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마시대 전형들의 모범을 따라배우자

불타는 심장의 메아리-나에게 더 많은 직기를 달라!

김정숙평양방직공장 직포종합직장 1직포직장 직포공 리명순동무에 대한 이야기

 

녀인과 만리마!

말을 탄 녀인들에 대한 이야기는 옛적부터 전해오지만 만리마를 탄 녀인이란 말은 아직 그 어느 책에도 없다.

세월을 주름잡아 비약하는 주체조선의 비상한 현실, 만리마시대가 바로 전설속의 신화와도 같은 만리마의 녀주인공을 떠올렸다.

그가 바로 지난 25년간 다기대운동의 봉화를 추켜들고 지구둘레 열바퀴에 해당한 순회길을 달려 기적적인 신기록을 세운 김정숙평양방직공장 직포종합직장 1직포직장 직포공인 공훈방직공 리명순동무이다.

우리 당은 이 땅의 평범한 로동자인 리명순동무를 만리마시대의 전형으로 영광의 단상에 세워주었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오늘의 전인민적총진군에서 혁명성과 조직성이 강하고 무궁무진한 창조력을 지닌 로동계급이 마땅히 주도적이며 선도적인 역할을 담당수행하여야 합니다.》

그는 과연 어떤 인간인가.

40대의 체소한 녀성, 어느때나 별로 눈에 띄우지 않는 그야말로 수수한 녀성이다.그러나 그가 걸어온 자욱자욱을 더듬어보면 결코 평범치 않은 고상하고 열렬하고 순결한 조선로동계급의 참모습이 우렷이 안겨온다.

 

내 한생 나라의 맏딸로 살리

 

가정에선 먼저 태여난 자식을 맏이라 하지만 나라일에선 중요한 전선에 선 사람을 맏이라 부른다.

나라의 맏딸!

이것이 바로 리명순동무의 한생을 관통하고있는 사상정신세계의 핵이다.

가정의 자식은 부모가 낳지만 나라의 철든 맏이는 자신이 낳는다.

리명순동무가 빛내여온 20여년의 날과 달들이 다 말해주고있다.

그의 사회생활의 첫 자욱부터가 인상깊다.

꿈과 희망이 마냥 부풀어오르는 중학교졸업반시절이면 누구나 하늘도 눈아래로 보이는 법이다.하지만 남달리 공부를 잘하여 앞날이 촉망되던 리명순동무가 졸업을 앞둔 어느날 자기의 지망란에 《대학》이 아니라 《방직공장》이란 글자를 세번이나 써넣었을 때 선생님들과 학급동무들의 놀라움은 얼마나 컸던가.

그러나 그것은 즉흥이 아니였다.청년들을 어렵고 힘든 부문으로 부르는 당의 호소에 심장의 박동을 맞춘 새 세대의 량심이였고 신념이였다.

이렇게 되여 그는 평양종합방직공장(당시)에 사회생활의 첫걸음을 내짚게 되였다.

공장에서 운영하는 기능공학교에 들어가 공부하던 그는 졸업을 앞둔 해 7월 민족의 대국상이라는 청천벽력같은 비보에 접하게 되였다.

하늘도 울고 땅도 울던 7월의 그 나날 매일밤 만수대언덕으로 오르는 그의 가슴속에는 결사의 각오가 바위처럼 들어앉았다.

(더 많은 천을 짜서 인민생활향상을 위해 그토록 마음쓰신 어버이수령님의 숭고한 뜻을 기어이 관철하겠습니다.)

이런 비상한 결심을 품은 리명순동무는 공장적으로도 제일 어렵고 힘든 부문인 직포종합직장 1직포직장에 들어갔다.

알고보니 1직포직장은 천리마시대의 영웅들을 배출한 자랑많은 일터였다.리명순동무는 전옥화영웅을 비롯한 영웅직포공들의 모습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군 하였다.그들처럼 살고싶었다.

그러나 욕망이 곧 실천은 아니였다.

그가 직포공일을 시작한 얼마후 고난의 행군, 강행군의 시련이 앞을 막아섰다.전기사정, 자재부족으로 숨죽은 기대들이 늘어났고 식량난으로 기대공들이 하나, 둘 쓰러지기 시작했다.지어 일터를 떠나는 사람들도 있었다.

리명순동무는 눈앞이 캄캄했다.하루에 죽 한사발로 때식을 에우는 배고픔도 견디기 어려웠지만 보다 참기 힘든것은 숨죽은 기대를 돌릴수 없는 괴로움이였다.

그러던 어느날, 그날도 멎어있는 기대앞에서 교대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온 리명순동무앞에 한통의 편지가 놓여있었다.

농촌에 자원진출한 중학교동창생이 보낸 편지는 리명순동무의 마음을 순간에 휘저어놓았다.

헤여진지 2년정도 되였는데 그는 벌써 해마다 알곡생산계획을 넘쳐 수행하는 혁신자로 이름떨치고있었던것이다.거기서는 전기가 안오면 등짐으로라도 물을 길어 논에 대고 비료가 없으면 자체로 부식토를 듬뿍 생산하며 농사를 짓는다는것이였다.

리명순동무는 마음껏 땀을 뿌리며 일하고있는 그가 몹시 부러웠다.

(나의 모든 힘을 깡그리 바쳐서라도 멎어있는 기대를 돌릴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가.하지만…)

리명순동무는 무겁게 펜을 들었다.깊은 밤 홀로 앉아 회답편지를 쓰는 그의 눈가에는 무엇인가 새로운 결심이 어려있었다.

다음날 리명순동무는 어머니에게 자기의 심정을 터놓았다.

《어머니, 이제라도 농촌에 진출하면 어떨가요? 숨죽은 기대앞에서 허무한 나날을 보내기보다 차라리 땀흘리며 농사라도 꽝꽝 짓고싶어요.》

그때 어머니는 어떻게 말했던가.

리명순동무는 그날에 한 어머니의 말이 오늘도 심장의 박동처럼 높뛰고있다고 한다.

《사람이 일을 가려버릇하면 어떤 일도 성공하지 못하는 법이다.아무리 조건이 어려워도 당에서 맡겨준 초소가 아니냐.기대가 죽었다고 정신까지 죽어서야 되겠니.나라에서 큰일을 맡겼으면 맏딸구실을 해야지.》

이것은 처녀시절 《녀자범》으로 소문났던 어제날의 혁신자가 새 세대에게 넘겨주는 귀중한 유산이였다.

다음날부터 리명순동무의 발걸음이 달라졌다.

새로운 눈으로 일터를 보았고 기대를 보았다.그러니 일감은 부지기수였다.정전이 되면 날실정리를 하였고 자재가 떨어지면 온몸이 기름투성이가 되여 직기들을 정비하였다.그리고 밤마다 현장에서 기대다루기가상훈련을 하면서 기술기능을 높여나갔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평양일용품공장을 현지지도하시였다는 소식이 온 공장에 전해졌다.

그 공장은 바로 방직공장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공장이였다.더우기 리명순동무는 매일 그 공장옆을 지나 출퇴근을 하고있었다.

하루일을 마친 그날 저녁 평양일용품공장으로 달려간 그는 정문앞에 오래도록 서있었다.

(어버이장군님께서 혹시 우리 공장에도 찾아오시지 않을가.그러면 나는 무엇으로 그이께 기쁨을 드릴가.)

순간 리명순동무의 눈에서 뜨거운것이 왈칵 쏟아져내렸다.

그는 자기가 어떻게 공장으로 다시 돌아왔으며 어떻게 직장사무실문을 열었는지도 느끼지 못했다.

《우리 작업반처녀들로 돌격대를 무어주십시오.저 멎어있는 기대들을 우리가 맡아 돌리겠습니다!》

리명순동무의 절절한 호소는 끝내 직장일군들의 마음을 움직여놓았다.

이렇게 되여 그처럼 어려웠던 시련의 시기에 1직포직장에는 리명순동무를 비롯한 청년들로 리수복청년돌격대가 무어지게 되였다.

돌격대를 뭇고 돌아온 날 밤 리명순동무는 조용히 일기장을 펼치였다.

《우리 장군님의 맏딸로 한생을 살리라!》

이 글발은 그의 결심이였고 곧 실천이였다.

리명순동무는 우리 장군님께서 나라의 맏아들로 굳게 믿고 내세워주시는 로동계급의 한 성원이라는 드높은 자각을 안고 스스로 무거운 짐을 지고 일어섰다.

일과가 달라졌다.구내에 모신 절세위인들의 현지지도사적비앞에서 결의를 다지고 작업반의 첫 새벽문을 열었으며 분분초초를 불태우며 피나게 일하였다.퇴근길에 오르면 평양일용품공장 정문앞에 서서 하루일을 총화짓군 하였다.말그대로 어버이장군님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찬 화선일과표였다.

그 일과표와 함께 리명순동무가 맡아보는 직기도 8대, 10대, 12대, 16대로 계속 늘어났다.

제자리걸음을 하던 사회주의경쟁도표판의 붉은 줄이 쭉쭉 뻗어올랐지만 그는 만족을 몰랐다.하루빨리 혁신자가 되여 위대한 장군님께서 공장에 찾아오시면 제일먼저 꽃다발을 드리고싶었다.

그런데 그렇게도 바라고바라던 그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영광의 날이 찾아올줄이야 어찌 알았으랴.

리명순동무가 자기 정량의 5배도 넘는 직기를 맡아보던 주체98(2009)년 7월 30일, 꿈결에도 뵙고싶던 위대한 장군님께서 공장에 찾아오신것이였다.

영광의 그날 위대한 장군님께서 새 세대 로력혁신자라고 불러주시며 다정히 손을 잡아주시고 사랑의 한품에 안아 기념사진까지 찍어주실 때 리명순동무는 쏟아지는 눈물을 걷잡을수 없었다.너무도 수척해지신 장군님의 모습을 우러를수록 기쁨에 앞서 죄책감으로 가슴이 미여지는것만 같았다.

위대한 장군님앞에 혁신자라고 나선 자신이 민망스러웠고 지금까지 자그마한 일을 해놓고 장군님 오실 날만을 손꼽아 기다려온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철이 없었는가를 통절히 느끼게 되였다.

일을 더 많이 하여 이제 더는 우리 장군님께서 이런 삼복철강행군길을 걷지 않으시게 하자.

그때부터 리명순동무에게서 혁신자라는 개념이 완전히 달라졌다.

년간계획을 완수하면 또다시 2년분계획수행에로, 그 고지도 점령하면 3년분, 4년분계획수행을 향하여 쉬임없이 달리면서도 자신을 언제 한번 혁신자로 자부하지 않았다.

자나깨나 그리운 어버이장군님께서 오실 날이 아니라 우리 장군님께 더 큰 승리의 보고를 올릴 날만을 위하여 달리고 또 달리였다.

날이 갈수록 직기순회길은 점점 멀어졌지만 그 길은 바로 우리 장군님께로 더 가까이, 더 빨리 달려가는 지름길, 나라의 철든 맏딸로 사는 값높은 인생의 직선주로였다.

이렇듯 리명순동무의 영웅적인 위훈의 바탕에는 《맏딸》이란 두글자가 놓여있었다.

5년전 12월, 김정숙평양방직공장에 찾아오시여 공장에서는 종업원들이 자기 일터를 인민생활향상을 위한 주요전구로, 사회주의수호전의 제1선참호로 생각하고 인민군군인들이 조국보위초소를 지키듯이 자기 일터를 지켜나가도록 하여야 한다고, 공장종업원들이 노래 《내가 지켜선 조국》을 많이 부르도록 하여야 한다고 하신 경애하는 원수님의 뜻깊은 말씀은 리명순동무의 가슴에 얼마나 세찬 격랑을 일으켰던가.

《내가 지켜선 조국》!

자기가 서있는 기대앞이 조국을 지키는 초소라는 숭고한 자각을 안고 그는 심장의 노래를 불렀다.

그것은 리명순동무가 한생토록 부르고 또 부를 인생의 주제가-맏딸이 지켜선 조국이였다.

 

지구를 열바퀴 돈 신기록의 창조자

 

일욕심은 하늘, 일솜씨는 번개!

이것은 리명순동무의 투쟁기풍에 대한 대명사이다.

국가는 매 로동자에게 공정한 하루로동정량을 준다.하지만 리명순동무에게는 스스로 정한 자기식의 로동정량이 따로 있다.

그것이 바로 《나에게 더 많은 직기를 달라!》였다.

이런 글발이 작업장의 속보제목으로 나붙게 된 사연이 뜨겁다.

때는 리명순동무의 신입공시절이라고 했다.

리명순동무가 기대를 더 맡겨달라고 너무 따라다니며 성화를 먹이는 바람에 제일 진땀을 빼군 한 사람들이 직장일군들이였다.처음에는 기능이 어려서 안된다며 두부모자르듯 하던 일군들의 맵짠 목소리도 점차 수그러들었고 나중에는 아예 두손을 들고야말았다.

그때 일군들이 그의 마음을 귀중히 사서 속보의 제목을 그렇게 달았다고 한다.

이런 일도 있었다.

작업장을 돌아보던 당초급일군은 기대앞에서 얼굴을 싸쥐고 울고있는 리명순동무를 띄여보게 되였다.

다가가보니 얼마나 직심스레 천을 짰는지 도투마리가 빈채로 직기옆에 놓여있었다.밤새 실을 다 쓰고말았다는것을 대뜸 알수 있었다.

《명순동문 오늘 계획을 넘쳐 했는데 왜 우나?》

《실이 없어서 그럽니다.》

리명순동무는 울먹거리며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였다.

교대시간을 15분정도 앞두고 기운차게 돌아가던 직기가 뚝 멎었다.

리명순동무가 달려가보니 날실을 다 써서 도투마리가 비여있었다.

그때 운반공이 리명순동무를 다음교대성원으로 잘못 알고 그의 기대옆에 새 도투마리를 날라다놓았다.

리명순동무가 운반공이 날라온 새 도투마리를 직기에 설치하려고 하는데 다음교대작업반장이 달려와 당장 실을 내려놓으라는것이였다.

그것은 자기네 교대작업반에서 쓸 실이라는것이였다.

《반장동지, 교대시작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있는데 기대를 세워놓겠습니까? 그 시간이면 천을 1m는 더 짤수 있지 않겠습니까.》

《명순동무야 이미 하루정량을 초과수행하지 않았소.당장 기대를 세우시오.》

그 어떤 말도 통하지 않았다.오히려 운반공을 불러 도투마리를 제자리에 가져다놓게 하고 작업장을 씽 나가버리는것이였다.

리명순동무는 그 15분이 마음에 걸려 차마 기대앞을 떠날수 없었다.

사연을 알게 된 당초급일군은 리명순동무의 등을 다정히 두드려주며 《반장동무도 명순동무를 생각해서 그랬을거요.앞으로 실이 떨어지면 그땐 날 찾으라구.내가 몇개라도 날라다줄테니까.》 하며 껄껄 웃었다.

리명순동무의 얼굴에도 언제 그랬던가싶게 웃음꽃이 피여났다.

자기에게 맡겨진 로동정량을 수행하는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는 리명순동무의 일욕심은 하루계획을 500~1 000%로 넘쳐 수행해야 어느 정도 숙어들군 하였다.

일욕심이 많은 사람에게는 더 많은 일을 할수 있는 묘안이 생기기마련이다.

어느날 교대를 마치고 작업장을 나서려던 리명순동무는 기대순회를 하는 직포공들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았다.그러던 그의 머리속에 새로운 착상이 떠올랐다.지금처럼 기대의 앞뒤를 오가면서 보는것보다 줄별로 한줄씩 뛰여넘으면서 단번에 두대씩 보면 한번 순회하는데 드는 시간이 절반으로 줄어들것 같았다.

리명순동무는 즉시 수첩을 펼쳐들었다.현재 맡은 기대들을 순서대로 배렬해서 그린 다음 종전의 순회길과 금방 떠올랐던 순회길을 그려넣고 길이를 계산해보았다.새로운 순회길은 길이가 종전의 절반밖에 안되였다.그러나 작업에 대한 집중성은 이전보다 더 높아야 했고 일솜씨가 비상히 빨라야 했다.

리명순동무는 번개같은 일솜씨를 갖추기 위해 남모르는 땀방울을 한껏 쏟았다.

그는 이렇게 기대순회방법을 새롭게 개선하여 기대당 천생산량을 하루정량의 2배로 높일수 있었다.

리명순동무에게는 늘 혹처럼 달고다니는 자그마한 주머니가 있다.사람들은 그것을 두고 《보물주머니》라고 한다.

직포공들에게 있어서 제일 걱정거리는 직기고장이다.그런데 아무리 기능이 높은 수리공이라도 예비부속품이 없이는 어쩔수 없는것이다.

그래서 리명순동무는 매일 작업장을 오가면서 바닥에 굴러다니는 소재나 낡은 부속품들을 보면 주머니에 꼭꼭 넣어두었다가 재생리용하여 직기들의 만가동, 만부하에 기여하군 하였다.

리명순동무는 간단한 기대수리는 자체로 하였다.

몇해전 상반년계획수행을 눈앞에 두고 긴장한 전투를 벌리던 어느날 기세좋게 돌아가던 직기가 멎어버렸다.아무리 살펴봐도 원인을 알수 없었다.

10분정도 지났을 때 수리공이 달려왔는데 큰 고장인줄 알았던 기대가 씨실감촉기 하나를 제꺽 교체하니 슬슬 돌아가는것이였다.

수리하는데 든 시간은 불과 2~3분정도밖에 안되였다.그것을 본 리명순동무는 이런 간단한 수리는 배우면 꽤 자체로 할수 있을것 같았다.

그때부터 그의 일과가 또 달라졌다.교대를 마치면 수리공들을 찾아가 직심스럽게 수리기술을 배웠다.리명순동무의 《보물주머니》에는 수리공구들까지 들어가 자리잡게 되였다.

낮에는 천을 짜고 밤에는 수리공들옆에 붙어 기대수리를 하나하나 배우는 리명순동무의 불같은 열정을 두고 사람들은 무쇠덩이 한가지라고 혀를 찼다.

그러나 리명순동무는 결코 무쇠덩이가 아니였다.그도 다른 직포공들과 꼭같은 녀성이고 가정부인이였다.오히려 남들보다 체력이 약한 축이였다.

그에게 남다른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기가 맡은 기대, 자기가 결의한 생산목표는 당앞에, 조국앞에 자기가 책임진다는 비상한 자각과 무엇이나 자체의 힘으로 해내려는 자력자강의 정신이였다.

여러해전 여름 리수복청년돌격대활동이 맹렬히 벌어지던 어느날, 다기대운동의 앞장에서 무섭게 내달리던 리명순동무가 갑자기 배를 그러쥐고 그자리에 주저앉았다.

남들이 볼가봐 기대사이에 쪼그리고앉아 아픔을 이겨내고있는데 실이 끊어지는 바람에 직기들이 멎었다.

리명순동무는 칼로 에이는듯 한 아픔을 참으며 멎어선 직기를 향해 앉은걸음으로 한치한치 다가갔다.가까스로 날실을 이어주고는 그자리에 주저앉고 또 기여가다싶이 하여 다음기대로 가서는 씨실을 이어주기를 그 몇번…

리수복영웅이 적의 화구를 향해 옮기던 그 열다섯발자국을 련상케 하는 10m구간의 한걸음한걸음…

다섯번째 기대앞에 이르러 그는 끝내 쓰러지고야말았다.

직장일군의 등에 업혀 공장병원으로 간 그가 정신을 차린것은 그로부터 몇시간이 지난 후였다.

직장일군들과 의사, 간호원들이 긴장한 눈빛으로 자기의 얼굴을 들여다보고있었다.

《명순동무, 큰일날번 했군요.여기서 며칠 치료를 받아야겠어요.》

밤새 앓음소리를 내며 신고하던 그가 다음날 새벽 병원에서 없어져 소동이 일어났다.

그날 작업장에 들어서던 직포공들은 깜짝 놀랐다.병원에 실려갔던 리명순동무가 제일먼저 출근하여 기대정비를 하고있는것이 아닌가.

직장일군들과 직포공들이 달려와 그의 앞을 막아섰다.

《일손을 놓으면 내 병은 낫지 않아요.》

불사신같은 이런 인간의 앞을 과연 무엇으로 막을수 있단 말인가.또 이런 일이 처음이였던가.

열번 쓰러지면 열번 다시 일어나 승리의 고지를 향해 달리고 또 달리는 이런 강인한 인간앞에 사람들은 머리를 숙이군 하였다.

몇해전 리명순동무는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를 모시고 진행된 전국경공업대회의 높은 연단에서 방직공업부문의 로동계급을 대표하여 토론을 하는 크나큰 영예를 지니게 되였다.

로동당의 품속에서 이 땅의 한 평범한 녀성로동자가 영광의 단상에 오른것이다.

그가 지금껏 짠 천의 길이를 모두 합치면 6 000여리, 그만한 길이의 천을 짜자면 그의 백수십배에 달하는 순회길을 달려야 한다고 볼 때 매일 150리, 그 길을 모두 이어놓으면 지구의 둘레 열바퀴에 해당한 100만여리!

그렇다.

리명순동무가 세운 기적적인 신기록!

그것은 바로 하늘같은 일욕심에 번개같은 일솜씨를 더한 피와 땀의 고귀한 결정체였다.

 

사람이 열이면 만리마도 열

 

만리마의 진짜주인공은 혼자서 결승테프를 끊지 않는다.

리명순동무는 언제나 대오의 맨 앞장에 서있었지만 마음은 늘 작업반을 안고 달렸다.

집단의 영예속에 나의 영예도 있다!

이런 고결한 인생관을 지녔기에 그의 어깨는 언제나 무거웠다.

리명순동무는 작업반의 선동원이다.

얼마전 당의 크나큰 믿음과 사랑속에 모범선동원의 영예를 지니였을 때 작업장에 울린 축하의 박수소리는 천백마디의 말을 대신하는 대중의 한결같은 평가라고 말할수 있다.

남달리 수집음을 잘 타고 말도 적은 그가 대중의 심장을 사로잡는 비결은 어디에 있었던가.

그것은 바로 뜨거운 인정미였고 불같은 이신작칙이였다.

그에게 있어서 가장 진실한 선동언어는 뜨거운 진정이였다.

작업반에는 그와 한날한시에 같은 작업반에 배치된 유일한 《동창생》인 리상희동무가 있었다.그런데 신입공시절에는 꿈도 많고 포부도 커서 서로가 영웅직포공들처럼 살자고 약속하며 꼭같이 첫걸음을 떼였지만 리상희동무는 점점 건강상태가 나빠져 출근 못할 때가 많았다.

이렇게 되여 그들사이에는 아득한 차이가 생기게 되였다.

리명순동무는 혁신자의 꽃다발을 받을 때마다 한쪽에서 머리를 쳐들지 못하군 하는 리상희동무를 보며 심한 자책을 느끼군 하였다.

그래서 그가 출근하지 못한 날에는 꼭꼭 그의 집을 찾군 하였다.앓아누운 그의 어머니를 위해 친딸의 심정으로 온갖 진정을 다 바치기도 하며 리상희동무를 따뜻이 손잡아 이끌어주었다.

그 진정이 하도 뜨거워, 자기의 남모르는 재능까지 헤아려 이끌어주는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워 리상희동무는 일터에 억센 뿌리를 내리게 되였으며 혁신자대렬에도 당당히 들어서게 되였다.어릴 때부터 문학적소질이 있어 《꼬마작가》로 불리우던 리상희동무는 로동생활과정에 자기가 직접 체험한 일들을 시로 써서 발표하여 작업반의 보배로 떠받들리우게 되였다.

지금도 리상희동무는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공장의 로동계급이 창작한 글작품집을 보아주시였다는 소식에 접한 영광의 그날 작업반원들의 축하의 인사를 받을 때 자기보다 더 기뻐하던 리명순동무의 모습을 잊을수 없다고 한다.

리명순동무가 이렇게 기대앞에 다시 세워 혁신자로, 직장의 보배로 이끌어준 사람이 어찌 그뿐이랴.

리명순동무는 공장에 애착을 가지지 못하고있던 여러명의 가정부인들도 년간계획완수자로 내세웠으며 신입공들을 맡아 기능공으로 키우는데서도 모범을 보여주었다.

리명순동무가 키운 신입공들중에는 당시 19살 난 한 처녀도 있었다.

일터에 대한 애착심이 부족한데로부터 출근도 제대로 하지 않고 맡은 일도 성실히 하지 않아 직장일군들과 작업반원들의 눈밖에 난 처녀였다.어느날엔 기대앞에서 10분동안 졸아 물의를 일으킨적도 있었다.

사람들은 점점 그를 멀리하였지만 리명순동무만은 그와 더 가까와지기 위해 노력하였다.

합숙생인 그의 생활에 불편이 있을세라 왼심을 썼고 늘 곁에 끼고다니며 기술기능도 배워주었고 자주 자기 집에 데려다 성의껏 음식상까지 차려주며 좋은 말을 해주군 하였다.

《언제나 영광의 일터를 지켜섰다는 자각을 안고 살아야 해요.》

《기대앞을 조국을 지키는 전호로 생각하면 언제나 마음이 굳세여지고 힘이 솟군 해요.》

《일에서 집중력을 키우는것이 중요해요.맡은 기대들이 10분동안만 서있어도 벌써 2명분 옷감이 하늘로 날아나거던.》

이렇듯 리명순동무는 스승이 되고 동지가 되고 혈육이 되여 그를 참답게 이끌어 오늘은 혁신자대렬에 떳떳이 세워주었다.그후 공장적으로 진행된 기능공경기에서 그 처녀가 1등을 하여 사람들을 놀래운 사실은 결코 우연한것이 아닌것이다.

리명순동무가 진정을 다 바쳐 키워낸 10여명의 신입공들이 이제는 기능공들로 자라나 년간계획완수자로, 2년분계획완수자로 혁신자대렬의 전렬에 당당히 들어섰다.

그에게 있어서 가장 열렬한 선동언어는 불같은 이신작칙이였다.

작업반에 그 어떤 어려운 과업이 제기되여도 남먼저 어깨를 들이밀고 돌파구를 열어제끼군 하는 완강한 실천가, 《나에게 더 많은 직기를 달라!》고 웨치며 대오의 앞장에서 질풍같이 내달리는 기적창조의 선구자.

하기에 사람들속에 새겨진 그의 모습은 늘 땀젖은 모습이였다.

바로 그 한방울한방울의 땀이 작업반을 만리마작업반으로 추동하는 소리없는 고동구호였다.

리명순동무의 고상한 풍모는 작업반의 거울로 되고있다.

그는 25년간 단 하루의 지각이나 결석도 모르고 살아온 만근자이며 고지식하고 청렴결백한 녀성이다.

2년전 3월 소학교에 입학하게 되는 딸이 새 교복을 받아안고 집에 들어섰다.

난생처음 이런 옷을 입어보는 영령이가 뜻밖에도 《엄마, 이 교복은 엄마가 짠 천으로 만든거나?》라고 묻는것이였다.

그렇게 천을 많이 짰건만 자기 딸에게 새옷을 지어줄 옷감에 대해서는 한번도 생각지 못하였던 리명순동무는 어린 딸을 꼭 그러안고 뜨거운것을 삼키며 말했다.

《영령아, 이 옷은 아버지원수님께서 주신 교복이다.》

리명순동무는 자기를 위한 그 어떤 특혜나 사심도 허용치 않았다.

비록 단칸짜리 집에서 살면서도, 생활의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그는 언제나 집단의 리익을 먼저 생각하였고 집단과 동지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치는데서 행복과 긍지를 찾군 하였다.

이런 나날이 흐르는 과정에 그의 작업반은 혁신자가 많은 작업반으로, 너도나도 만리마에 오르는 전투력있는 집단으로, 화목한 대가정으로 떠받들리우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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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해전 김정숙평양방직공장을 찾아오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는 오늘 우리의 당원들과 근로자들은 동무는 천리마를 탔는가라는 물음에 대답하며 기적과 위훈을 떨친 전세대들의 투쟁정신, 투쟁기풍을 이어받아 동무는 만리마를 탔는가라는 물음에 대답할수 있게 살며 투쟁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동무는 만리마를 탔는가.

중앙사회주의애국공로자이며 공훈방직공이며 모범선동원인 리명순동무는 언제나 대오의 앞장에서 질풍같이 내달리면서도 이 물음앞에 늘 자신을 세우고 량심의 채찍을 들군 한다.그리고 시대의 엄숙한 그 물음에 김일성-김정일로동계급의 이름으로 대답한다.

《조국이여, 나에게 더 많은 직기를 달라!》

글 본사기자 김영철

본사기자 리신향

사진 본사기자 김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