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손으로 행복의 열매를 가꾸어간다

판교군을 찾아서

 

판교군에 대한 우리의 취재는 뜻밖에도 잣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였다.

《올해엔 례년에 없는 잣풍년까지 들어 온 군이 흥성이지요.》

원산시를 떠나 판교군으로 가는 려객뻐스에서 그곳에 태를 묻고산다는 한 로인이 우리에게 하는 말이였다.자기가 사는 고장에 대한 애착과 긍지가 비낀 로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여운을 안겨주었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모든 일군들과 당원들과 근로자들이 김정일애국주의를 마음속에 소중히 간직하고 내 나라, 내 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한 투쟁에 떨쳐나서도록 하여야 합니다.》

우리와 만난 군일군은 려행길에서 받은 소감에 대하여 말하자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온 나라 전체 인민을 산림복구전투에로 부르신 경애하는 원수님의 높은 뜻을 받들고 군안의 일군들과 인민들은 분발해나섰다.잣나무를 위주로 하면서 여러 종류의 나무를 심는 나날 판교군의 산발은 해가 다르게 푸르러갔다.

《산림복구전투를 통하여 판교군사람들은 행복은 절로 오지 않으며 바로 자기 손으로 창조하고 가꾸어야 한다는 진리를 다시금 절감했습니다.》

일군은 이렇게 말하며 우리를 군건재공장으로 이끌었다.

공장구내에 들어서니 생산된 벽돌이 규모있게 쌓아져있는것이 우리의 눈길을 끌었다.여기에도 자기 지방의 자원으로 군살림살이를 꾸려나가려는 이곳 종업원들의 깐진 일본새와 투쟁기풍이 깃들어있었다.

두해전 새로 임명되여온 군당책임일군은 생각이 많았다.지금처럼 벽돌을 비롯한 건설자재를 다른 곳에서 가져다 써서는 언제 가도 군의 살림살이를 추켜세울수 없기때문이였다.그는 건재공장의 기술자, 로동자들과 무릎을 마주했다.그들과 함께 군건설의 돌파구를 열기 위한 방도를 찾기 위해서였다.얼마후 공장에서는 질좋은 벽돌을 만들기 위한 투쟁이 시작되였다.

소성로를 새롭게 쌓고 벽돌재료의 합리적인 배합비률을 찾기 위한 연구사업이 벌어지는 속에 몇달후에는 소성로에 불이 지펴지고 벽돌이 생산되여나왔다.하지만 제품은 시원치 못했다.

그러나 건재공장의 기술자들과 기능공들은 지혜를 합쳐가며 끝내 질좋은 벽돌을 생산할수 있는 기술혁신안을 내놓고야말았다.이렇게 되여 군에는 건설을 마음먹은대로 내밀수 있는 튼튼한 토대가 마련되게 되였다.

제힘을 믿고 떨쳐나 더 좋은 래일을 앞당겨오기 위해 이악하게 투쟁하고있는 이야기는 판교군 읍협동농장에서도 들을수 있었다.농장에서는 새땅찾기운동을 힘있게 벌릴데 대한 당의 방침을 받들고 비경지나 저수확지를 옹근소출을 낼수 있는 땅으로 만들기 위해 적극 노력하고있었다.

우리가 농장에 도착하니 온 농장이 물길공사로 들끓고있었는데 그 기세가 이만저만이 아니였다.포전에서 우리와 만난 농장일군은 올해에만도 많은 새땅을 찾아냈다고, 흙깔이를 대대적으로 한 결과 지력이 훨씬 높아졌다고 말하였다.

읍협동농장뿐이 아니였다.군에 꾸려진 종합축산기지와 양어기지, 구당리의 소학교를 비롯하여 우리가 들린 모든 곳마다에서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제힘으로 흥하는 길을 열어나가기 위해 한사람같이 떨쳐나선 판교군인민들의 모습을 볼수 있었다.

강원도에서도 산간오지로 불리우는 산골군, 자기의 힘과 지혜로 부흥의 길을 열어나가기 위한 창조와 혁신으로 들끓는 고장이였다.

이곳을 떠나는 우리의 귀전에서 군당책임일군의 말이 좀처럼 떠날줄 몰랐다.

《아직은 시작에 불과합니다.이제 우리 고장을 살기도 좋고 일하기도 좋은 산골군의 본보기로 꾸린 다음 꼭 다시 오십시오.》

글 및 사진 박주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