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국공민된 긍지를 안고 고마운 조국을 위해 더 많은 땀을 흘리자

소중한 추억, 아름다운 모습

 

더 많은 식량을 전선으로!

 

우리 공화국의 빛나는 력사에는 전화의 나날 녀성보잡이운동의 앞장에 섰던 평안남도 개천군(당시)의 녀성농민들도 기록되여있다.

주체40(1951)년 11월 22일부 당보는 녀성보잡이운동의 앞장에 선 김락희녀성에 대하여 이렇게 전하였다.

《…그는 〈식량을 위한 투쟁은 조국을 위한 투쟁이다.〉라고 교시하신 경애하는 수령님의 말씀을 높이 받들고 … 올해의 고귀한 노력의 열매를 총화짓는 마당에서 잘 여문 벼를 먼저 탈곡정선하여 벼현물세 87가마니를 국가에 바쳤다.그리고 조선인민과 더불어 자기를 오늘의 승리의 길로 이끌어주신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장군님께 햇벼 29가마니를 선물로 바치는 정성을 표시하였다.…》

원쑤놈들의 학살과 만행으로 종전보다 로력은 200여명, 부림소는 3분의 1로 줄어들었을 때 그는 선참으로 보탑을 잡고 논과 밭을 갈아엎고 씨를 뿌려나갔다.

그의 뒤를 이어 많은 녀성들이 보잡이명수들로 자라났다.

더 많은 식량을 전선으로!

이것이 해방후 땅의 주인, 나라의 주인으로 당당하게 내세워준 공화국을 지키고 그 은덕에 보답할 일념으로 다진 맹세였다.

그들의 넋은 오늘도 살아 년년이 이어지고있다.

가장 준엄한 시기에 조국을 지켜싸운 그들처럼 쌀로써 어머니조국을 받들고 사회주의강국건설에 이바지하려는 고결한 마음이 우리의 농업근로자들의 가슴마다에 간직되여있다.

 

사랑과 정성을 다해

 

로동당의 아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천리마시대 보건일군들의 정성에 의하여 기적적으로 살아난 방하수소년을 이렇게 불러주시였다.

주체49(1960)년 11월 전신 48%의 3도화상을 당하고 중태에 빠진 8살 난 철부지 방하수소년이 흥남비료공장병원으로 실려왔다.

당시까지만 해도 의학계에는 그렇듯 심한 화상환자를 소생시킨 전례가 없었다.

하지만 병원의료집단은 신심을 잃지 않고 한사람같이 떨쳐나섰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키워주신 천리마시대의 보건일군답게 남이 성공하지 못한 그 길을 개척해서라도 기어이 살려내야 한다, 이렇게 마음다진 그들은 수십차례의 피부이식실험을 거듭하던 끝에 과학적인 담보와 신심을 가지고 동종피부이식수술을 단행하였으며 자기의 피와 살도 서슴없이 바치며 온갖 정성을 다하였다.

무엇이 그들을 떠밀었는가.공민의 본분이였다.

인간의 생명을 지키고 사회주의보건제도를 지키는것이 바로 조국이 그들의 손에 수술칼을 쥐여주면서 맡겨준 임무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의 소행을 높이 평가하시면서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고 인민의 행복을 위해서는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치는 공산주의자들의 숭고한 사상을 실지행동으로써 보여주었다고, 이러한 사실은 인민이 나라의 주인으로 되고 모든 사람이 서로 사랑하고 도와주는 사회주의제도하에서 당에 의하여 육성된 보건일군들속에서만 볼수 있는 아름다운 소행이라는 축하의 편지를 보내주시였다.

그로부터 몇달후 사람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자애로운 품에 안겨 밝은 웃음을 짓는 방하수소년을 보게 되였다.

김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