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의 농업혁명방침관철에서 농업과학연구기관들의 역할을 결정적으로 높이자

성공하기 전에는 물러설 권리가 없다

농업연구원 토양학연구소에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토양분석사업을 잘하여 필지별토양성분을 정확히 파악하지 않고서는 어디에 어떤 비료를 얼마나 쳐야 하겠는가 하는것을 똑똑히 알수 없으며 과학농사를 할수 없습니다.》

지난 시기 농업연구원 토양학연구소로는 전국각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토양분석을 의뢰하군 하였다.그때마다 김혜옥실장을 비롯한 이곳 과학자들의 마음은 괴로왔다.

(농업근로자들은 당의 뜻대로 어떻게 하나 농사를 과학적으로 짓기 위해 발이 닳도록 뛰여다니며 아글타글 애쓰는데 과학자인 우리는…) 하고 생각하니 자책을 금할수 없었다.

현실은 농업근로자들 누구나가 어디서나, 어느때나 손쉽게 리용할수 있으면서도 값눅은 분석기구와 분석방법 등을 새롭게 연구해낼것을 요구하고있었다.

(한몸을 다 바쳐서라도 기어이 우리 농업근로자들이 자기 손으로 제땅의 상태를 진단하고 개량대책을 세울수 있게 하리라.)

연구집단은 이런 결심을 안고 세계적으로 인정되고있는 분석방법들을 전면적으로 파악하고 우리의 실정에 맞게 연구도입하기 위한 사업에 달라붙었다.

결정적으로 우리 나라의 토양류형에 알맞는 추출용매를 연구해내야 하였다.과학자들은 이를 위해 여러해동안의 고심어린 노력을 기울여 끝끝내 하나의 용매로 각이한 류형의 토양속에 존재하는 십여가지의 가동성영양원소를 동시에 추출할수 있게 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때 이들의 기쁨은 참으로 컸다.하지만 이것은 연구의 시작에 불과하였다.

추출된 십여가지의 영양원소들속에서 매 영양원소의 함량을 정확히 평가하자면 영양원소에 따라서 분석방법과 분석시약이 서로 달라야 하였던것이다.

하나의 영양원소를 분석하기 위해 보통 수십, 수백번의 실험이 진행되였다.아무리 애를 써도 일부 영양원소에 대하여서는 다른 영양원소들의 영향을 피할수 있는 반응조건과 시약문제를 해결할수 없었다.

(우리의 목표가 현실성이 없는 한갖 꿈이 아닐가.)

이런 불안과 우려가 시시각각 갈마들어 마음속동요를 일으키였다.

그때 김혜옥실장의 눈앞에 어려온것은 천리, 2천리길을 달려와 토양분석을 의뢰하던 농업부문 일군들과 근로자들의 땀배인 얼굴이였으며 귀전에 들려온것은 이런 분석을 좀 간편하게 현지에서 할수는 없는가고 하던 그들의 절절한 목소리였다.

누구나 쉽게 풀수 없는 어려운 과제이기때문에 모두가 다름아닌 우리 과학자들의 두뇌와 열정에 기대를 가지는것이 아니겠는가, 우리에게는 성공하기 전에는 물러설 권리가 없다고 하는 실장의 절절한 토로는 곧 시련앞에 나약해지려는 자기자신에 대한 엄격한 요구성이였다.

과학자들은 마음을 다시 다잡고 분연히 일떠섰으며 완강한 투지로 사색과 탐구를 거듭해나갔다.연구사업에서 전진이 이룩될 때마다 과학자는 명예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고 권고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하루도 쉬지 못하고 모든 사색과 정력을 오직 연구사업에만 쏟아붓는 이들에게는 학위론문을 쓸 시간적여유도 없었다.

이렇게 탐구에서 탐구에로 이어진 10여년세월이 흘렀다.

해당 과학자들과 힘을 합쳐가며 피나게 연구하고 간난신고한 보람이 있어 이들은 현장조건에서도 토양속의 여러가지 다량, 미량원소함량 등을 신속정확히 평가하여 과학적인 개량대책과 시비체계를 세울수 있는 다기능적인 토양분석기구와 분석방법, 분석시약문제를 해결할수 있었다.

농업연구원 토양학연구소의 과학자들은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토양분석을 보다 과학화, 실용화하기 위한 연구를 더욱 심화시키기 위하여 오늘도 지혜와 열정을 다 바쳐가고있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강철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