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재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후회가 없이 떳떳하게 살고 부끄러움이 없이 아름답게 사는것이 우리 시대의 참된 삶입니다.》

인생의 제일 큰 재부는 무엇이며 어떤 재부를 가진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되는가.

인간이 살고있는 지구상에는 형형색색의 가치관과 인생관이 존재하고있다.나름대로의 주장과 론거로 포장된 그 모든 견해 가운데는 삶의 가치와 인생의 행복을 인간개인의 경제적만족과 물질적부유에서 찾는것도 있다.

언제인가 한 백만장자는 《당신은 행복합니까?》라는 기자의 물음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세상에 행복을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을것이다.나도 행복을 바란다.때문에 나의 한생은 그 행복을 위한 치부로 흘러온 한생이라고 말할수 있다.끊임없는 리윤과 축적은 나에게 거대한 재부를 안겨주었고 백만장자라는 명성을 지니게 해주었다.나에게는 가질수 없는것, 누릴수 없는 향락이란 없다.그러나 하고싶은것, 가질수 있는것을 다 이루고난 오늘 나는 내가 과연 행복한가에 대한 물음에 선뜻 대답할수 없다.그런데 보다 큰 불행은 내가 그 리유를 딱히 알수 없다는것이다.

자신이 행복한가에 대한 물음에 대답할수 없고 그 리유조차 모른다는 백만장자의 고백, 우리는 여기에서 무엇을 느끼며 새기게 되는가.

인간은 사회적존재이다.사람의 모든 사고와 행동은 사회적성격을 띠게 되며 인간의 삶의 가치와 행복은 사회와 집단과의 관계속에서만 이루어지고 결정되며 평가되게 된다.

만일 생의 리유와 목표가 오직 개인의 포만과 치부에 있다면 그런 삶이 동물의 생활과 다른것이 무엇이며 그런 한생을 어떻게 사회와 집단앞에 떳떳하고 필요한 삶이라고 말할수 있겠는가.

자본주의세계에는 박애라는 면사포에 싸인 자선이라는것도 있다.그러나 그것은 착취와 탐욕, 부패한 사회현실을 가리우기 위한 한갖 위선이고 일종의 자체위안일따름이며 어느 한 개인과 집단에 대한 값싼 선심으로는 될지언정 해당 사회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는 참된 헌신과 기여로는 될수 없다.

자기 하나만을 위한 세계, 개인의 리익만을 추구하는 생활에서 따뜻함과 고상함, 진정한 사회적정의를 찾아볼수 없듯이 자산가들에게 과도한 소유와 향락의 과잉에서 맛보는 동물적만족은 있을지 몰라도 사회적인간으로서 집단과 사회앞에 지닌 의무에 대한 떳떳함, 고상하고 아름다운 삶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있을수 없다는것은 자명한 리치이다.자본과 금전때문에 자식이 부모를, 부모가 자식을 죽이는것이 례상사로 되고있는 사회, 개인의 재부가 곧 사회악의 근원으로, 범죄의 온상으로 되고있는것이 바로 자본주의세계이다.

여기에 인생의 참된 재부란 무엇이며 인간의 진정한 삶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를 보여주는 한 수리공부부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우리 나라 서북변에 자리잡고있는 자성군에서 편의봉사사업소 로동자로 일하고있는 최분옥동무와 리광일동무는 이 땅 어디서나 볼수 있는 소박하고 평범한 사람들이다.그들에게 남다른것이 있다면 일찌기 아버지, 어머니를 여읜채 부모의 따뜻한 정을 모르고 살아온것이다.그러나 그들부부의 삶에는 부모잃은 가슴속아픔은 있을지언정 설음과 고통, 비애와 절망은 없었다.

먹여주고 입혀주고 내세워준 고마운 품을 위해 그들부부는 온 나라가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던 고난의 시기 10여명의 부모잃은 아이들을 떳떳하게 키워 조국보위초소와 사회주의건설장에 내세웠고 지난 10여년간 위대한 수령님들을 주체의 태양으로 높이 우러러모시기 위한 사업과 조국의 부강번영에 이바지하는 좋은 일을 스스로 찾아하였다.

최분옥동무와 그의 남편은 평범한 수리공으로 일하는 나날 매달 로동의 대가로 받는 보수의 일부를 나라를 위해 바치였다.그것이 크든작든 최분옥동무와 리광일동무에게는 바치는 삶 그자체가 행복이고 희열이였으며 거기에서 사는 보람과 긍지를 느꼈다.

그들이 나라에 바친것, 그것은 자산가들의 수중에 든 억대의 재부와는 견줄바가 못된다.그러나 인간이 지녀야 할 가장 고상한 도덕적감정인 량심과 의리, 아름답고 훌륭한것에 대한 삶의 지향을 어찌 금전의 크기나 가치와 나란히 할수 있겠는가.

최분옥동무는 삶의 보람과 행복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아마 지금껏 그것을 모아두었다면 생활에서의 만족은 어느 정도 느꼈을지도 모릅니다.하지만 그게 인생의 전부일가요? 전 아니라고 봅니다.나라에서는 평범한 녀성수리공인 저에게 사회주의애국공로자, 군인민회의 대의원이라는 값높은 영예를 안겨주었습니다.거리에 나서면 사람들이 저마다 〈우리 부부수리공〉, 〈우리 대의원〉이라고 정답게 부르며 따릅니다.사회와 집단을 위해 살고 그것으로 하여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것이야말로 얼마나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삶입니까.그래서 전 행복합니다.》

우리 시대 인간들의 인생관, 우리 사회의 행복관은 바로 이러하다.

막대한 재부를 쌓아놓고 살아도 평생 인생의 참된 행복을 알지 못하는 재산가와 소박하고 평범한 생활속에서도 삶의 진정한 기쁨과 보람을 찾을줄 아는 수리공의 인생관을 통하여 우리는 집단의 리익속에 개인의 행복이 있고 한생의 재부도 조국과 인민을 위한 헌신속에서 그 가치가 더욱 빛난다는 진리를 다시한번 심장깊이 절감하게 된다.

오늘 우리 사회에는 자성땅의 수리공부부처럼 가사우에 국사를 놓을줄 아는 훌륭한 인간들이 참으로 많다.

수력건설자들의 한생은 대부분 아늑한 집이 아닌 건설장에서 흘러간다.때로는 인적없는 깊은 산중에서, 때로는 찬바람 스며드는 천막에서 인생의 귀중한 모든것을 아낌없이 바쳐가는 그들에게 굳이 재산이라고 한다면 건설장을 옮길 때마다 등에 지고다니는 배낭 하나가 전부이다.그러나 눈에 띄울만 한 가산은 없어도, 자식들에게 물려줄 요란한 재산은 없어도 자기의 손으로 일떠세우는 기념비적창조물들과 날마다 늘어나는 조국의 재부에서 더없는 삶의 보람을 느끼며 나라의 부강발전을 위해 헌신의 구슬땀을 바쳐가는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가장 아름다운 인간, 인생의 참된 재부의 소유자들이 아니겠는가.

얼마전 한 해외동포는 온 나라 전체 인민이 화목한 한가정이 되여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누며 광명한 미래를 향해 어깨겯고 나아가는 우리 공화국의 현실을 목격하고 자기의 글에 이렇게 썼다.

《…왜 경제적으로 발전했다는 나라들에서 집없는 사람들이 거리를 헤매며 왜 극단적인 자살까지 하는 사람들이 그리도 많은것일가? 반면에 이북에서는 왜 집없이 거리를 헤매는 거지가 하나도 없으며 자살하는 사람들이 없을가? 왜 그렇게 잘산다는 미국에서 밤만 되면 무서워 거리를 걸어다닐수가 없는 반면에 이북에서는 밤늦게 걸어다녀도 안전할가? 북에서 말하는 잘산다는 의미가 과연 무엇일가? 하고 나는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인생의 참된 재부, 그것은 크기와 가치로 계산되는 물질적부이기 전에 량심과 의리로 아름답고 덕과 정으로 따뜻한 인간적향기이다.사회와 집단을 위해 무엇을 바쳤고 어떻게 이바지했는가에 대한 긍지높은 자부심이며 세월이 흘러도 조국과 후대들의 기억속에 영원한 고귀한 이름이고 떳떳한 삶의 자취이다.

모두다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에 대한 보답과 헌신을 한생의 가장 소중한 재부로 안고 살자.나라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한 길에 창조와 로력의 구슬땀을 아낌없이 바치자.

그러면 인생은 시대와 력사가 기억하고 찬양하는 보람찬 삶으로 빛날것이며 우리 인민의 모든 꿈과 리상인 사회주의강국의 찬란한 현실은 더 빨리 앞당겨지게 될것이다.

본사기자 리남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