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제힘으로 흥하는 길을 열어나가자

기행

덧없이 흐르던 물을 다스려 덕을 본다

덕성군 직동, 인동, 주흥, 사과리를 돌아보고

 

우리의 취재는 평양-북청행 뻐스에서부터 시작되였다.고향도 려행목적도 각각인 사람들이 저마끔 자기 고장이야기를 꺼냈는데 평양의 딸네 집을 다녀온다는 중늙은이의 목소리가 특별히 높았다.

《우리 덕성이 산골이지만 요 몇해어간에 농사가 잘돼서 살림이 늘었수다.하지만 덕성에 와보고 사람들이 먼저 놀라는게 뭔줄 압니까? 발전소라오.큰것, 작은것 다해서 꽤 많수다.우리 인동리만 봐도 발전소가 12개나 있는데 그 덕을 단단히 본다오.》

로인의 귀맛좋은 말이 자꾸만 귀전을 맴돌았다.마음은 벌써부터 덕성군의 발전소들에로 달리고있었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나라의 방방곡곡에 중소형수력발전소들을 더 많이 건설하여야 하겠습니다.》

산골특유의 신선한 공기를 호흡하며 북청군경계를 벗어나 얼마쯤 달렸을 때였다.

황혼이 깃든 산기슭에 불장식이 번쩍이는 여러개의 건물이 보였다.덕성군산림경영소에서 건설한 남천7호발전소와 그 덕을 보는 모체양묘장건물들, 읍협동농장에서 운영하는 남천6호발전소였다.이전에는 남천이라 불리운 북청강에 건설한 발전소들가운데서 제일 말단이라고 마중나온 군일군이 친절하게 이야기해주었다.

심심산골의 맑은 물과 공기로 피로를 말끔히 푼 우리는 아침일찍 후치령을 사이에 두고 김형권군과 린접한 직동리로 향하였다.

후치령도로기술개건공사때문에 나와있던 군일군이 찾아온 사연을 알고 우리를 군도로보수관리대 후치령청년소대로 이끌었다.소연한 산골물소리와 함께 이채로운 풍경이 한폭의 그림처럼 안겨들었다.아담한 청년소대건물, 속을 파낸 통나무물길을 따라 떨어지는 물의 힘으로 씽씽 돌아가는 수차, 무넘이에서 쏟아져내리는 《폭포》…

겨울에도 얼지 않는 원터골의 물을 인수로를 내여 끌어다가 락차고를 형성하고 수차와 수차축을 후치령에 흔한 나무를 리용하여 자체로 만든 사람들이 바로 후치령도로공사장에 나가있는 청년소대원들이라고 하였다.덧없이 흐르던 산골물과 흔한 나무를 보배로 만든 청년들을 만나보지 못하는것이 아쉬웠다.

《지금은 자그마한 발전기에서 생산되는 전기로 조명을 보장하고 텔레비죤과 증폭기를 리용하는것이 전부이지만 인차 소형발전소를 건설하여 밥도 전기로 지어먹게 할 계획입니다.》

군도로보수관리대 대장의 말이였다.

속신골 축산작업반에도 물레방아식소형발전기를 돌려 전기덕을 보는 가정이 여러 세대나 된다는 직동리일군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직동4호발전소에 이르렀다.

중학시절부터 제손으로 직동천에 물레방아식소형발전기를 띄워놓고 조명용전기를 보장한 재간둥이인 김성복동무가 주동이 되여 일떠세웠다는 소형발전소였다.여기서 나오는 전기로 25세대의 조명과 문화생활을 보장한다고 하였다.탐구심이 높고 착상력 또한 뛰여난 발전기운전공의 전망설계는 대단하였다.인차 타빈과 발전기를 개조하여 전기생산량을 두배이상 높이려 한다.

천리길도 한걸음에서 시작된다고 제땅의 모든것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이렇게 크지 않은 산골개울도 재부로 전환시킬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나날이 꽃피는 산골사람들의 살림이 우리를 기쁘게 해주었다.

송이버섯을 형상한 송이동다리를 건느고 중동리를 지나니 인동리가 나졌다.큰길가에까지 마중나온 리일군은 우리를 먼저 인동5호발전소에로 이끌었다.고르로운 동음을 울리며 돌아가는 식료가공설비들이 한순간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하였다.

(발전소가 아니라 식료가공실인가?)

우리의 의문을 알아차린듯 리일군이 설명해주었다.점심시간과 밤에는 타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의 역할을 하고 낮에는 전기를 쓰지 않는 식료가공실, 제재소의 역할을 한다는것이였다.

과연 식료가공실밑에 발전기실이 있었는데 식료가공설비와 제재기가 피대로 타빈과 련결되여있었다.흐르는 물의 힘에 의하여 타빈이 돌기 시작하면 자동적으로 돌아가게 설계된 식료가공설비들에서 쏟아져내리는 낟알가루며 국수, 옥쌀을 받느라 땀씻을 짬도 없이 분주히 돌아가는 식료가공실녀인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어려있었다.그런가 하면 제재기에서 연방 가공되여나오는 목재는 더 멋있게 전변될 인동리의 래일을 그려보게 하였다.

작업반마다 한두개씩 있는 소형발전소의 덕은 한두가지가 아니였다.자체로 생산한 전기를 리용하여 문화정서생활을 마음껏 누려 좋고 일나갈 때 자기 마을 발전소에 가공할 낟알을 맡겨두었다가 퇴근할 때 찾으니 품이 적게 들어 좋았다.국선을 자른지 오래된 리에서는 자체로 생산하는 전기로 낟알털기까지 하고있었다.

소비지와 생산지를 최대한 접근시켜 각이한 규모로 건설한 12개의 발전소를 돌아보고났을 때는 높고낮은 산발너머로 노을이 불타는 저녁무렵이였다.한집두집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불빛이 환한 청년양어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우리는 발전소건설돌격대장으로 활약하였다는 제2작업반 반장을 만나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십여년전까지만 하여도 리의 발전소실태는 시원치 않았다.전기문제를 자체로 해결할것을 결심한 리일군들은 직동천과 인동천을 량옆에 끼고있는 유리한 조건에 맞게 발전소건설작전을 펼치였다.리에서는 로력을 집중하여 물길과 조절못공사를 하면서 해마다 1~2개씩 발전소건설을 줄기차게 내밀었다.직동천에 일떠세운 발전소의 퇴수를 잡아 양어장을 건설하고 정각에는 불장식도 하였다.정각아래 물면우에는 발전소전기를 리용하는 장식등도 설치하였다.이렇게 하니 봄부터 가을까지 많은 곤충이 모여들어 단백먹이가 해결되였다.먹이를 절약하면서 물고기생산량을 늘여 좋고 양어장의 밤경치가 좋아졌다.꿩먹고 알먹기란 바로 이런것이 아니겠는가.

어질고 착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라 하여 인동이라 불리웠다는 이곳이 우리에게는 근면하고 창조정신이 높은 사람들이 사는 고장으로 새롭게 안겨들었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군소재지에서 십리가량 떨어진 주흥리로 향했다.발전기의 동음높은 남천2호발전소를 돌아본 우리를 초급당일군은 박전동에 새로 건설하였다는 발전소로 이끌었다.

옛날 군수들이 모여앉아 제고장자랑을 할 때 덕성군수는 돌자랑밖에 할수 없었다더니 돌이 정말 많았다.돌담장, 돌제방 지어 돌로 쌓은 밭두렁과 논두렁…

주흥천상류는 온통 돌이였다.분명 물소리는 들리는데 돌만 보이는 구간이 군데군데 있는것이 옥련산의 돌강을 련상시켰다.

《우리 주흥리의 원래이름은 주의동리입니다.돌을 주의하라고 하여 이름붙인 주의돌리가 말소리변화되여 주의동리로 되였답니다.》

박전동으로 올라가는 길에 초급당일군은 이렇게 서두를 뗐다.주흥천을 따라 내려오던 물이 돌밑으로 다 슴배여들어 제4, 5, 6작업반지구의 논밭은 해마다 가물피해를 받군 하였다.력대 관리위원장들이 물문제를 해결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어느 관리위원장은 진흙을 하천바닥에 깔면서 모지름을 쓰기도 했지만 밑빠진 독에 물채우기였다.

박전동에 여러번 오르내리며 현지답사를 한 최명락관리위원장이 물이 제일 많이 새는 2천m구간에 관을 묻어 물문제를 풀 결심을 품은것은 몇해전 봄이였다.편의분조장이 2천m면 얼핏 추산해도 100m의 락차고가 조성되는데 발전기까지 놓아 전기를 생산하는것이 어떻겠는가 하는 의견을 내놓았다.사시장철 물이 마를줄 모르는 박전동 우물골에 취수구공사를 하고 관을 묻어 청년분조에 소형발전소를 세웠는데 락차고가 높다나니 물압도 간단치 않아 관이 계속 터져나갔다.그래서 중간쯤 되는 재삼밭골에 소형발전소를 하나 더 건설하고 잇달아 발전기운전공의 집도 지어주었다고 한다.

발전소에서 만난 편의분조장은 지난해 가을부터 보는 발전소의 덕을 늘어놓았다.낟알털기시기에는 남천2호발전소와 박전동의 두 발전소를 병렬하여 탈곡기도 돌린다.더 중요한것은 수십정보의 논밭관개용수문제가 풀려 증산의 돌파구가 열린것이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새로 낸 관개수로를 따라 생명수가 철철 흘러넘치는데 전야에서는 구수한 낟알향기가 풍겨왔다.

얼마나 큰가, 제손으로 행복을 창조하는 보람은!

가슴속깊이에서 터져나오는 희열을 뿌듯이 느끼며 우리는 사과리에로 취재길을 이어갔다.

풍요한 과원, 울긋불긋 곱게 핀 길옆의 코스모스꽃송이들, 집집의 창가마다 흐르는 정다운 불빛과 행복의 웃음소리!

절세위인들의 혁명사적이 뜨겁게 깃들어있는 영광의 땅이여서 보이고 들리는 모든것이 유정하기만 하였다.

주체91(2002)년 10월 위대한 장군님께서 몸소 찾으시였던 남천3호발전소는 겉모습은 물론 발전기들이 기운차게 돌아가는 발전기실도 몰라보게 변모되였다.물길과 조절못보수공사를 하고 타빈과 발전기개조도 하면서 전력생산을 정상화하고있다고, 국선을 자른지 오래되였다고 하는 발전소책임자의 말에는 자부심이 어려있었다.

전기덕을 보는 사과리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싶어 우리는 이전에 리농근맹위원장으로 사업하였다는 로인의 가정을 거쳐 양어장관리공 송철섭동무의 가정을 찾았다.안해가 한창 저녁식사준비를 하고있었다.전기밥가마에서는 구수한 밥냄새가 풍기고 시퍼런 불길이 황황 타오르는 메탄가스곤로에서는 감자장이 보골보골 끓고있었다.

《전기로 밥을 짓고 메탄가스로는 여러가지 찬을 만들고 집짐승먹이까지 끓이니 얼마나 편리한지 모른답니다.》

가정주부의 활기에 찬 목소리였다.

문득 리연혁소개실에서 들은 지명유래가 생각났다.니망지리로부터 어제는 락원리로, 오늘은 사과리로!

유명한 사과고장에 오늘은 발전소자랑, 전기자랑까지 흘러넘치니 그 뿌리는 무엇인가.

군당위원회 부부장 조광천동무의 추억깊은 목소리가 우리의 가슴을 울려주었다.

《일찌기 우리 군의 동중리를 찾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모든 가능성을 다 동원하여 동력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이곳에 흐르는 강은 물살도 세고 물량도 많은것만큼 발전소를 건설할수 있을것이라고 방도까지 가르쳐주시였습니다.그후 온 군에 발전소건설바람이 불어 도처에 소형발전소들이 일떠서기 시작했습니다.남천3호발전소를 찾으시여 전기로 밥도 지어먹고 난방도 하여야 전기화가 되였다고 할수 있다고 하신 위대한 장군님의 현지교시는 발전소건설과 운영에서 지침으로 되였습니다.》

거서천, 통팔령천, 곤파천, 양승천, 북청강…

크고작은 강하천이 많은 특성에 맞게 일떠세운 소형발전소는 70여개나 되였다.

후치령기슭에 흐르는 불빛, 그것은 열렬한 향토애가 낳은 애국의 불빛이였고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제힘으로 흥하는 길을 열어나가는 자력자강의 정신력이 안아온 자력의 불빛이였다.

바로 그래서 더더욱 소중한 산골군의 전기자랑이였다.

거서천이 흐르는 월명리, 엄동리, 상돌리, 중돌리지구에 소형발전소들을 더 많이 건설하여 가까운 년간에 80여개로 늘일 계획이라는 군당책임일군의 목소리는 신심에 넘쳐있었다.

산골군을 떠나는 우리의 마음속에 불밝은 마을들에서 본 사람들의 인상깊은 모습이 따라서며 이 고장의 더 좋은 래일을 그려주었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김향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