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당이 키운 평남땅의 나어린 애국자들

세찬 불길속에서 나라의 귀중한 산림을 지켜낸 평성시 은정고급중학교 학생들에 대한 이야기

 

평성시내중심에서 순천방향으로 뻗은 도로가까이에 평성시 은정고급중학교가 있다.몇해전에 새로 일떠선 학교여서 사람들속에 크게 알려지지 않았던 이 학교가 세 중학생들의 소행과 더불어 온 나라가 아는 학교로 되였다.

리정덕, 최현일, 서려명학생들,

그들은 학교뒤산에서 뜻밖의 산불이 발생하였을 때 그것을 진화하기 위하여 불길속에 서슴없이 한몸을 내대였다.

그들이 무섭게 번져지는 산불을 끄기 위해 결사적으로 치달아오른 골짜기 바로 옆에 학교소년단림, 청년림이 있었고 반대켠 산기슭에는 평성렬사릉이 있었다.

그들은 15살이였다.리정덕, 최현일, 서려명학생들이 청년동맹원이 된지는 불과 10개월.

심한 화상을 당한 그들의 손에서 위대한 수령님들의 영상이 모셔져있고 청년전위라는 글자가 새겨진 초상휘장들이 나졌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청년들처럼 당과 조국과 인민에게 충실하고 성실하며 순박하고 용감한 청년들은 세계 그 어느 나라에도 없습니다.》

평범한 세명의 중학생들은 례사로운 날, 전혀 예견치 못했던 비상한 정황속에서 이 땅의 새 세대들이 안고 사는 숭고한 지향과 아름다운 정신세계를 산 화폭으로 보여주었다.

나어린 세 청년전위의 모습에 500만 조선청년들의 모습이 비껴있고 그들을 키운 위대한 어머니의 모습이 빛나고있다.

 

* *

 

지난 4월 4일 11시 30분경 평성시 은정고급중학교 뒤산에서 연기가 타래쳐올랐다.수업휴식시간에 운동장에 나왔던 학생들을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된 학교의 일군들은 즉시 전교의 교원들과 고급반학생들을 산불진화에로 불러일으켰다.

수백명에 달하는 남녀학생이 일제히 교실문을 박차고 산을 향해 줄달음쳤다.

잠간사이에 화재가 난 산기슭은 교원들과 학생들로 차고넘쳤다.

아마도 보통때라면 학교에서 그곳까지 살림집들과 터밭들사이로 오불꼬불 뻗은 길을 그토록 짧은 시간에 달릴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것이다.

불길은 다행히 학교소년단림, 청년림쪽으로 번지지 않고 잡관목들이 우거진 골짜기중턱을 톺고있었다.

그들은 안도의 숨을 내쉴 사이도 없이 흙과 물을 뿌리고 삽과 나무가지를 휘두르며 불을 끄기 시작하였다.

센 바람을 타고 올리미는 불길은 산너머 무성한 수림을 위협하고있었다.

얼마나 귀중한 나라의 재부인가.

거기에는 자기들이 애써 심고 가꿔온 소나무며 창성이깔나무들이 자라고있었고 후대들을 위해 아낌없이 바친 아버지, 어머니들의 고귀한 땀이 어려있었다.

자욱한 연기로 숨쉬기조차 힘들고 화염이 이글거리는 가파로운 골짜기를 오르느라 땀이 비오듯 흘러내렸지만 누구도 물러서지 않았다.

위험한 순간에 자기들이 선참으로 초점을 두고 우선시해야 하는것이 무엇인가를 잘 알고있는 교원들은 앞장에서 산불을 진화하는 상황속에서도 연방 학생들을 향해 이렇게 소리쳤다.

《불가운데 들어가지 말라!》

《옆동무들을 보면서 같이 나가라!》 …

그러나 그들은 3명의 학생들이 이미 훨씬 앞에서 필사적으로 불을 끄고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미처 알지 못하였다.

그렇게 15분가량 흘렀을 때였다.갑자기 바람방향이 바뀌면서 골짜기를 휘감았던 불길이 통채로 산아래로 내리쏠리였다.

산전체가 순간적으로 움씰하는것만 같던 그찰나 불길에 휩싸인 형체들이 고급2학년 3반 담임교원 라영복동무의 발치로 련거퍼 굴러내리는것이 아닌가.

뒤이어 울리는 애된 비명소리…

여기저기서 교원들과 학생들이 달려왔다.하지만 목소리만 듣고서는 온몸이 새까맣게 그슬린 그 아이들이 누구인지 분간할수 없었다.

라영복동무가 기적적으로 그들을 알아보았다.

《우리 학급 학생들이다! 현일이! 려명이!》

두 학생은 급히 평안남도인민병원으로 후송되였다.

불길속에 학생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학교의 일군들과 교원들을 바싹 긴장시켰다.

한몸이 그대로 방화선이 되고 방화벽이 되여 떨쳐나선 교원들과 학생들에 의해 마침내 산불이 수그러들자 곧 산불진화에 참가하였던 학생들에 대한 인원점검이 진행되였다.

교장 리명곤동무가 직접 출석부들을 안고 학생들앞에 나서서 한사람한사람 호명하였다.그러는 그의 목소리는 천근만근으로 무거웠고 교원들과 학생들의 가슴은 긴장감으로 졸아드는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토록 우려했던 일은 끝내 닥쳐오고야말았다.

방금전 병원으로 후송된 최현일, 서려명학생들과 한학급인 리정덕학생이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는것이였다.

정덕이는 어디 갔는가?

그를 찾는 애끊는 목소리가 산발을 타고 메아리쳐갔다.

그로부터 얼마후 산불이 타번진 골짜기의 맨 웃쪽, 현일이와 려명이가 발견된 곳으로부터 얼마 멀지 않은 장소에서 정덕이의 시신이 나졌다.

정덕이는 이렇게 갔다.

그때에야 비로소 학교의 일군들과 교원들은 리정덕, 최현일, 서려명학생들이 산불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마을의 오솔길로가 아니라 터밭들을 가로질러 남먼저 화재현장에 도착했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그날 밭이랑마다에 또렷이 나있는 발자국들앞에서 교원들은 오열을 삼키였다.

15살, 인생의 초엽이라고 할수 있는 나이이다.하지만 성큼성큼 내짚은 그 발자국처럼 정덕이는 생을 앞당겨 산것이였다.

어린것의 장렬한 최후를 두고 그의 부모는 물론 온 동리사람들이 처음에는 그 사실을 선듯 믿지 못했다고 한다.상상밖의 엄청난 일이 닥치면 무작정 그것을 부정부터 하게 되는 인간본연의 심리때문만이 아니였다.그들의 눈에 비낀 정덕이의 모습은 책가방을 멘채로 잠자리를 쫓아다니던 동심을 채 버리지 못한 철부지였고 어쩌다 늦잠을 잔 날이면 그것이 마치 어머니의 잘못이기라도 한듯 볼이 부어 등교길에 나서던 어리광스러운 막냉이였다.

그가 불속에 몸을 던진 그 골짜기가 바로 학교청년림과 린접한 곳이고 희생된 그의 손에 위대한 수령님들의 영상이 모셔져있고 청년전위라는 글자가 새겨진 초상휘장이 쥐여져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정덕이가 15살이고 청년동맹원이라는것을 상기하였다.매일 새벽마다 백두산절세위인들의 자애로운 영상을 형상한 모자이크벽화를 찾아 주변관리사업을 하던 일이며 집의 퇴비를 모조리 수레에 싣고 학교청년림으로 간다며 씨엉씨엉 집대문을 나서던 일들이 새삼스레 뇌리를 쳤다.

비록 짧디짧은 생이였지만 한구간한구간, 한토막한토막은 얼마나 아름다왔던가.

지금도 라영복동무는 지난해 어느 가을날 학교에서 등산을 갔다 돌아왔을 때의 일을 잊지 못하고있다.그날 밤이 깊어 퇴근길에 오르려던 라영복동무는 교실에 불이 켜져있는것을 보고 발길을 돌리였다.교실문을 열어보니 정덕이가 홀로 공부에 열중하고있었다.피곤하겠는데 왜 아직 집에 가지 않느냐고 묻자 정덕이는 대답하였다.

《전 오늘 계획했던 수학공식들을 다 외우지 못했습니다.아버지원수님께서는 학생들은 분초를 아껴가며 열심히 학습하여야 한다고 하시였는데 등산을 갔댔다고 어떻게 공부를 소홀히 하겠습니까.》

학습에서 언제나 앞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그의 가슴속에 그런 소중한 지향이 깃들어있었다.그와 함께 밤을 지새우며 학습을 도와주던 라영복동무가 정덕이에게 중학교를 졸업하면 무엇이 되겠는가고 물었을 때였다.

《전 꼭 대학에 가겠습니다.국방과학자형님, 누나들처럼 경애하는 원수님께 기쁨을 드리고싶은것이 저의 소원입니다.》…

최현일, 서려명학생들의 회상에 의하면 학교뒤산에 불이 났다는것을 알고 그곳을 향해 달릴 때 그들사이에서는 한마디 말도 오가지 않았다.한시바삐 불을 꺼야 한다는 하나의 생각이 그들로 하여금 한길을 걷게 하였고 주저없이 불속에 뛰여들게 하였으며 몸에 불이 당기자 약속이나 한듯 위대한 수령님들의 초상휘장부터 안전하게 모시였던것이다.

그들이 새로 일떠선 학교에 입학한지는 불과 2년, 하지만 그들에 대한 교원들과 학생들의 한결같은 평가는 무한히 진실하고 소박하며 고지식한 학생들이라는것이다.

우리 학교를 더 멋있게 꾸리는데 이바지하자며 한밤중에 학교로 달려나와 체육기재를 조립하는 선생님의 발밑에 불돌을 놓아주던 일이며 평성렬사릉을 찾았던 날 한 소년렬사의 영웅적소행에 대한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도 그처럼 살자고 결심다지던 일들을 그들은 잊지 못한다.

리정덕, 최현일, 서려명학생들은 이렇게 한모습이였고 바로 그런 순결무구한 마음이 그들을 친형제처럼 되게 한것이였다.

우리와 만난 학교청년동맹, 소년단책임지도원 권혁준동무는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 학교 학생들의 소행에 접하고 저는 그들의 부모들을 생각하였습니다.정말이지 청소년들에 대한 교양에서 사회교양과 학교교양, 가정교양을 잘하는것이 중요하다고 하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말씀의 참뜻을 다시금 깊이 새기게 되였습니다.》

평안남도인민위원회 아래단위 일군인 정덕이의 아버지는 영예군인이다.그런 아버지를 정덕이는 자랑으로 여기였다.

불편한 몸으로 줄창 집을 떠나 출장길에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영예군인가정에 사소한 불편이라도 있을세라 수시로 찾아드는 많은 일군들과 학교교원들, 동무들의 모습을 보면서 보답이란 무엇이며 조국에 바친 삶이 얼마나 긍지높은가를 새긴 정덕이였다.

정덕이의 집터밭 한쪽에는 양묘장이 있었다.《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온 나라를 산림복구전투에로 부르셨구나.》 하면서 아버지, 어머니가 애써 꾸린 양묘장이였다.그 양묘장의 나무모들에 물을 주고 김도 매주는것이 정덕이의 어길수 없는 일과였다.그러던 어느날 정덕이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 잣나무는 오래 큰다지요?》

《한 20년쯤 자라야 열매가 달릴수 있단다.》

《그럼 내가 어른이 된 다음이군요.》

《그렇구나.이제 아버지, 어머니들이 이 나무모들을 심으면 덕은 너희들이 본단다.그래서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산림조성과 보호사업은 조국의 미래를 위한 최대의 애국사업이라고 하시였단다.》

《아버지, 이 나무에 열매가 달리면 씨를 받아 우리 마을산들에 많이 심을래요.그리고 아버지에게 끼마다 잣죽을 쑤어드릴래요.》

《그래? 우리 정덕이가 용쿠나.》

정덕이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갔다.그러나 고향의 산들을 푸르게 하겠다는 맹세만은 한목숨바쳐 지켰다.

정덕이가 희생된 며칠후 그의 부모인 리봉남, 정옥경동무들이 5 000여그루의 나무모를 가지고 학교를 찾아왔다.

지팽이에 의지해야 하는 몸으로 품들여 마련한 그 많은 나무모를 아들이 다니던 모교의 일군들에게 내놓으며 리봉남동무는 말하였다.

《이 나무모들을 우리 정덕이가 지켜낸 학교뒤산에 심어주십시오.》

애지중지하던 자식을 졸지에 잃은 슬픔을 어디에 비기랴.

하지만 그들은 자식과 헤여진 그길로 도인민병원에 입원한 현일이와 려명이에게 병문안을 갔다.한밤을 꼬박 침상곁에서 지새운 리봉남동무는 그들이 의식을 차리자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조용히 물었다.

《나를 알아보겠니?》

뒤이어 울리는 울음섞인 목소리들…

《알아요.우리 동무 정덕이 아버지입니다.》

《그래 정덕이 아버지이다.울면 치료에 지장이 된다.용감한 학생들이 울다니…》

잠시후 그의 목소리가 다시 울리였다.

《지내보니 치료에서는 신심이 기본이더구나.빨리 일어나야 해.그래야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기뻐하신다.》

터져나오는 울음을 가까스로 참는 두 소년의 눈동자에서 리봉남동무의 영예군인메달이 유난히 빛을 뿌렸다.

하지만 그들은 그 시각 리봉남동무의 거쿨진 손이 나란히 앉아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는 안해의 손목을 꽉 쥐고있음을 알수 없었다.

나라의 산림을 한목숨바쳐 지켜낸 훌륭한 소년의 곁에 이런 부모가 있었다.

리정덕, 최현일, 서려명학생들, 그들부모의 경력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군사복무시절 쇠소리나는 사관장들이였던 정덕이의 부모를 비롯하여 현일이와 려명이의 아버지들도 제대군인이며 조국보위초소에 맏자식들을 떳떳이 세운 인민군대후방가족이다.그리고 정덕이와 현일이의 집벽면들에서는 사회주의애국희생증과 렬사증이 가보처럼 빛나고있다.

그들은 이런 가정에서 성장하였다.

아버지, 어머니의 군사복무시절의 추억을 자장가처럼 들으며 자랐고 전세대들의 사회주의애국희생증과 렬사증을 그려보며 등교길에 오르군 하였으며 그앞에서 학습과 청년동맹조직생활을 마음속으로 총화짓군 하였다.하루하루를 그렇게 살아왔기에 그들은 생명을 위협하는 불속으로 주저없이 걸음을 내짚은것이다.

나어린 중학생들이 발휘한 희생정신은 우뢰처럼 사람들의 가슴을 흔들고있다.

만사람의 심금을 더욱 뜨겁게 울려주는것은 그들의 소행을 귀중히 여겨주고 값높이 내세워준 위대한 어버이사랑이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리정덕, 최현일, 서려명학생들의 소행을 온 나라가 다 알도록 해주시였다.그들에게 김정일청년영예상을, 담임교원인 라영복동무에게 국가표창을 하도록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평양으로 떠나는 소년단대표를 오래도록 바래우며 《저앤 얼마나 행복할가.》 하고 부러움을 금치 못하였던 소년, 몇해전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 학교에서 얼마 멀지 않은 일터를 찾아주시였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그곳으로 달려갔던 중학생,

그처럼 뵙고싶던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지금 자기를 얼마나 뜨겁게 안아주시는가를 정덕이도 알았으면!

지난 5월 12일은 정덕이의 생일이다.

그날 학급동무들이 그의 집을 찾았다.그들중에는 정덕이가 손때묻은 자기의 참고서를 넘겨준 일남이도 있었다.부모의 일손을 돕자며 정덕이와 함께 밭일도 하고 구멍탄도 찍은 녀학생도 있었다.선참으로 집문턱을 넘어선 학생은 《우리 아버지가 잡숫는 산꿀인데 아마 차도가 있을거야.》 하면서 정덕이가 풀어준 꿀물을 마시고 감기를 떨구었다는 그애가 아닌가.

정덕이의 사진이며 그가 남긴 학습장들, 그가 매일 들여다보았을 벽면의 일과표며 《배우자》, 《동지애의 노래》 가사들을 바라보며 추억을 더듬던 그들의 발걸음은 저도모르게 집옆의 과일나무아래로 향해졌다.

그러느라니 그 나무들에 열매가 주렁질 때마다 동무들의 손목을 잡아끌며 《우리 집 과일나무들은 너희들의것이나 같아.》 하던 목소리가 마당가에서 울리는것만 같았고 과일나무들에 올라 가지들을 흔들며 깔깔 웃던 웃음소리가 금시라도 들려오는것만 같았다.

그러는 그들의 귀전에 현일이가 병원침상에서 눈물을 삼키며 한자한자 지었다는 자작시의 구절구절이 뜨겁게 돌이켜졌다.

 

그리운 나의 동무

너 지금 어디 있느냐

네가 한번만이라도 내앞에 나타난다면

이제라도 자리를 차고 일어날수 있으련만

 

그리운 나의 동무

너와 나 우린 언제나 한마음이였지

마음속엔 자나깨나

아버지원수님께 기쁨드릴 한생각이였지

 

그리운 나의 동무

내 비록 침상에 누운 몸이지만

마음은 언제나 교정에, 청년림에 있거니

내 너의 몫까지 합쳐 5점꽃을 더 활짝 피우리

우리 학교 청년림을 더 푸르게 하리

이것은 그만이 아닌 모두의 하나같은 심정이고 불같은 맹세였다.

평성시 은정동의 소박한 단층집, 정덕이가 나서자란 그 집으로 많은 사람들이 끝없이 찾아오고있다.직무도 나이도, 살아온 경위도 서로 다르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나어린 청년전위의 영웅적소행앞에 깊이 고개를 숙인다.

우리는 15살 중학생을 《정덕동지!》라고 부르는 평성석탄공업대학과 평성공업대학의 청년대학생들을 비롯한 도안의 청년들의 뜨거움에 젖은 목소리에서, 청년들의 힘찬 발걸음에 의해 강성할 래일은 더욱 앞당겨지게 될것이다, 언제나 곧바로, 당을 따라 앞으로라는 절세위인의 믿음어린 친필을 심장에 새겨안고 지축을 울리며 나아가는 청년전위들의 힘찬 발걸음소리에서 그의 깨끗한 정신을 읽고있다.

정덕이의 넋은 이렇게 이어지고있다.그는 이렇게 영생한다.

 

* *

 

화상을 당한 학생들을 위해 온 도가 떨쳐나섰다.

도당위원회와 시당위원회의 책임일군들이 직접 병원을 찾아 나어린 환자들에게 힘과 용기를 안겨주고 앞장에서 피부도 바치였으며 수시로 그들의 치료정형에 대하여 알아보며 필요한 대책을 세워주고있다.

평안남도인민병원 일반외과의 관록있는 의료일군들이 환자들의 치료와 회복을 위해 밤낮으로 긴장한 나날을 보내고있으며 평성시청년동맹위원회 일군인 림향미동무를 비롯한 시안의 수많은 일군들과 근로자들, 학생들이 환자들을 위해 물심량면의 눈물겨운 지성을 바치고있다.

피부이식수술이 진행되는 날마다 평안남도인민병원 수술장앞에서부터 정문앞까지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속에는 군사임무수행중인 군인들도 있었고 지나가던 길손도 있었으며 로인도, 나어린 소년단원도 있었다.

그들모두가 환자들의 이름도 얼굴도 모른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리정덕, 최현일, 서려명학생들.

우리 당의 품속에서 자란 이런 미더운 새 세대들이 있어 우리 조국의 앞날은 그리도 밝고 창창한것이다.

본사기자 리경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