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트겐장치를 우리 식으로 현대화한 미더운 과학자들

김책공업종합대학 동력공학부에서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과학자, 기술자들은 당이 마련해준 과학기술룡마의 날개를 활짝 펴고 과학적재능과 열정을 총폭발시켜 누구나 다 높은 과학기술성과들을 내놓음으로써 부강조국건설에 이바지하는 참된 애국자가 되여야 합니다.》

김책공업종합대학 동력공학부의 과학자들이 렌트겐장치의 현대화연구를 시작한것은 10여년전이였다.

당시 낡은 렌트겐장치들을 우리 식으로 현대화하여 설비가동률을 최대한 높이는것은 인민들의 건강증진을 위하여 매우 절실한 문제로 제기되였다.

여러 치료예방단위를 료해하는 과정에 현실의 이 요구를 절감한 정민석동무를 비롯한 과학자들은 이미 맡고있는 연구과제들도 많았지만 스스로 렌트겐장치의 현대화를 위한 탐구의 길에 나섰다.

환자와 의사에게 주는 피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한 방도를 모색하는 과정에 과학자들은 형광판에 비쳐지는 렌트겐화상을 화상수감부를 리용하여 멀리에서 콤퓨터나 텔레비죤으로 볼수 있게 할 착상을 하게 되였다.이것을 실현하자면 화상수감부의 성능이 매우 높아야 하였다.

이에 대한 파악이 전혀 없었지만 과학자들은 진지하게 배워가면서 연구를 심화시키였다.그가운데서도 림상실천에 적합한 화상수감부를 선택하기 위한 연구는 참으로 어려웠다.

수천, 수만건에 달하는 방대한 기술자료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였지만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는 화상수감부자료를 찾을수 없었다.이 문제를 해결하는데만도 근 10년이라는 기간이 걸리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어려운 연구였는가를 짐작할수 있을것이다.

마침내 과학자들은 화상수감부를 확정하고 가장 합리적인 수감방식을 선정하였다.뿐만아니라 콤퓨터와 텔레비죤화면에서 진단을 할수 있게 렌트겐장치의 구성체계를 새롭게 확립하고 우리 식의 수자조종반도 설계제작하여 원거리에서 장치의 동작상태를 실시간적으로 감시 및 조종할수 있게 하였다.

연구과정도 어려웠지만 현장도입과정은 더욱 어려웠다.

렌트겐장치를 현대화하자면 낡은 부분품들을 다 들어내고 수자조종반을 도입하여야 하였다.한가지 형태도 아니고 수십가지 류형의 렌트겐장치를 현대화한다는것이 헐치 않았다.

여러 단위를 찾아다니며 부속품들을 가공해오는 일도 쉽지 않았고 수백kg이나 되는 절연기름속에 잠겨있는 변압기를 들어내여 수리하는 일도 힘에 부치였다.

오래동안 소화장애로 고생하던 정민석동무는 현장도입이 심화될무렵 자기의 병이 최악의 상태에 이르렀다는 뜻밖의 진단을 받게 되였다.그는 주저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때 흔들리고있던 그의 마음을 다잡아주고 힘과 용기를 준것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김책공업종합대학의 교원, 연구사들에게 최상의 영광을 다 안겨주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한량없는 사랑과 믿음이였다.

(심장이 뛰는 한 마지막 피 한방울이 다할 때까지 렌트겐장치들의 현대화를 기어이 실현하리라.)

이런 굳은 결심을 안고 그는 연구사업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오랜 기간의 연구과정에는 도중에 떨어져나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을 탓할수 없었다.그도 어쩌다 집에 들어왔다가 그러다 영영 쓰러지면 어떻게 하는가고, 스스로 맡은 연구과제라는데 꼭 그렇게 일해야만 하는가고 하면서 눈물이 글썽해있는 안해를 볼 때면 저도 모르게 마음이 나약해지군 하였던것이다.

하지만 렌트겐장치의 현대화는 어느 과학자이든 반드시 해야 할 일이며 당의 뜻을 관철하기 전에는 물러설 권리가 없다는 과학적신념이 바위처럼 든든히 자리잡았기에 그는 모진 시련과 괴로움을 꿋꿋이 이겨나갔다.

그는 치료예방단위들을 찾고 또 찾으며 렌트겐장치의 현대화를 위한 사업을 중단없이 진행하였다.

언제인가 어느 한 단위의 책임일군이 소문을 듣고 그를 찾아왔다.

현지에 나가 렌트겐장치를 보니 개조가 아니라 새로 제작해야 하였다.

그는 이런 실태를 일군에게 알려주면서 다른 단위에 사장되여있는 설비를 이관해온 다음에 다시 론의하자고 말하며 한발 물러섰다.

그에게 책임일군은 말하였다.렌트겐장치를 쓰지 못해 중환자가 들어오면 수십리 떨어진 다른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고있다고, 인민들앞에 도저히 면목이 없다고.

그러면서 꼭 도와달라고 절절히 부탁하였다.

그날 쾌히 답변을 주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 정민석동무는 잠을 이룰수 없었다.

다음날 그는 다시 그 단위로 갔다.일군들과 렌트겐장치를 현대화하기 위한 대책을 의논하는 과정에 그는 내부예비를 최대한 동원리용할수 있는 가능성을 찾게 되였다.

사장되여있던 어느 한 장치에서 중요부분품들을 회수리용할수 있는 방도를 찾아쥐게 되였던것이다.쓸수 있는 부분품들은 회수하여 리용하고 없는것은 새로 만들면서 렌트겐장치를 하나하나 완성해나가는 일은 말그대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전환시키는 과정이였다.

제일 난문제는 렌트겐장치의 심장부라고 할수 있는 고전압변압기를 동작시킬수 없는것이였다.페기된 장치에서 회수한 고전압변압기를 살리자면 회로설계부터 다시 하여야 하였다.

아름찬 과제였지만 정민석동무는 주저없이 접어들었다.숨막힐듯 한 무더위속에서 아픔을 가까스로 참아가며 설계를 다시 해나가던 그는 끝내 쓰러지고말았다.

병원의료진이 총동원되여 구급치료대책을 세웠다.침대에 누워있는 그를 눈물이 글썽해서 내려다보는 의료일군들의 눈빛을 보며 정민석동무는 생각이 많았다.그 눈빛에는 연구사선생, 빨리 건강을 회복하고 장치를 완성시켜주십시오라고 하는 병원일군들의 간절한 호소가 비껴있었던것이다.더이상 누워있을수 없어 그는 침상을 박차고 일어났다.

10여일간의 고심어린 노력끝에 시운전을 하던 날 자기를 부둥켜안고 성공이라고, 이제는 됐다고 환성을 올리는 병원일군들을 보는 정민석동무의 가슴속에서는 과학자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이 꽉 차올랐다.

이렇게 정민석동무를 비롯한 동력공학부의 과학자들은 여러해동안 평양시 등 각지 수십개 단위의 렌트겐장치를 현대화하는데 이바지하였다.

적은 자재와 자금, 로력으로 낡은 렌트겐장치들을 현대화함으로써 지난 시기 암실에서 값비싼 시약과 필림을 소비하면서 투시하고 촬영하던 일은 과거로 되였다.

불밝은 방안에서 콤퓨터와 텔레비죤화면을 보면서 하루에 보통 수백명을 투시촬영하게 되였다.

과학자들은 렌트겐화상진단지원프로그람도 개발하여 진단의 과학성과 객관성을 보장할수 있게 하였으며 값비싼 연판을 쓰지 않으면서도 림상실천에 부합되는 검사환경을 마련할수 있게 하였다.결과 X선에 의한 피해를 최대한 줄이고 설비의 가동률을 훨씬 높일수 있게 되였으며 필림과 시약이 없이도 진단을 보장할수 있게 되였다.

이 성과야말로 인민보건발전에 기여하는 의의있는 성과로 된다.하지만 우리 식의 렌트겐장치현대화를 실현하는 과정에 과학자들이 얻은 가장 큰 밑천은 확고한 과학적신념과 깨끗한 량심을 지니고 연구사업에 자기 한몸을 깡그리 바칠 때 인민이 인정하고 시대가 부르는 과학자가 될수 있다는 귀중한 체험이였다.

본사기자 강철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