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땀으로 고향땅을 빛내여가는 참된 주인

신계군 대정협동농장 제8작업반을 돌아보고

 

신계군 대정리는 읍에서 80리나 떨어진 산골에 위치하고있었다.읍으로부터 이어진 도로도 달구지길처럼 좁아지다가 이 산골에서 끝을 맺었다.자연지리적으로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이곳에 2중3대혁명붉은기단위인 대정협동농장 제8작업반이 자리잡고있었다.

작업반은 그 면모가 얼마나 희한한지 저도모르게 연방 감탄이 터져나왔다.

조선식합각지붕을 건듯 떠인 농업과학기술선전실이며 양어장, 집짐승들이 욱실거리는 종합축사, 번듯하게 꾸려진 탈곡장, 산기슭에 아담하게 들어앉은 살림집들, 수천m의 마을길에 가로수마냥 늘어선 과일나무들…

우리는 이렇듯 훌륭한 결실을 안아온 주인공들의 투쟁이야기를 듣고싶어 작업반원들과 마주앉았다.하지만 처음부터 우리의 예상은 빗나갔다.작업반원들가운데서 나이지숙한 한 농장원이 말머리를 뗐다.

《우리 작업반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싶습니다.》

기대가 가득 담긴 우리의 눈길을 바라보며 그는 추억을 더듬었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정일애국주의는 내 나라, 내 조국의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까지도 다 자기 가슴에 품어안고 자기의 더운 피로 뜨겁게 덥혀주는 참다운 애국주의입니다.》

농장원이 먼저 꺼낸 이야기는 토지개량의 나날에 있은 이야기였다.

조성빈동무가 작업반장사업을 시작한것은 30여년전이였다.

당시 대부분이 비탈밭으로 되여있는 작업반의 농경지는 척박하여 알곡수확고가 농장적으로 제일 뒤떨어진 상태에 있었다.작업반건물도 보잘것 없었다.그러다보니 작업반원들은 농사일에 마음을 못 붙이고있었다.바로 그러한 때 농장에 제대배낭을 푼지 두해밖에 안되는 조성빈동무에게 작업반장의 임무가 맡겨지게 되였다.

농사경험도 없었다.작업반원들에 대한 파악도 부족했다.하지만 제대군인인 그는 작업반을 추켜세우는것이 바로 자기가 받은 전투명령이라고 생각하였다.

그가 작업반장사업을 시작한 해의 가을이였다.수확고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실망을 주었다.

조성빈동무는 머리를 들수 없었다.정신없이 포전으로 달려나간 그는 두손으로 흙을 움켜쥐고 몸부림쳤다.

(흘린 땀도 없이 열매를 바라다니…)

다음날부터 그의 일과는 더욱 바쁘게 흘러갔다.이른새벽부터 질통을 지고 앞장에서 거름생산에 나섰다.깊은 밤에도 농업과학기술참고서를 비롯한 책들이 그의 손에서 떨어질줄 몰랐다.그런 속에 어느 포전의 땅은 어느 정도 산성화되고 어느 비탈밭은 무슨 성분이 얼마나 부족한가 하는것을 상세히 기록한 토양분석표가 생겨나게 되였다.

그 토양분석표를 보며 농장원들은 자기 작업반장의 잡도리를 알게 되였다.땅에 바치는 작업반장의 땀과 열정은 마침내 작업반원들의 마음의 문을 열었고 불씨가 되여 애국의 불길을 지펴올렸다.

그가 해마다 포전에 거름도 듬뿍 내고 소석회, 상원카리, 카바이드재도 확보하며 척박한 땅을 개량하기 위해 바친 헌신의 낮과 밤을 다 아는 사람은 별반 없다.그러나 땅은 다 알고있었다.

언제인가 조성빈동무가 작업반으로 오는 화물자동차편에 상원카리를 싣고오도록 부탁한적이 있었다.그런데 작업반에 도착한 그 차에는 상원카리가 아니라 화학비료가 실려있었다.

《세멘트공장의 굴뚝재보다야 화학비료가 몇갑절 나은것이 아니겠소.》

차에서 내리는 일군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한 말이였다.

하지만 조성빈동무의 낯빛은 흐려있었다.

《물론 이만한 량의 화학비료면 한해농사는 걱정이 없을수 있습니다.하지만 우리에게는 화학비료보다 토지개량에 절실한 상원카리가 더 요구됩니다.》

그날 땅에 바치는 조성빈동무의 진심을 알게 된 그 일군은 수백리 밤길을 달려 상원카리를 싣고왔다고 한다.

작업반의 당세포위원장이였던 리용남로인은 말하였다.

《우리가 이렇게 땅을 개량하기 시작한지 다섯해만에는 강냉이를 정보당 10t 수확하고 너무도 척박하여 버림받던 산비탈밭에서는 5t이상의 소출을 거두었지요.》

그때 사람들은 제8작업반이 이룩한 성과를 놓고 기적이라고 하였다고 한다.그것은 진정 작업반장의 불같은 헌신이 안아온 응당한 결실이였다.

그후 지력을 높이기 위한 투쟁이 계속되는 속에 작업반은 해마다 알곡생산계획을 넘쳐 수행하게 되였다.

《반장동무는 정말 한치의 땅에도 정과 열을 쏟는 실천가입니다.그는 작업반원들을 이끌고 몇해어간에 마을을 지나 흐르는 대정천의 수천m구간에 키가 넘게 장석도 쌓고 하천을 정리하였습니다.작업반에 있는 4정보의 논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지요.》

로인의 이야기는 계속되였다.

마을을 지나간 대정천은 상류여서 여느때는 실개울처럼 흐르다가도 장마철에 무더기비가 오면 범람하여 논에 적지 않은 피해를 주군 하였다.

조성빈동무가 수천m의 구간에 장석을 쌓을 결심을 내렸을 때 머리를 기웃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엄청나게 품을 들여야 하는 공사였던것이다.

하지만 조성빈동무의 결심은 드팀없었다.그는 대정천장석공사를 단순히 몇정보의 논을 보호하기 위한 문제로만 생각하지 않았다.조성빈동무는 틀어쥔 삽에 지그시 힘을 주며 불을 내뿜듯 말하였다.

《우리가 딛고선 이 땅이 어떤 땅이요.항일의 선렬들의 넋이 깃들어있고 전화의 영웅들의 피와 땀이 어린 땅인데 전세대들이 오늘의 우릴 보면 뭐라고 하겠소.우리 힘을 합쳐 대정천에 기어이 억년 드놀지 않을 〈성벽〉을 쌓읍시다.》

그는 남먼저 삽을 쥐고 기슭의 바닥을 파내였다.그 긴 구간에 기초돌을 앉히고 장석을 쌓는 공사는 마을이 생겨 처음 있는 일이였다.

하천바닥을 파내고 돌을 쌓느라 작업반장의 손에는 장알이 박혔다.그래도 늘 웃으며 제일먼저 삽을 잡고 제일 많이 돌을 져날랐다.

《그 나날 대정천의 돌은 물론 비탈밭들에 여기저기 널려있던 돌무지들이 말끔히 없어졌답니다.모두 날라다 장석을 쌓았거던요.이제는 끄떡없수다.》

작업반의 산비탈밭우로 펼쳐진 무성한 숲에도 장마철이면 밭이 비물에 씻기는것이 가슴아파 한그루한그루의 나무를 애지중지 심어가꾼 조성빈동무와 작업반원들의 땀이 스며있다고, 해마다 가을이면 열매가 주렁지는 마을길의 대추나무들도, 그리고 《밤동산》이라고도 불리우는 앞산의 밤나무림도 작업반장의 구상속에 생겨났다고 로인은 자랑스레 말하였다.

농업과학기술선전실이며 탈곡장, 종합축사 그리고 수십동의 살림집들이 새롭게 일떠선 사실 등 가지가지의 자랑을 펼쳐놓는 그의 이야기는 끝이 없을상싶었다.다른 농장원들도 이구동성으로 작업반장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으며 이야기를 펼쳐놓았다.

산골농사에서 장훈을 불렀지만 고향땅을 활짝 꽃피우려는 조성빈동무의 일욕심은 나날이 커만 갔다.

우리 사는 마을을 우리의 힘으로!

조성빈동무의 이 호소에 작업반원들은 한결같이 따라섰다.자기 힘을 믿고 제힘으로 앞길을 개척해나가려는 투철한 신념과 의지를 지니면 못해낼 일이 없다는것을 작업반장과 함께 일하면서 실생활로 체험한 그들이였던것이다.

마을의 전망도가 작업반장의 사색속에 그려졌다.하자고 결심하고 달라붙으니 건설자재도 문제로 되지 않았다.자기 고장에서 나오는 석비레가 소석회와 함께 세멘트 못지 않은 건설자재로 쓰이였고 린접리에서 나오는 돌기와가 산골마을의 풍경을 더욱 이채롭게 해주었다.

마을의 집집마다에 수천m의 수도관을 늘이는 공사도 집단의 단합된 힘으로 해제꼈다.

마침내 작업반의 건물과 살림집건설이 완공되여 새집들이로 흥성이던 어느날이였다.

조성빈동무가 소달구지에 나무모를 가득 싣고 동구길로 들어섰다.의아한 눈빛을 감추지 못하는 작업반원들에게 그는 말하였다.

《과일나무를 심읍시다.집집마다 온갖 열매가 주렁지면 우리 마을은 얼마나 아름다와지겠소.그 열매를 따는 후대들은 또 얼마나 좋아하겠소.》

이렇게 말하면서 애어린 과일나무모를 보물마냥 소중히 품에 안는 조성빈동무를 보며 작업반원들은 생각하였다.

(없어서는 안될 사람! 얼마나 돋보이는 인간인가.)

이런 노력이 있어 마을의 집집마다에 사과나무, 배나무, 살구나무를 비롯한 갖가지 과일나무들이 우거지고 아이들이 좋아라 웃고 떠들며 열매를 따는 이채로운 풍경이 펼쳐지게 되였다.

작업반원들의 이야기는 그칠줄 몰랐다.

농산과 축산의 고리형순환생산체계를 확립하여 그 덕을 톡톡히 보고있다는 이야기며 집집마다에서 돼지와 닭, 토끼를 비롯한 집짐승들은 물론 모두가 부림소관리공이 되여 한마리이상의 소를 기르고있는 사실…

* *

조성빈동무와 많은 작업반원들이 조선로동당창건 60돐경축행사와 조선로동당 제4차 세포비서대회, 제2차 전국당초급선전일군대회, 제4차 전국농업부문열성자회의를 비롯한 국가적인 대회와 경축행사들에 참가하였다는 사실은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였다.

그러느라니 도인민회의 대의원이며 사회주의애국공로자인 조성빈동무를 더더욱 만나보고싶어졌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관리위원회에서 돌아오는 조성빈동무가 눈에 띄였다.60나이가 지난 몸이였지만 다부진 체구며 검실검실한 얼굴, 억실억실한 두눈은 우리에게 작업반장이 퍼그나 정력에 넘쳐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정말 산골에서 쉽지 않은 일을 해놓았다는 우리의 말에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우리 작업반원들의 수고가 더 컸지요.작업반장으로서 제가 한 일이 있다면 당정책을 관철하기 위해 노력했을뿐입니다.》

비록 길지 않았지만 그 말이 준 여운은 컸다.농사자랑, 축산자랑, 과일나무자랑, 선경마을자랑…

작업반원들이 우리에게 들려준 그 모든 이야기에는 당정책이 속속들이 슴배여있는것이 아닌가.

우리는 후더워오르는 마음을 안고 마을의 전경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한치의 땅에도 정과 열을 쏟는 불같은 애국이 펼친 제8작업반마을의 전경이였다.

우리의 뇌리에는 이런 생각이 떠날줄 몰랐다.

고향과 조국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헌신으로 심장을 불태우며 대중을 당정책관철에로 이끄는 이런 사람이야말로 우리 당이 바라는 참된 인간이 아니겠는가.

본사기자 신현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