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의 갈피에서

파쑈교형리의 비참한 말로

 

력대로 다른 나라와 민족들에 대한 침략전쟁을 일으키고 온갖 반인륜범죄를 저지른 교형리들은 비참한 말로를 면치 못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시기 인류앞에 용서받을수 없는 죄악을 저지른 파쑈도이췰란드 전쟁광들의 운명도 달리 될수 없었다.히믈러의 종말이 그것을 말해주고있다.

히믈러는 제2차 세계대전시기 수많은 사람들을 살해한 특급범죄자였다.

겝벨스가 파시즘의 광신적인 선전자였다면 히믈러는 이 사상의 실현자였다.

히믈러의 명령으로 파쑈도이췰란드에 강점된 나라들에서 대중적학살만행이 감행되였다.이자의 직접적인 승인과 지휘하에 헤아릴수없이 많은 포로들과 유태인들이 총살되거나 화장로에서 불타죽었다.

히믈러는 제2차 세계대전의 형세가 점점 파쑈도이췰란드의 파멸이라는 결과에로 이어지기 시작하자 더러운 목숨을 부지해보려고 발악하였다.

이자는 파쑈도이췰란드가 패망한 후 제 목숨을 건지기 위해 수인들의 생명을 담보로 내세웠는가 하면 자기의 피비린내나는 행적을 극구 변호하기도 하였다.

파쑈도이췰란드의 패망이 기정사실화되자 히믈러는 히틀러를 배반하기로 결심하고 아이젠하워에게 자기 이름으로 항복을 제의하였다.그러한 시기에 히틀러가 자살하였다.히틀러는 유언을 통해 데니츠, 겝벨스, 보르만 등을 정권의 요직에 임명하면서 히믈러는 배제하였다.

그 순간부터 어느 한 나라도 히믈러를 파쑈도이췰란드의 항복회담상대자로 보지 않았다.

파쑈도이췰란드내에서까지도 히믈러를 경시하고 배척하였다.그리하여 히믈러는 제 목숨을 건지기 위해 인차 그 어데론가 사라졌다.

파쑈도이췰란드의 무조건항복이 선포된 때로부터 며칠 지나 히믈러는 부상자로 가장하고 도망치던 도중 포로되였다.

히믈러는 자기가 특별대우를 받을것이라고 어리석게 타산하였다.심문당시 히믈러는 자기의 몸값을 올리고 범죄의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구구한 변명을 늘어놓았다.그러나 누구도 이자를 동정해주지 않았다.

파쑈교형리왕초는 저지른 범죄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날수 없게 되였다.

더는 그 어떤 희망도 가질수 없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힌 히믈러는 신체검사도중 독약을 깨물고 자살하였다.

히믈러의 죽음에 대한 소식이 세계의 출판물들에 널리 실렸다.출판물들은 하나같이 히믈러를 《수천수만의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 교형리》, 《가장 위험한 전범자》로 락인하였다.

력사의 한페지를 어지럽힌 파쑈교형리의 운명은 이렇게 끝났다.

본사기자 리철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