스스로 맡아가지고 10여년세월 건강은 물론 가정생활까지 친혈육의 정으로 세심히 보살펴준 그 뜨거운 정성을 녀의사는 례사로운듯 이 한마디에 담는것이였다.

일상생활에서 너무나 쉽게 들어오던 말이였건만 그때 우리가 받은 충격은 컸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환자에 대한 의료일군들의 정성은 인간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인민에 대한 헌신적복무정신의 집중적표현입니다.》

문득 석탄증산으로 들끓는 어느 한 탄광에서 목격한 사실이 떠올랐다.

그때 탄광에서는 갱입구에서 혁신자들을 축하하는 사업이 조직되였는데 탄부들을 기다리는 사람들가운데는 3명의 의사도 있었다.사연인즉 현장치료대로 동원된 의사는 작업중 팔굽을 다친 탄부가 치료를 받지 않았다고 하면서 따라나오고 탄광병원의 의사는 그 치료는 자기 몫이라고 하면서 달려왔던것이다.게다가 호담당의사까지 검진을 받으러 제때에 병원으로 오지 않은 탄부를 데려가겠다고 하는것이였다.

그들은 저마다 자기가 탄부의 담당의사라고 말하였다.

3명의 담당의사를 가진 행복한 탄부의 모습을 보며 가슴이 뭉클해졌던 그날이 잊혀지지 않는다.

어찌 탄광뿐이랴.저 멀리 백두산기슭의 백암땅에 가면 그곳 사람들이 우리 담당의사라고 정담아 부르는 평양산원 의료일군들의 이야기를 들을수 있고 전력생산의 동음 드높은 발전소에 가면 그곳 로동계급이 늘 잊지 못해하는 김만유병원 의사들의 아름다운 소행을 들을수 있다.

이렇게 온 나라의 곳곳에서 의사들이 환자들을 책임지고 사람들의 건강을 돌보는 사회, 사랑과 정성을 본분으로 새겨안은 미더운 보건일군들이 가꿔가는 아름다운 화원속에서 원산시의 평범한 영예군인도 혁명의 꽃을 계속 피워가는것이다.

하다면 어느 사회에서나 다 담당의사라는 말이 사랑과 정성의 대명사로 되는가.

언제인가 《로동신문》에는 이런 내용의 글이 실린 적이 있었다.

어느 한 나라에서 5살 난 어린이가 병원에서 숨진 사건이 뒤늦게 알려져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켰다.어린이의 병치료를 맡은 담당의사가 약속한 시간보다 환자가 4분 늦게 도착하였다는 당치않은 구실을 붙여 치료를 거절했던것이다.

치료를 못 받고 집에 돌아온 어린이는 담당의사의 비인간적인 행위로 하여 끝내 숨지고말았다.

또 어느 한 나라의 병원에서는 담당의사가 환자를 수술대우에 눕혀놓고 그옆에서 생일놀이를 하는 사진과 동영상이 공개되여 사람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이렇게 사람의 생명이 돈에 의해 좌우되고 사랑과 정성이라는 말이 사전에서나 찾아볼수 있는 단어로 되여버린 사회에서 담당의사라는 말이 어떻게 환자의 생명을 담보하는 대명사로 될수 있겠는가.

하기에 세계의 많은 나라 보건실태가 우려를 자아내고있는 때에 몇년전 세계보건기구 동남아시아지역사무소에서 우리의 사회주의보건제도의 우월성과 생활력에 대한 공감의 표시로 우리 나라 보건성에 보건부문우수상을 수여한것은 결코 우연하지 않다.

담당의사라는 부름속에 비껴있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엄연한 차이가 가슴을 파고들수록 우리의 사회주의보건제도의 우월성을 더욱 발양시키시려 불면불휴의 로고를 바쳐가시는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애국애민의 발자취가 어려와 눈시울이 뜨거워진다.인민보건사업을 끊임없이 발전시켜나가는것은 어제도 오늘도 래일도 영원히 우리가 틀어쥐고나가야 할 국책이라고 하시며 인민사랑의 새 전설을 끝없이 수놓아가시는 그이의 헌신의 자욱을 따라 현대적인 보건시설들이 도처에 일떠서고 소생의 기적들이 날마다 전해져 인민의 웃음소리는 더욱 높이 울려퍼지는것이다.

담당의사, 의사가 환자를 찾아오고 인간의 생명을 제일 귀중히 여기는 사회주의보건제도의 참모습이 그대로 비껴있는 소중한 부름이다.사랑과 정성을 속성으로 하는 우리 나라 사회주의보건제도의 우월성이 여기에 어려있다.

본사기자 김성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