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자 성인학교에, 배우자 우리 글을

 

해방덕에 그처럼 소원하던 배움의 길에 나선것은 아이들만이 아니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 글 배우기에 신바람이 났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당은 문맹퇴치사업을 농촌문화혁명에서 선차적으로 풀어야 할 과업으로 규정하고 이 사업을 국가의 통일적인 계획과 지도밑에 전인민적운동으로 벌리도록 하였습니다.》

일제의 악착한 민족우매화정책과 식민지노예교육의 후과로 해방전 우리 나라 인구의 대다수가 문맹자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런 실태를 깊이 헤아리시고 새 조국건설령도로 그토록 바쁘신 속에서도 문맹퇴치사업을 전군중적운동으로 광범히 전개하도록 현명하게 이끄시였다.

중앙으로부터 지방에 이르기까지 문맹퇴치지도위원회가 조직되고 거기에서 문맹퇴치운동을 직접 장악지도하였다.

전국도처에 여러가지 형태의 성인학교들이 속속 나왔다.

주체35(1946)년 12월 17일 《로동신문》은 김일성종합대학의 2 000명 학생들이 문맹퇴치사업에 동원된 소식을 전하였다.

이런 속에 성인학교들에서는 《가, 갸, 거, 겨…》 글읽는 소리가 밤늦도록 그칠줄 몰랐다.

해방후 문맹퇴치사업이 얼마나 중시되였는가 하는것은 나라사정이 그토록 어려운 속에서도 국가에서 글을 배우는 사람들에게 학용품까지 보장해주었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뿐만아니라 글을 잘 배워주는 사람들에게는 국가적으로 표창도 하고 선물도 주었다.

당시 문맹퇴치사업에 모범적으로 참가하는 단위들과 지역들은 당적으로 높이 평가되였으며 그렇지 못한 현상들은 비판하여 각성시키기 위한 사업도 활발히 진행되였다.

《…성실하고도 희생적인 노력없이는 이 중대한 민족사업의 소기한바 목적을 달성할수 없는것이다.…사업검열을 한 결과에 의하면 오늘까지의 이 사업이 형식적이였고 무조직, 무계획이였다는것을 지적한다.

이러한 미지근한 사업집행으로는 도저히 이제 겨우 두달도 못 남은 한기간까지 …완수를 기할수 없는것이다.각 책임자의 열성과 총력량을 집중하여주기를 바란다.…》

이것은 각 시, 군문맹퇴치지도위원장회의에 관한 주체36(1947)년 1월 30일부 《로동신문》 기사의 일부이다.

문맹퇴치운동의 선구자였던 리계산녀성은 문맹퇴치사업이 활발히 벌어지던 당시에 대해 이렇게 추억하였다.

《…낮에도 짬있는대로 배운 글자를 읽었고 비오는 날에는 책을 유지에 싸가지고 밭머리에 나가 글을 읽었습니다.또한 부엌에서도 곁에 책을 펼쳐놓고야 일을 했습니다.독에는 〈독〉, 솥뚜껑에는 〈솥〉, 부엌아궁머리와 되창에도 그 이름을 써붙이고 외워보고 눈에 익히군 하였습니다.불을 때면서도 부지깽이로 생각하는 글자를 몇번이고 써보았습니다.》

이렇게 석달만에 우리 글을 익힌 그는 제손으로 편지를 정히 써서 위대한 수령님께 삼가 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편지를 보아주시고 친히 회답편지를 보내주시였다.

리계산녀성은 그후에도 열심히 배우고 또 배워 대학을 나왔고 관리위원장으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로력영웅으로 자라났다.

리계산녀성뿐이 아니였다.지난날 눈뜬 소경으로 불리우던 수많은 사람들이 해방된 조국땅에서 광명을 찾고 조국을 위해 지혜와 열정을 아낌없이 바치였다.

참으로 우리 수령님은 해방전 무지와 몽매만이 짙게 서려있던 이 땅우에 사회주의문명건설의 억센 주추를 마련하여주신 위대한 스승이시였다.

본사기자 리경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