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교양의 전초선을 지켜선 당사상전선의 기수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계급교양관 강사들은 인민군군인들과 근로자들의 계급의식을 높여주는 전초선에 서있다는 영예를 가슴깊이 간직하고 맡은 초소에서 자기의 혁명적본분을 다해나가야 합니다.》

한시도 늦출수 없고 한순간도 소홀히 할수 없는것이 반제계급교양이다.

이런 자각을 안고 계급교양부문의 일군들과 강사들이 계급교양의 도수를 높이고있다.당원들과 근로자들속에 투철한 반제계급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불같이 헌신하는 계급교양강사들의 소식을 아래에 전한다.

 

피타는 노력과 강의의 실효

삼지연군계급교양관 강사 박순임동무

 

지금으로부터 12년전 삼지연군계급교양관 강사로 임명받은 박순임동무는 생각이 많았다.

(어떻게 하면 해설강의를 참신하게 할수 있을가.…)

며칠을 두고 방도를 모색하던 그는 대중앞에서 강의를 하자면 응당 화술기량부터 높여야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였다.

다음날부터 그는 강의안을 작성하는 한편 짬시간을 리용하여 부지런히 화술훈련을 하였다.나날이 그의 기량은 높아만 갔다.

그로부터 며칠후 참관자들앞에서 진행한 첫 강의는 실효가 컸다.신심이 생긴 그는 화술훈련에 더욱 힘을 넣으면서 강의를 실감있게 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참관자로부터 한가지 질문을 받게 되였다.해방전 일제가 감행한 만행자료가 더 없는가 하는것이였다.이에 대하여 그는 이미 알고있던 자료를 몇마디 들려주는것으로 그치고말았다.

그날 저녁 그는 생각이 많았다.화술만 좋으면 실효를 높일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이미 있는 자료에 준하여 강의를 진행하군 하던 그였다.그러다보니 자기 고장에 있는 계급교양자료를 발굴하여 교양사업에 적극 리용할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하고있었다.

자기 사업의 빈 공간을 찾은 그는 생동한 사실자료를 찾기 위하여 피타는 노력을 기울였다.

유년시절 아버지에게서 자주 듣군 하던 이야기가 떠올라 그는 어느날 수십리 떨어진 마을로 걸음을 옮기였다.

해방전 왜놈들의 토장이 있었다는 곳이였다.

그날 박순임동무는 나이많은 로인들을 만나보고 험한 산길도 톺으며 생동한 자료를 얻기 위하여 무진 애를 썼다.이렇게 힘들게 찾은 자료들을 해설강의에 보충하였다.

그 실효는 대단히 컸다.너무도 오래전의 일이라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던것이다.

자기의 해설을 들으며 증오로 치를 떠는 참관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박순임동무는 더욱 분발해나섰다.해당 기관과의 련계밑에 찾아낸 새로운 자료도 첨부하여 참관자들에게 이야기해주었다.

계급적원쑤들의 본성은 절대로 변하지 않으며 놈들과는 끝까지 결산을 해야 한다는 귀중한 교훈을 참관자들은 뼈속깊이 새기게 되였다.

박순임동무는 또한 로동자, 대학생, 소년단원 등 나이와 직업이 각이한 대상의 특성에 맞게 강의를 참신하게 진행하는데도 힘을 넣었다.이렇게 노력한 결과 그는 언제 어디서나 해설강의를 능란하게 할수 있는 높은 실력을 갖추게 되였다.

오늘도 박순임동무는 자신을 우리 당의 핵심으로 내세워준 당의 크나큰 신임과 기대에 보답할 일념을 안고 계급교양의 전초선을 믿음직하게 지켜가고있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허일무

 

복수의 의지를 벼려주는 참신한 강의

선천군계급교양관 강사 장룡미동무

 

풍부한 자료가 안받침된 강의!

이것은 선천군계급교양관 장룡미동무의 강의에 대한 군안의 일군들과 당원들, 근로자들의 평가이다.

지금으로부터 10년전의 일이다.

군계급교양관 강사로 임명받은 후 장룡미동무는 첫 강의에 많은 품을 들이였다.새로운 자료들을 찾아내여 강의에 활용하였는데 실효가 컸다.그의 강의를 들은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많은것을 배웠다고 말했던것이다.

그후 그는 공장과 협동농장들에 자주 나가 이동강의를 하였다.그런데 실효는 점점 떨어지고있었다.

무엇때문인가.

그는 어느 한 농장에 이동강의를 나가는 기회에 그 원인을 찾기로 하였다.

강의를 마치고 그는 농장원들과 마주앉았다.그들의 이야기에서 받은 충격은 컸다.처음에는 새로왔는데 반복하여 들으니 감흥이 적다고 하는것이 아닌가.

사실이 그러했다.지난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계급적원쑤들은 반동단체를 무어가지고 선천땅의 이르는 곳마다에서 애국적인민들을 무참히 학살하였는데 그 수는 수백명이나 되였다.그 자료를 매번 강의에 반영한것이 대표적실례였다.

당시에 고증된 이 자료가 처음에는 청강자들에게 큰 충격을 불러일으켰지만 다음번 강의들에서도 반복되다보니 심금을 크게 울리지 못했던것이다.

교훈을 찾은 그는 새로운 자료들을 더 많이 발굴하기로 결심하였다.

그 일이 결코 헐치 않았다.세월이 흘러 목격자, 체험자들이 적어져 새 자료를 찾아낸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였다.발굴한 자료가 있다 해도 그에 대한 고증을 하는 일 역시 많은 걸음을 걸으며 품을 들여야 했다.

그러나 계급교양의 전초선에 내세워준 당의 믿음에 사업실천으로 보답할 일념으로 그는 자료발굴과 고증을 위한 일에 달라붙었다.풍부한 자료의 활용이자 강의의 실효라는것을 잘 알고있었기에 자료를 발굴고증하기 위하여 며칠밤을 새우며 먼길을 다녀오기도 하였다.하나의 자료를 고증하기 위해 몇달동안 고심한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이렇게 그가 발굴고증하여 강의에 리용한 자료는 많다.

장룡미동무의 매 강의가 당원들과 근로자들의 가슴마다에 복수의 의지를 새겨주는 실효성있는 강의로 되게 된것은 선천땅에 어린 생동한 사실자료들을 발굴고증하여 안받침하기 위한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이다.

그는 강의의 실효를 높이기 위하여 여러가지 형식에 알맞는 방법을 적용하군 한다.

이처럼 대중에게 계급적원쑤들에 대한 복수의 의지를 억세게 벼려주자면 장룡미동무와 같이 풍부한 자료와 함께 그에 알맞는 방법을 옳게 적용하여 강의를 참신하게 하여야 한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장철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