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장군님의 군복

전문진

 

사람이 늙어서는 추억속에 산다고도 하지만 항일유격대의 재봉대원시절을 돌이켜보느라면 언제나 잊혀지지 않는 가지가지 사연깊은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그가운데서도 내가 류달리 잊지 못하는 한 이야기가 있다.그것은 청년장군시절의 위대한 수령님께 새 군복을 지어드리던 때의 일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소왕청 마촌으로 혁명의 사령부를 옮겨오신 얼마후인 1933년 봄이였다.

그 봄에 왕청유격근거지의 인민들과 유격대원들은 청년장군이신 위대한 김일성동지를 맞이한 최대의 행복과 영광으로 하여 끝없는 희열에 넘쳐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왕청에 오시자마자 좌경적인 《쏘베트》로선의 오유를 시정하시고 인민혁명정부를 세우시여 일시나마 그늘이 졌던 근거지에 해빛넘치는 인민의 새세상을 세워주시였다.

그리고 적아의 력량대비가 100대1이라는 엄청난 력량차이의 악조건에서도 전민항쟁의 기치밑에 승리의 북소리만 높이 울리게 하는 백전백승의 새 력사를 펼쳐주시였다.

하기에 유격대와 인민들은 희망과 신심에 넘쳐 온갖 고난을 웃으며 헤쳐나갔고 《왜놈들은 조선에 장수가 나지 말라고 백두산과 명산, 고산들의 정수리마다에 쇠말뚝을 박았지만 하늘이 단군조선을 알아서 백두산장수이신 청년장군 김대장을 보내주었다.》, 《조선은 마침내 광복의 대통운이 트이게 되였다.》고 하면서 전설같은 흠모의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그런데 인민들이 그토록 흠모하며 따르는 위대한 수령님을 뵈옵는 첫 순간부터 우리 재봉대원들은 수령님의 군복이 너무도 수수하고 평범하다고 느껴졌다.

날이 갈수록 그런 생각은 키높이 자랐다.

그래서 우리들은 위대한 수령님께 새 군복을 만들어올리자고 약속하였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20대의 청년장군이시였다.

해님처럼 환하신 모습, 영채도는 안광, 넘치는 열정, 우렁우렁하신 음성과 호방한 웃음…

출중하신 그 모습에 어울리게 멋진 새 군복을 지어올리면 얼마나 더 돋보이실가!

우리는 정녕 흥분을 누를수 없어 한달음에 지휘부로 달려가 제기를 하였다.량성룡대대장은 우리보고 동무들이 참 좋은 생각을 하였다고, 이제는 여름철군복을 만들어야 하므로 장군님께 새 군복을 지어드리면 얼마나 좋겠는가고 하면서 대뜸 찬성하였다.

당시 우리 재봉대에는 갖가지 군복천이 퉁구리로 쌓여있었다.우리는 그가운데서 제일 좋은 최고급군복천을 골라서 옷을 말구었다.재봉대책임자는 내가 바느질을 깐깐스레 잘한다고 하면서 위대한 수령님께 드릴 새 군복의 바느질을 나에게 맡기였다.그리하여 다시없는 영광이 나에게 차례졌던것이다.

나는 성수가 나서 일손을 다그쳤다.

그러던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 재봉대에 오시였다.

우리 재봉대에 전 부대의 여름군복을 만들데 대한 새로운 임무를 주시기 위해서였다.

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재봉대에 있는 천의 재고량과 부족되는 량을 따져보시고 대책을 세워주시였으며 군복제작을 끝내야 할 마감날자를 정해주시였다.군복천은 이것저것 하지 말고 광목으로 다같이 하라고 하시면서 군복천 물들이는 방법도 세세히 일러주시였다.그러시다가 내가 쓰는 재봉기에 물려있는 군복을 보시며 그렇게 좋은 천을 가지고 무슨 군복을 짓는가고 물으시였다.

나는 무엇이라고 말씀올릴수가 없어 얼굴을 붉히며 량성룡동지를 쳐다보았다.우리는 모두 소문을 내지 않고 하자던 일이 그만 들장이 나서 송구하기 그지없었다.그리하여 량성룡대대장이 자초지종을 말씀올리게 되였다.

그의 말을 듣고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무들이 그러면 안된다, 왜 묻지도 않고 그런 일을 망탕 하는가, 내가 무슨 턱을 걸고 그런 고급천으로 군복을 만들어입겠는가, 아무런 턱도 없다, 나는 우대하는것을 제일 싫어한다고 하시면서 나의 군복이라고 하여 색다른 천으로 만들어서는 안된다고 준절하게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우리 혁명군대에서는 혁명을 위한 직책상분공은 달라도 규률은 하나라고 하시면서 군복을 어떤것을 입는가 하는것이 문제로 될수 없다고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자신께서는 대원들과 꼭같은 군복을 입겠다고, 대원들이 모두 새 군복을 입을 때 자신께서도 새 군복을 입겠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을 이으시였다.

더우기 우리는 나라도 후방도 없으며 그 어떤 외부의 지원도 없는 가장 가혹한 조건하에서 유격전쟁을 하고있는만큼 그 어떤 명분으로써도 랑비와 허례허식을 허용할수 없습니다.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우리 유격대의 군복을 지휘관의것이나 일반대원들의것이나 다같이 만들도록 하였습니다.그것은 내가 세운 혁명규률이며 례외가 있을수 없습니다.나도 마찬가지입니다.나는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하여, 나라의 광복을 위하여 한생을 바쳐싸울것을 맹세한 한사람의 평범한 혁명전사입니다.그러므로 거듭 말하지만 그 어떤 우대도 있을수 없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이르시면서 그 군복제작을 당장 그만두라고 지시하시였다.

량성룡대대장이 저희들의 성의라고 하면서 한번만 허락해주실것을 절절히 말씀드리였으나 그이께서는 청을 받아주시지 않았다.

우리는 하던 일을 중단하고 새로 시작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뽀얗게 안개가 일고 주름발이 쭉쭉 서는 고급천을 옆에 쌓아두고 물감들인 광목천으로 위대한 수령님께 드릴 군복을 지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안타까와서 눈물이 날 지경이였다.

이럴 때 병기창일을 맡아보는 동무가 왔다.

그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언제나 대원들과 같이 지내야 한다시며 인민들이 올린 백마도 타지 않으시고 자기에게 주셨는데 군복이라고 따로 입으시겠다고 하겠는가고 하면서 맥을 놓지 말고 같은 천이라도 정성을 다해 잘 만들자고 하였다.

그의 말이 옳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십리평인민들이 수령님께 올린 백마를 타지 않으시고 총상으로 다리를 절단한 후 병기창에서 일하는 그에게 보내주시였던것이다.

언제나 대원들과 침식도 같이하시고 입고 신으시는것도 구별이 없이 꼭같이 하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색다른 군복을 받으실리가 만무하였다.

우리는 아쉬웠지만 이미 마름질했던 천을 밀어놓고 광목천이지만 물감이라도 곱게 들여 만들기로 하였다.

가래나무껍질을 벗겨다 딴가마를 걸고 광목천에 물을 들이였다.

그렇게 몇감을 따로 물들인 다음 그중에서도 제일 곱게 물든 천을 골라서 마름질을 하였다.

이번에도 바느질은 내가 맡았다.나는 더욱 정성을 담아 한뜸한뜸을 수를 놓듯이 알뜰하게 누벼나갔다.

나는 그 군복이 비록 수수한 광목천으로 만든 대원들의것과 꼭같은것이였지만 결코 보통의 평범한 군복으로 생각되지 않았다.위대한 수령님께서 입으실 그 군복이 옛날옛적 고구려장수들이 입었다는 황금갑옷으로 생각되였고 붉은 오각별을 단 군모는 황금투구로 생각되였다.그렇게 생각하니 어느 하나도 소홀히 여겨지지 않았다.어릴적에 지주집에 삯바느질을 하러 간 어머니를 따라갔다가 재봉바늘을 부러뜨려 갖은 수모를 다 받던 일도 눈물겹게 회상되였다.그런 천덕꾸러기가 오늘은 백두산장수의 장수갑옷을 짓는다는 생각에 가슴이 찌르르 젖어들었다.나는 바느질에 온갖 심혼을 다 쏟아부었다.병기창동무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로약자들이 쓰라고 보내주신 산꿀까지 가져다주면서 수령님께 올릴 장군복을 이 세상 그 어떤 군복보다도 훌륭하게 지어달라고 신신당부를 하였다.이런 지성속에 군복, 군모에 코트까지 다 준비되여 마침내 위대한 수령님께 새 군복을 드리게 되였다.그날은 전 부대가 새 군복을 입는 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날 새 군복을 받으시고 옷을 참 잘 지었다고, 나의 바느질솜씨가 정말 보통이 아니라고 치하하시면서 자, 이렇게 대원들과 같이 해입으니 보기도 좋고 내 마음도 편하지 않은가, 나는 이렇게 대원들과 같이 입는것이 제일 좋다, 나는 이 군복을 인민이 주는 혁명의 군복으로 생각하고 입겠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조국이 광복되는 그날까지 혁명의 군복을 벗지 않고 항일전쟁의 천만리길을 억척같이 헤쳐나갈것이라고 하시였다.

그 말씀에 우리는 모두 눈굽이 뜨거웠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날에 하신 잊을수 없는 말씀그대로 언제나 대원들과 꼭같은 군복을 입으시고 항일혈전의 수천수만리길을 헤쳐오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장구한 항일혁명전쟁의 나날에 입으시였던 너무도 수수한 군복, 그 군복은 비록 광목천으로 지은것이였어도 위대한 령장의 백전백승의 위훈사가 깃들어있는 사연깊은 장군복이였고 대원들과 한치 간격도 없이 생사를 같이하시면서 혁명의 폭풍우를 헤쳐오신 백두산대장군의 장수갑옷이였으며 한없이 숭고한 인민적풍모를 지니신 혁명군대의 사령관, 천출위인의 혁명군복이였다.

그러나 나는 그후 언제 한번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소왕청시절에 입으시였던 장군복을 내가 지어드렸다고 감히 입밖에 내여보지 못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 너무도 수수한 군복을 지어드린것이 평생 마음에 걸려서였다.

그런데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근 60년세월이 흐르도록 잊지 않고계시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과분한 치하의 말씀을 하시였다.

강반석어머님 탄생 100돐기념 오찬회때에도 말씀하시였고 회고록에도 감회깊은 추억의 글발을 새기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회고록에서 소왕청시절 자신의 군복은 내가 지어준것이였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쓰시였다.

《내가 안도에서 왕청으로 가자 그곳 재봉대원들은 청년장군이 왔는데 좋은 옷을 지어드려야겠다고 하면서 코트와 군복을 일식으로 만들어주었다.천은 손으로 물을 들인 수수한 광목이였지만 그 한뜸한뜸에 스며있는 정성은 참말로 지극하고 섬세한것이였다.》

나는 회고록의 감회깊은 대목을 읽으면서 어느덧 반세기도 넘는 아득한 옛일로 되여버린 소왕청 재봉대원시절의 잊지 못할 사연을 다시금 가슴뜨겁게 돌이켜보았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바로 이런분이시기에 인민의 마음속에 영생하시고 내 조국은 일심단결의 나라로 영원히 빛나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