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고한 민족애를 지니신 절세의 애국자

 

력사에 류례없는 구출작전

 

주체39(1950)년 7월초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부르심을 받고 일군들이 최고사령부에 도착하였다.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시는 그 어떤 과업이라도 기어이 수행하려는 각오가 그들의 심장을 틀어잡고있었다.그런데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시는 군사임무는 참으로 예상밖의것이였다.《조선봉건왕조실록》원본을 구출할데 대한 임무였던것이다.

일군들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준엄한 전쟁이 한창이던 그 시기 《조선봉건왕조실록》에 대하여 생각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던것이다.

이러한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민족의 귀중한 재보를 우리들이 구원하지 않고 누가 구원하겠는가, 어떤 일이 있어도 꼭 구출해와야 하겠다고 하시였다.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에게 친히 존함이 새겨진 신임장까지 안겨주시고 온갖 조건을 보장해주시였다.

최고사령부의 작전도에 《조선봉건왕조실록》구출로정이 힘있게 그어졌고 해당 기관, 군부대들에서 《조선봉건왕조실록》구출작전을 잘 보장해줄데 대한 조치가 취해졌다.그리하여 전쟁의 그 어려운 나날 한 도서관에서 먼지속에 나딩굴면서 적들의 폭격만행에 언제 불탈지 모를 위험에 처해있던 《조선봉건왕조실록》은 드디여 소생할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구출된 《조선봉건왕조실록》을 전쟁 전기간 최고사령부에 보관하여주시였다.

총포탄이 작렬하고 생사를 판가름하는 전쟁의 동란속에서 진행된 《조선봉건왕조실록》구출작전! 참으로 그것은 력사에 류례없는 일이였다.

 

사라질번 한 왕씨족보와 옥새

 

조국과 민족을 위한 헌신의 로고를 끝없이 바쳐가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 개성시를 찾으신 주체81(1992)년 5월 어느날 이른아침이였다.

80고령의 년로하신 몸으로 잠시의 휴식도 없이 개성시안의 유적유물들을 돌아보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시내에서 떨어진 왕건왕릉을 몸소 찾아주시였다.

제모습을 잃은 왕릉을 이윽토록 바라보시는 어버이수령님의 안색은 몹시 흐려지시였다.일군들을 둘러보시며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왕건은 우리 나라의 첫 통일국가를 세운 사람인것만큼 그의 릉을 잘 꾸려야 한다고 하시면서 왕건왕릉개건에서 나서는 문제들에 대하여 일일이 가르쳐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우리 나라의 첫 통일국가의 력사를 귀중히 여기시며 개성시에 남기신 감동깊은 이야기는 삽시에 날개를 펼치고 온 시내에 퍼져갔다.

꿈만 같은 소식에 접한 왕씨가문의 후손들은 몇밤을 감격의 눈물로 지새우다가 대대로 고이 간직해오던 가보인 왕씨족보와 옥새를 어버이수령님께 삼가 올리기로 하였다.

그 왕씨족보와 옥새로 말하면 고려왕조가 무너진 후 왕씨후손들이 보관해온것이였다.

왕씨족보와 옥새를 보아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시대가 좋으니 참으로 희한한 일이 다 있다고 하시며 일군들에게 그것을 잘 보관할데 대하여 이르시였다.

력사의 이끼속에 자취를 감추었던 왕씨족보와 옥새가 위대한 애국애족의 손길아래 다시 태여난 이야기는 로동당시대의 또 하나의 전설로 후세에 길이 전해지게 되였다.

본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