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답의 길

평안남도교수강습소 지도교원 공훈예술가 리계숙녀성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정녕 수령님은 우리 인민과 어린이들의 한없이 자애로운 어버이이십니다.》

평안남도교수강습소 지도교원 리계숙녀성은 40여년세월 후대교육사업에 깨끗한 량심을 바쳐오고있는 성실한 교육자이다.도안의 보통교육부문 교원들치고 여러가지 과목에 대한 교수방법을 지도하는 그의 높은 실력과 불타는 정열을 두고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일흔을 가까이하고있는 리계숙녀성이 오늘까지 작곡한 아동가요는 백수십편을 헤아린다.

나라에서는 전문작곡가도 아닌 그에게 공훈예술가칭호를 안겨주었다.

하다면 어떻게 되여 그가 아동가요를 작곡하게 되였는가.

리계숙녀성에게는 세월이 흘러도 잊을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 있다.

함경남도 신흥군의 어느 한 산골마을에서 태여난 그는 어릴 때부터 노래를 무척 사랑했다.부모는 재롱스럽게 노래를 부르는 딸애가 기특하게 여겨지면서도 그것을 범상하게 대하였다.

하지만 나라에서는 그의 자그마한 재능의 싹을 찾아 꽃피워주었다.

그는 평양학생소년궁전에서 마음껏 희망의 나래를 활짝 펼치였다.

그가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진행된 공연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났을 때였다.

(이게 꿈이 아닐가.꿈이라면 제발 깨지 말았으면…)

자기 살을 꼬집어보기를 그 몇번, 끓어오르는 흥분으로 그는 온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후 그는 수십차례나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공연을 진행하는 영광을 지니였다.어버이수령님께서는 몸소 무대에 여러차례 오르시여 그에게 어느 학교에 다니는가, 몇살인가 다정히 물어주시며 노래를 아주 잘한다고, 앞으로 좋은 노래를 많이 부르라고 사랑과 믿음을 거듭 안겨주시였다.

정녕 꿈같이 흘러가는 날과 달이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세워주신 사회주의조국의 품이 아니였다면 어찌 산골마을소녀의 희망이 아름답게 피여날수 있었으랴.

따사로운 태양의 축복속에 성장한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원으로, 후에는 교육부문 일군으로 되였다.세월이 갈수록 그는 자기가 받아안은 어버이의 그 사랑을 온 세상에 전하고싶은 충동을 금할수 없었다.

리계숙녀성은 자기의 감정을 오선지에 그려나갔다.

낮에는 낮대로 교육사업을 하고 밤은 밤마다 가요창작으로 지새우군 하였다.

리계숙녀성이 자기의 심혈을 기울여 작곡한 《우리 나라 제일 좋아요》, 《우리 아버지》, 《우리의 해님》을 비롯한 가요들은 어버이수령님께와 위대한 장군님께 기쁨을 드리였다.

그가 창작한 가요 한곡한곡은 그대로 보답의 길에 새겨가는 한 교육자의 아름다운 생의 자욱이기도 하였다.

머리에 흰서리가 내린 오늘도 나어린 학생들의 가슴마다에 수령에 대한 충정의 마음, 조국에 대한 사랑을 심어주기 위해 아글타글 노력하고있는 리계숙녀성.

그는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안고 보답의 길을 억세게 걸어가고있는 이 땅의 수천만 아들딸중의 한사람이다.

본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