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생의 재부

강원도군민발전소건설지휘부 직속련대 김창록동무

 

눈보라에 싸인 철길은 남쪽방향으로 길게 뻗어있었다.부부인듯 한 두사람이 흩날리는 눈발도 아랑곳없이 역구내에 서있었다.

《집에서 혼자 은정이랑 경복이를 키우느라 힘이 들거요.》

《그런 말은 마세요.난 평양에서 지낸 사흘동안 은정이 아버지가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고있는지 잘 알았어요.집걱정은 하지 말고 부디 건강을 돌보세요.》

서로의 믿음에 찬 눈빛이 오가는 속에 기적소리가 울려퍼졌다.잠시후 녀인을 태운 렬차는 뽀얀 눈보라속으로 사라졌다.

한해전 혁명사적지건설부문 돌격대원으로 입대한 김창록동무와 남편을 만나보기 위해 멀리 금강군에서 올라온 백영숙동무의 상봉은 이렇게 끝났다.그러나 백영숙동무는 미처 알수 없었다.한해만에 이루어진 남편과의 상봉이 후날 여러해동안 애틋한 추억으로 그의 가슴속에 남아있게 되고 그런 추억과 그리움속에 20여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리라는것을.때는 1999년 정월이였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애국은 조국과 인민에 대한 헌신이고 투신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전 어느날이였다.그리 크지 않은 키에 다부진 몸집을 가진 사람이 금강군당위원회의 어느 한 사무실로 들어섰다.

《제 이름을 당원돌격대명단에 넣어주십시오.》

잠시후 군당일군은 그에게 물었다.

《나이가 이제는 40고개인데 꽤 돌격대생활을 할수 있겠소?》

《당원돌격대는 우리 당의 업적을 빛내이는데서 중요한 임무를 맡고있는 돌격대인데 나이가 무슨 대수이겠습니까.》

김창록동무는 이렇게 혁명사적지건설부문의 돌격대원이 되였다.그가 단란한 가정을 떠나 늘 가설건물이나 천막생활을 해야 하는 돌격대원이 된 리유는 다른데 있지 않았다.그의 아버지는 전쟁로병이며 오랜 탄부였다.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늘 이렇게 말하군 했다.

《우리처럼 평범한 로동자가정이 오늘과 같은 행복을 누리게 된게 다 우리 수령님의 덕이 아니겠냐.이걸 항상 잊지 말아라.》

김창록동무에게 있어서 한생 당을 받들어 참되게 산 아버지의 모습은 삶의 거울이고 본보기였다.하기에 그는 수령영생위업을 앞장에서 실현해가는 영예로운 대오의 한 성원이 되여 위대한 수령님을 주체의 영원한 태양으로 받들어모시기 위한 사업에 자기의 지혜와 열정을 깡그리 바치고싶었다.

돌격대원이 된 김창록동무는 얼마 안있어 혁신자로 자랑떨치게 되였다.금수산기념궁전(당시)을 주체의 최고성지로 더욱 훌륭히 꾸리기 위한 사업이 벌어지던 나날 그는 언제나 어렵고 힘든 일의 앞장에 섰다.길이만 해도 수백m인 금수산기념궁전의 천연화강석울타리와 한쪽의 무게가 수십t이나 나가는 돌대문이 우리의 힘, 우리의 기술로 빠른 기간에 일떠서게 된데는 그를 비롯한 석공들의 숨은 노력이 깃들어있었다.

자기의 소중한 노력과 땀방울이 슴배인 기념비적창조물에 위대한 장군님을 모신 그날 김창록동무의 가슴은 얼마나 크나큰 감격과 환희로 파도쳤던가.위대한 장군님의 자애로운 모습을 마음속으로 우러르며 그는 한생 당을 받들어 참되게 살 심장의 맹세를 더욱 굳게 다졌다.

평범한 돌격대원으로 온 나라 방방곡곡의 건설장들에서 날을 보내고 해를 넘기는 그였기에 한해치고 자식들이 아버지의 얼굴을 보는 날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엄마, 언제면 아버지가 집에 오게 되나요?》

자식들은 어머니에게 늘 이렇게 묻군 했다.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그들은 알았다.조국땅 곳곳에 일떠서는 대기념비적창조물들을 보며 아버지가 하는 일이 얼마나 성스럽고 자랑스러운것인가를.

언제인가 김창록동무가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개건공사에 참가했을 때였다.문득 귀에 익은 목소리가 울리더니 여리고 부드러운 손이 그의 두눈을 꼭 감싸는것이였다.잠시후 그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뜻밖에도 딸 은정이가 돌격대원이 되여 아버지앞에 나타났던것이다.

《난 여기에 와서야 아버지를 잘 알게 됐어요.나도 아버지처럼 훌륭한 돌격대원이 되겠어요.》

아버지와 딸은 그날 괘궁정마루의 하늘가에 별이 돋을무렵까지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 김창록동무는 원산청년발전소건설에 참가하게 되였다.10년세월 집을 떠나 생활해온 아버지가 비록 수백리 먼곳이나마 자기 도에서 일하게 되였다는 기쁨으로 온 가족이 설레였으나 그것도 잠시뿐이였다.김창록동무는 더욱 불같이 살며 일했다.그의 가슴속에는 오직 발전소완공을 앞당겨 위대한 장군님께 기쁨을 드릴 일념뿐이였다.그런 그였기에 원산청년발전소에 이어 원산군민발전소건설을 완공한 후에도 다시 어느 한 발전소건설장으로 향했다.얼마전 도당위원회 책임일군은 김창록동무에 대한 자료를 놓고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그는 일군들에게 말했다.

《김창록동무는 당의 웅대한 건설구상을 받들어 20여년간을 성실히 일해온 오랜 돌격대원입니다.이제 얼마 안있어 그가 예순번째 생일을 맞게 되는데 이런 훌륭한 당원들의 삶을 빛내여주고 내세워주는것이 우리들의 본분이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되여 한 돌격대원의 생일상을 차려주는 일이 강원도당위원회와 금강군당위원회적인 사업으로 진행되였다.지난 15일 김창록동무는 동지들과 이웃들의 축하속에 뜻깊은 생일상을 받아안았다.그날 돌격대제복에 빛나는 훈장과 메달들을 뜨거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백영숙동무의 귀전에 언제인가 남편이 했던 말이 다시금 가슴을 치며 울려왔다.

《억대의 재부가 있다 한들 이 훈장과 메달에 비기겠소.나에겐 이게 한생의 기쁨이고 긍지요.》

글 및 사진 본사기자 리남호

 

 

김창록동무(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