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한 정성과 탐구의 열정으로 새겨온 참된 삶의 자욱

선교영예군인철제일용품공장 진료소 의사 최창석동무

 

의사인가, 연구사인가.

이것은 우리가 선교영예군인철제일용품공장 진료소 의사 최창석동무를 취재하는 과정에 우리의 머리속을 맴돌던 의문이였다.

낮에는 의사였다면 밤이면 분명 연구사였기때문이다.

비록 자그마한 진료소 의사에 불과한 그였지만 공장종업원들은 물론 평양시와 지방의 많은 사람들이 그를 알고있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너무도 명백하다.

발자욱은 그 인간을 보는 가장 맑은 거울이라 했다.

최창석동무가 새겨온 지난 수년간의 자욱자욱에서 우리는 인간에 대한 지극한 정성과 탐구의 열정으로 순간순간을 불태워온 우리 당의 참된 보건전사의 모습을 보게 된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조국과 인민의 부름앞에 말로써 대답할것이 아니라 자기 한몸을 내대고 실천으로 대답하는것이 애국자의 자세입니다.》

최창석동무에게는 나름의 인생관이 있다.

《정성의 길과 탐구의 길을 함께 걷자!》

그가 늘 품고다니는 자그마한 수첩에 적혀있는 이 글발이 그대로 그의 좌우명이고 실천이였다.

낮에는 환자치료, 밤에는 약학연구.

그가 의학대학에 이어 약학대학까지 다닌것도 그래서이다.

물론 그가 처음부터 두 길을 함께 걸은것은 아니다.

젊은 시절 청년돌격대생활을 하던 그가 돌연 의사가 될 결심을 품게 된데는 사연이 있다.

그의 가슴속에는 어릴적부터 눈에 배기도록 보아온 어머니의 모습이 간직되여있었다.

어두운 얼굴로 찾아왔다가는 어머니의 손끝에서 밝은 웃음을 찾고 돌아가는 사람들, 때로는 업혀왔던 환자가 손침 한번에 벌떡 일어나 걸어나가는 모습을 보며 최창석동무는 의학이라는 신비의 세계에 자신을 세워보군 하였다.

당에서는 그를 희망대로 인간생명의 기사대렬에 세워주었다.

사회주의보건전사라는 자각을 안고 첫걸음을 뗀 그는 환자치료에 온갖 정성을 쏟아부었다.달과 해를 넘기며 그가 완치시킨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 그의 이름도 점차 알려지기 시작했다.그에게 있어서 완치되여 돌아가는 사람들을 볼 때의 그 기쁨이야말로 의료일군으로서의 행복의 전부인듯싶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불치의 병도 고친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는 한 녀인과 마주하게 되였다.

부인과에 속하는 난치성질병인데다가 원인도 똑똑치 않으니 치료대책을 세우기가 매우 힘든 대상이였다.진찰끝에 최창석동무는 미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말을 뗐다.

《약은 써보되 회복은 기대할수 없을것 같습니다.》

그는 자기의 입에서 어떻게 이런 말이 스스럼없이 흘러나왔는지 생각나지 않았다.환자의 눈가에 고여오르는 눈물을 마주보느라니 마치 모닥불을 뒤집어쓴것만 같아 얼굴을 돌리고말았다.돌아서는 녀인의 구두소리가 비수처럼 심장을 쿡쿡 찔렀다.

그날은 온 하루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밤은 밤대로 그를 괴롭혔다.

환자치료에 정성을 쏟아부어온 자기의 생활을 다시금 돌이켜보았다.

정성, 그것은 보건일군의 생명이다.하지만 오늘날의 정성, 그것이 과연 자기희생적인 헌신, 그 하나만이겠는가.아니다.의학과학의 높은 령마루에 올라설 때만이 인간의 생명을 가장 귀중히 여기는 당의 뜻을 앞장에서 받들수 있다고 떳떳이 말할수 있다.

이렇게 되여 최창석동무는 우리 사람들의 체질과 특성에 맞으면서도 치료효과가 좋은 고려약연구의 길에 스스로 나서게 되였다.

그 길은 결코 헐한 길이 아니였다.치료사업을 하면서 연구사업을 하는것 그자체가 힘에 부친것이였고 누구도 걷지 못한 초행길이여서 성공 또한 기약할수 없는 길이기때문이였다.

치료시간의 짬짬에 약제연구를 하고 또 약제연구를 하다가도 환자치료에 진입하고.이런 그에게 있어서 제일 귀한것이 시간이였다.

그때부터 그의 치료실벽에는 류다른 일과표가 나붙게 되였으며 밤이 없는 생활이 이어지게 되였다.

그러던 어느날 그에게 난치성호흡기질병을 앓고있는 한 환자를 데리고 그의 어머니가 찾아왔다.

《선생님, 꼭 고쳐주십시오.》

환자의 어머니의 목소리는 젖어있었다.아직은 30대 초엽의 구만리같은 젊은이의 모습이 그의 눈에 아프게 안겨들었다.이름할수 없는 중압감이 최창석동무의 두어깨를 지그시 내리눌렀다.

환자의 체질과 병상으로 보아 꼭 고려약으로 치료해야겠다는 결심을 내린 최창석동무는 이튿날부터 환자곁을 떠나지 않았다.그리고 낮에는 환자상태를 보며 치료를 했고 밤에는 약재를 구하기 위해 먼길을 다녀오기도 했으며 약학연구로 새날을 맞기도 하였다.

해당한 고려약조성과 그 배합비률을 찾기 위해 진행한 제약실험, 림상실험은 또 얼마였던가.

그러나 난치성호흡기질병치료에 적합한 고려약제의 개발이라는 성공의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물러서자니 환자앞에 죄를 짓는것 같아 량심이 허락치 않았다.

어느날 이제는 동생처럼 친숙해진 환자가 문득 이런 말을 하는것이였다.

《제 병은 선천적인것입니다.어릴적부터 어머닌 늘 저때문에 속을 썩였지요.선생님, 저때문에 헛수고를 하지 마십시오.지금껏 저를 위해 바쳐오신 선생님의 그 마음이면 저는 더 바랄것이 없습니다.》

순간 최창석동무는 뜨거운것이 왈칵 치밀어올라 그를 꼭 껴안았다.

그 말을 나약해졌던 자신에게 내리는 채찍으로 받아들인것이다.

최창석동무는 비상한 각오를 안고 치료와 약제연구에 더욱 이악하게 달라붙었다.

이것은 불치의 병이라는 진단을 내린 현대의학과 고려의학적방법으로 무조건 고칠수 있다는 그의 신념과의 치렬한 대결이기도 하였다.

그 나날에 그가 본 최신의학과학기술문헌들만 해도 더미를 이루었고 찾아다닌 고려의사들만 해도 수십명이 되였다.이렇게 고심의 날을 이어가며 일하다 어쩌다 집에 들어가는 날이면 어린 아들애가 코를 찡그리며 아버지에게선 약초냄새밖에 안난다며 다가오지도 않았다.

이렇게 몇해동안 매일같이 환자에게 침과 뜸을 놓고 자체로 연구한 고려약을 달여먹였는데 그 정성이 하도 지극해 사람들을 울리였다고 한다.오죽했으면 환자의 할머니까지도 《예로부터 일러오기를 긴병에 효자가 없다고 했지만 난 80이 넘도록 살면서 혈육도 아닌 의사가 남의 긴병에 효자가 되는걸 첨 봤소.》라고 했겠는가.

드디여 바라고바라던 그날은 오고야말았다.

지극한 정성과 피타는 탐구속에 환자의 병상태가 호전되는 기적이 일어난것이다.

또 한명의 생명을 구원하여 사회주의조국을 떠받드는 거목의 뿌리로 자래웠다는 기쁨의 분출인양 최창석동무의 얼굴로는 뜨거운것이 줄줄이 흘러내렸다.

정성과 탐구, 이 두 짐을 지고 이어온 최창석동무의 인생길은 우리 시대 보건일군의 본분이 무엇인가를 다시금 깨닫게 한다.

무거운 짐을 질수록 발자국은 더 깊이 찍혀지는 법이다.

오늘에 이르러 최창석동무의 치료성과와 연구성과는 더욱더 확대되여 난치성질병치료에서는 뚜렷한 효과가 련이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가 완치시킨 사람들속에는 어린이뇌성마비로 심한 언어장애, 기억력장애, 운동장애를 받고있던 소현이라는 어린이도 있다.

부모도 포기한 어린이의 병상태를 보았을 때 최창석동무의 가슴을 쾅쾅 두드린것은 보건일군으로서의 책임감이기 전에 혈육의 정이였다.

최창석동무는 소현이를 아예 자기 집에 데려왔다.밥도 먹이고 옷도 빨아주고 친딸처럼 위해주며 그는 어린 환자에 대한 고려치료에 들어갔다.아직 탁아소, 유치원문전에 한번 가보지도 못한 소현이를 최창석동무는 부모 못지 않게 속을 썩이면서 늘 잔등에 난 혹처럼 달고다녔다.

하지만 1년이 가고 2년이 지나도록 병은 차도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소현이 어머니가 그를 찾아왔다.

딸의 정상을 놓고 흘리는 눈물인지 아니면 딸을 위해 바치는 의사의 수고에 감동되여 흘리는 눈물인지 분간하기 어려운것이 그의 두볼로 흘러내렸다.

《선생님에게 너무 무리한 요구라는걸 알면서도… 선생님, 이 애에게서 엄마라는 말 한마디만 들을수 있게 해줄순 정말 없겠습니까?》

최창석동무는 그 목소리를 보건일군의 심장을 두드리는 시대의 요구로 무겁게 받아들였다.

(당원 최창석, 더욱 분발하라.보건일군이라면 의술보다 마음을 더 바쳐야 함을 가르쳐준 고향의 어머니가, 너를 품들여 키워 내세워준 고마운 조국이 지켜본다.)

또다시 치료사업, 연구사업이 립체적으로 벌어졌다.

몇달후에는 하루종일 흘리던 침이 멎고 차츰 혀가 돌기 시작했고 기억중추가 살아났다.마비되였던 손에 힘이 생기기 시작하자 글자를 그릴수 있게 되였다.최창석동무는 소현이의 방에 가갸표를 붙여놓았다.아직은 철부지라 아픔을 참지 못하는 어린것에게 노래를 불러주면서 치료를 진행했다.그렇게 치료시간이 끝나면 최창석동무의 온몸은 물주머니가 되군 하였다.하지만 그에게는 땀을 들일 사이도 없었다.이어 소현이의 학습지도를 해야 했다.

방안벽에 붙여놓은 가갸표를 가리키며 그는 웨치다싶이 글자를 읽었다.《가, 갸, 거, 겨…》

그러면 소현이는 한글자한글자 힘들게 따라읽었다.《가》부터 《기》까지 목이 쉬도록 열글자를 읽고나면 그는 또다시 구령을 쳤다.《다시!》, 그렇게 하기를 수십번…

연필 하나 바로 쥐는데 열흘이 걸리고 1부터 100까지 수자를 바로 세는데 한달이 걸렸다니 최창석동무가 흘린 땀은 과연 몇동이나 되였을것인가.

하기에 소현이가 난생처음 발음하기 시작하였을 때 그의 입에서 처음으로 튀여나온 말은 《엄마》가 아니라 《선-생-님!》이였다.

그로부터 또 2년이 지나서야 소현이는 다른 아이들처럼 류창하게 말하며 부모도 깜짝 놀랄 새 모습으로 이 땅에 다시 태여날수 있었다.이것은 말그대로 의학계의 기적이였다.

지금 소현이는 학교에도 다니고 마음껏 노래도 부르며 무럭무럭 자라고있다.

아직은 평범한 소녀에 불과한 자기를 위해 의사선생님이 왜 그토록 뜨거운 진정을 바쳤는지 알수 없는 나이이다.하지만 소현이는 알게 될것이다.선생님이 어째서 《아버지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글을 처음으로 배워주었는지, 노래 《불타는 소원》을 불러주며 선생님이 어째서 눈물을 머금군 하였는지.

최창석동무가 이런 지극한 정성과 탐구의 열정을 바치며 난치성부인병, 난치성신경병, 다발성신경염 등을 치료하여 혁명초소에 내세운 사람들이 수십명이나 된다니 그가 걸어온 길에는 얼마나 많은 감동깊은 사연들이 새겨져있을것인가.

지금 공장의 수많은 영예군인들은 친혈육의 정으로 따뜻이 대해주며 자기들의 건강을 위해 마음쓰는 최창석동무를 존경하며 따르고있다.

의족을 한 다리가 불편하여 늘 선반에 기대여 일하던 한 영예군인종업원을 위해 먼길을 걸어 새 의족을 만들어온 이야기며 한 영예군인의 질병치료를 위해 그의 집사람들과 함께 치료방안도 세워보고 원인을 찾아 완치시킨 이야기…

그 나날에 치료성과는 계속 늘어나 사람들속에서 그는 명의로 불리우게 되였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이 치료성과의 비결에 대해 물을 때면 웃으며 이렇게 말하군 한다.

《두 짐을 지라고 사람에게 두어깨가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이 말속에 사회주의보건전사의 드높은 자각이 있고 보답의 일념으로 불타는 인간의 순결한 량심이 함축되여있는것이다.

그렇다.

조국과 인민을 위해 두몫, 세몫의 짐을 스스로 지고 줄기차게 인생길을 다그치는 이런 열정의 인간, 량심의 인간들이 무성한 숲을 이루었기에 우리 조국이 강하고 우리의 사회주의제도가 굳건한것이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오은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