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당기앞에 다진 맹세를 순결한 량심과 의리로 지키자

참된 당원들의 모습

광량만제염소 2직장에서

 

년간 소금생산에서 광량만제염소적으로 앞선 자리를 차지한 2직장을 찾았을 때 증발지들의 다짐작업을 맡아 수행한 당원들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당원들은 맹세나 결의만 할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당의 로선과 정책을 받들어야 하며 맡은 임무를 책임적으로 수행하여야 합니다.》

높이 세운 년간 소금생산계획을 앞당겨 수행하기 위하여 당세포총회에서 증발지들의 다짐작업을 지난해보다 열흘 앞당겨 진행하기로 결정하였을 때였다.그날 가장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 사람은 바로 김창길동무였다.결코 다짐작업에서 결정적역할을 수행할 뜨락또르의 가동을 맡은 운전수였기때문만이 아니였다.

중학교를 졸업한 그날부터 수십년세월을 하루와 같이 소금생산에 자신을 묵묵히 바쳐온 그였다.그는 그것을 응당한 본분으로 생각하였다.지난해에 그는 그토록 소원하던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를 지니였다.

김창길동무의 가슴속에는 당원의 영예를 실천투쟁속에서 빛내여갈 열망이 불타올랐다.그래서 그는 작업 첫날부터 현장에서 살다싶이 하며 낮과 밤이 따로 없는 긴장한 전투를 벌려나갔다.대한추위가 한창인 1월에 류달리 바람이 세찬 염전에서 뜨락또르를 운전한다는것이 말처럼 쉽지 않았지만 김창길동무는 당세포결정을 기어이 집행해야 한다는 결사의 각오를 안고 불같이 일하였다.그러던 어느날 뜻밖에도 뜨락또르가 발동소리를 멈추었다.크랑크축이 부러졌던것이다.

그때를 추억하며 부문당일군인 박영권동무는 말하였다.

《직장종업원들모두가 안타까와할 때 직장장동무가 급히 달려와 부러진 크랑크축을 끌고온 손수레에 싣는것이였습니다.할 일도 많은데 이런 일이야 수리공에게 맡겨도 되지 않는가고 하자 직장장동무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저는 직장장이기 전에 당세포에 소속된 한 당원입니다.〉 그의 이 말을 듣느라니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세영동무의 아버지는 소금생산을 위해 애쓰다가 염전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아버지의 사회주의애국희생증을 늘 보며 성장한 오세영동무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갈 곳이 많았지만 스스로 제염공이 되였다.그는 예술영화 《심장에 남는 사람》을 즐겨보군 하였는데 그것은 당세포결정을 집행하는 길에서 꽃다운 청춘을 바친 나어린 처녀당원의 모습이 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보게 하였기때문이였다고 한다.

《당원들이 죽었어두 세포결정서는 살아있어요.전사한 당원들이 돌아오지 못했다구 당결정서를 흥정하자는거예요? 난 그렇게 못해요.당원 한사람이 남아있는 한 절대루 그렇게 할수 없어요.》

처녀당원의 이 말은 그대로 오세영동무의 가슴속에 드놀지 않는 신념으로 자리잡았다.

오세영동무와 김창길동무의 실천적모범에 감동된 직장종업원들도 소금꽃을 하루빨리 피울 열의밑에 맡은 일을 책임적으로 해나갔다.

광량만제염소 2직장의 당원들이 결사관철의 정신으로 피운 첫 소금꽃, 바로 거기에는 영광스러운 조선로동당의 당원들이 어떻게 살며 투쟁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이 비껴있었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정영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