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의 나날로부터 60여년

력사의 땅 원화리와 더불어 길이 전해지는 은혜로운 사랑의 이야기

 

사연도 많고 뜻도 깊은 력사의 땅 원화리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는 이태전 11월에 있은 가슴뜨거운 일로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그날은 평원군 원화협동농장에서 위대한 수령님을 명예농장원으로 모신 63돐을 3일 앞둔 날이였다.

머나먼 현지지도의 길에서 돌아오신 그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평안남도당위원회에서 올린 문건을 마주하게 되시였다.원화협동농장에서 결산분배와 관련하여 명예농장원이신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 분배몫을 올린다는 내용의 문건이였다.

전화의 나날 원화리농민들과 함께 밭고랑도 째시고 삼태기로 거름도 내시며 씨앗을 묻으시였으며 전후 협동조합이 조직되였을 때에는 만면에 해빛같은 미소를 지으시며 자신께서도 이 협동조합의 조합원이 되겠으니 함께 농사를 잘해보자고 하신 어버이수령님!

최고인민회의 제8기 대의원선거의 날인 어느해 11월 자신께서도 원화협동농장의 명예농장원이라고, 그러니 원화협동농장은 다른 협동농장들보다 농사를 더 잘 지어야 한다고 하시며 도당위원회에서 잘 도와주어야 한다고 하신 위대한 장군님!

우리 조국에서의 수령과 인민의 위대한 단결, 그 빛나는 력사의 축도이며 증견자인 평원군 원화리,

경애하는 우리 원수님의 심중에 만단사연과 더불어 참으로 깊이 간직된 력사의 고장이였다.

* *

어버이수령님께서 원화리농민들과 첫 인연을 맺으신 날은 가렬처절한 전화의 나날이였다.

키낮은 울바자에 달린 사립문은 열려져있었으나 집주인을 깨우지 못하게 하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검부레기들이 흩날리는 쌀쌀한 한지에서 새날을 맞으시였다.이제 날이 밝으면 또 씨붙임전투를 해야 할 마을사람들을 다문 얼마간만이라도 더 재우려고 마음쓰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그날 종일 농민들과 승리의 씨앗을 뿌리시며 폭탄구뎅이도 메우고 곡식을 심어야 하며 빈땅같은것도 잘 리용하여야 한다고, 귀중한 땅을 한치도 묵이지 말고 모조리 경작함으로써 더 많은 알곡을 생산하여야 한다고 일깨워주신 어버이수령님,

쉴참에는 울퉁불퉁한 논머리에 스스럼없이 앉으시여 로인들에게 담배도 권하시며 농촌경리를 발전시키려면 관개공사를 비롯하여 할 일이 대단히 많은데 농업협동조합을 조직하고 농민들이 하나로 뭉쳐 일한다면 많은 일을 성과적으로 할수 있다고 하시면서 농업협동조합을 조직해야 농민들의 생활을 근본적으로 개선할수 있다고, 협동조합을 조직하고 단합된 힘으로 마을을 잘 꾸려나가면 원화리는 오곡이 무르익고 백과주렁지는 아름다운 고장으로, 일하기도 좋고 살기도 좋은 고장으로 될것이라고 가르쳐주신 어버이수령님,

전후 사회주의협동화의 장엄한 포성과 함께 원화리에 협동조합이 태여났을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기쁨에 넘치시여 조합원명단에 자신의 존함을 써넣도록 하시였다.

지금으로부터 35년전 4월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뵈옵게 된 자리에서 어느 한 나라의 농업생산협동조합 관리위원장일행은 자기들이 어느 협동농장을 참관했을 때 그 농장의 농장원명부에 주석님과 김정일동지의 존함이 있는것을 보았다고 수령님께 말씀올리였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농장이 바로 평원군에 있는 원화협동농장이라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나는 전후 우리 나라에서 농업협동조합이 한창 조직될 때 평원군 원화리에 나가 그곳 조합원들과 담화하면서 나도 이 협동조합의 조합원이 되겠으니 함께 농사를 잘해보자고 하였습니다.그때부터 나는 원화농업협동조합의 조합원으로 등록되였습니다.》

찾으실 때마다 원화리는 우리 나라 사회주의농업협동화의 본보기가 마련된 영광의 땅이라고, 나도 여기 조합원이라고, 우리 함께 농사를 잘해서 원화협동농장을 발전시켜보자고 말씀하시며 농산계획도 친히 세워주신 어버이수령님,

참으로 원화리농민들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아끼지 않으신 우리 수령님이시다.

갓 조직된 조합에서 운수수단이 부족되여 애로를 느끼고있다는것을 아시고 여러필의 말과 달구지를 보내주시고 자신께서 저택에서 보시던 수많은 농업기술도서와 함께 리용하시던 라지오까지 보내주신 어버이수령님,

전후 원화리농민들이 추워할세라 수백벌의 솜옷도 마련해주시고 그들의 세간을 불구어주시려 수백마리의 양, 오리, 닭, 돼지를 보내주신 어버이수령님이시였다.

어느해 6월 어버이수령님께서 또다시 원화협동농장을 찾으시였다.

전후에는 이 협동농장에 폭탄구뎅이, 금점구뎅이들이 많았는데 그것을 메우고 토지를 멀끔하게 정리해놓으니 아주 좋다고, 그동안 원화협동농장에서 일을 많이 하였다고 원화리가 걸어온 길을 감회깊이 추억하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원화리는 내가 전후에 농촌을 지도하면서 농업협동조합을 처음으로 무은 곳입니다.

그때 원화리에 좋은 로인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퍽 늙었을것입니다.그때 내가 남편이 적들에게 피살된 한 아주머니의 아들을 만경대혁명학원에 보내주었습니다.그 아주머니의 아들은 만경대혁명학원을 졸업하고 인민군 어느 부대에서 군관으로 복무하고있습니다.아마 그 아주머니도 이제는 늙었을것입니다.》

그 녀인이 아직 농장에서 일하고있다는것을 아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더없이 기쁘시여 전쟁시기 원화리를 지도할 때 찍은 사진이 우리 집에도 있다고 기쁨어린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력사의 그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지금은 전후에 농업협동조합을 무을 때와는 사정이 다르다고, 전후에는 농촌에서 협동화를 실현하는것이 선차적인 문제로 나섰지만 지금은 농촌경리의 종합적기계화를 실현하여 로력을 적게 들이고 일을 헐하게 하는것이 중요한 문제로 나선다고 하시면서 기계화의 앞날을 환히 밝혀주시였다.

토지정리를 할수 있는 밭들은 다 정리하여 모든 영농작업을 기계로 할데 대한 문제, 강냉이영양단지모옮겨심기도 기계로 할데 대한 문제, 김도 기계와 살초제로 잡고 후치질도 기계로 하고 가을걷이도 기계로 할데 대한 문제…

혈연의 정을 나눈 원화리농민들을 극진히 위하시는 기슭이 없는 사랑의 대하였다.

원화리사람들이 평양견학을 하게 되였을 때의 이야기는 또 얼마나 오늘도 만사람의 심금을 뜨겁게 울려주고있는것인가.

몸소 여러대의 운수수단을 보내주시면서 견학은 어디어디를 하고 점심식사는 어느 식당에서 하라고까지 미리 정해주신 어버이수령님이시였다.

견학을 떠나면서 원화리사람들은 친정아버지의 집을 찾는 자식의 심정으로 어버이수령님께서 친히 보내주신 과일나무모들을 정성껏 가꾸어 따들인 첫 과일을 알알이 골라가지고 떠났다.평양견학의 나날 그들은 온 마을 사람들의 정성이 깃든 첫 과일을 어버이수령님께 삼가 올리였다.

평양사람들 아니 온 나라 사람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원화리농민들이 평양견학을 떠들썩하게 하고 돌아온 다음날이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원화리를 찾으시여 평양견학을 한 소감에 대하여 한사람한사람에게서 들어주시였다.

그런데 어이하랴.어버이수령님께서 그 과일값을 친히 보내주신것 아닌가.

우리 수령님은 이렇게 원화리사람들의 생활에 보탬을 주시려고 늘 마음쓰신 친어버이이시였다.

언제인가는 새로 건설된 살림집을 돌아보시며 집이 참 좋다고, 이런 집에서는 땅의 주인인 우리 농민들이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흰쌀밥과 물고기반찬을 보시고서는 원화리농장원들의 생활이 이만하면 괜찮아졌다고 더없이 만족해하신 어버이수령님,

비내리는 봄날에는 질척한 포전에 들어서시여 어린 랭상모의 잎을 하나하나 세여보시며 모를 낼 날자까지 확정해주시고 논과 밭이 꺼지게 농사가 잘된 그해 가을에는 물결치는 벼이삭을 쓸어보시며 이삭당 알수까지 가늠해보신 어버이수령님이시다.

이렇게 찾고 또 찾으시여 수십차례…

원화리농민들과 혈연의 정을 나누신 전화의 그날부터 위대한 혁명생애의 나날 늘 그들과 함께 계신 어버이수령님이시였다.

원화협동농장을 더욱 살기 좋은 문화농촌으로 전변시켜주시려 위대한 장군님께서 새겨가신 헌신과 로고의 력사는 또 얼마나 뜨겁게 전해지고있는것인가.

어느해 2월 16일이였다.

원화리를 찾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원화협동농장은 수령님께서 몸소 농장원이 되시여 이끌어주시는 농장이라고, 수령님께서는 어느 하루도 원화협동농장을 잊으신적이 없다고, 얼마전에도 수령님께서는 원화협동농장이 올해 농사차비를 어떻게 하고있는지 모르겠다고 걱정하시였다고 말씀하시였다.

이날의 현지지도는 우리 장군님께서 만류하는 일군들에게 원래 자신께서는 생일을 쇠지 않는다고, 자신께서는 수령님의 심려를 덜어드릴 일감을 찾아냈을 때가 제일 즐겁다고 하시며 진행하신 뜻깊은 현지지도였다.

이렇게 농장을 찾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눈덮인 비탈길에 사랑의 자욱자욱을 수놓아가시며 원화협동농장에서 농사도 잘 짓고 마을도 잘 꾸리며 과수원도 더 많이 조성하여 농장살림을 한계단 높이 추켜세울데 대하여, 문화주택도 계속 지어 모든 농장원들이 문화주택에서 살게 하며 마을들을 위생문화적으로 깨끗이 거두고 도로들도 잘 관리하여 농장을 더욱 살기 좋은 문화농촌으로 전변시킬데 대하여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이렇게 원화리를 찾고 또 찾으시는 나날에 어버이수령님을 높이 모신 원화협동농장 농장원명단에 자신의 존함을 새겨주신 위대한 장군님이시였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원화땅을 찾고 또 찾으시며 농장살림을 보살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은덕에 어이하면 보답할것인가.

이런 절절한 생각으로 가슴 불태우며 원화리사람들은 직심스럽게 농사를 지었고 살림을 윤택하게 꾸려나갔다.

그러던 어느날 그들은 농장원총회를 열고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몫으로 매해 농장원들이 받는 분배몫을 평균기준으로 하여 현금을 저금해놓기로 결정하였다.하여 원화협동농장에 사연깊은 두개의 저금통장이 생겨나게 되였던것이다.

이렇게 10년동안 저금해두었던 분배몫을 원화리사람들은 위대한 장군님을 명예농장원으로 모신 10년이 되는 해 가을 어버이수령님께 삼가 올리였다.

한 일군으로부터 이 사실을 보고받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무척 감회로우시였다.그리고 기쁘시였다.

협동조합을 처음 조직할 때는 이불도 변변한것이 없었는데…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못내 기쁘신 어조로 일군에게 물으시였다.

동무는 이 노래를 아오? 이 많은 분배를 어디에 다 쓸가.

이윽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원화협동농장에서 자신의 몫으로 10년동안 분배하여 저금한 돈으로 농장에 모자라는 륜전기재들을 보충해주도록 하자고 이르시였다.

며칠후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 일군을 부르시여 원화협동농장 농장원들이 무엇을 요구하던가고 물으시였다.

뜨락또르와 련결차, 화물자동차가 더 있으면 좋겠다는 농장원들의 의사를 헤아리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곧 수첩을 펼치시고 륜전기재들의 값과 대수를 맞춰가시며 계산하시였다.

우리 농민들에게 꽃피는 사회주의 새 생활을 마련해주시고 오늘은 또 자신의 분배몫으로 농기계들까지 사서 보내주시려 마음쓰시는 어버이수령님,

전화의 나날부터 깊은 인연을 맺은 원화리농민들이 잘살게 된것이 그리도 기쁘고 만족하시여 그처럼 행복에 겨워하시는 어버이수령님을 우러르며 일군은 솟구치는 격정을 금할수 없었다.

이렇게 마련해주신 뜨락또르와 련결차, 자동차들이 줄지어 원화땅에 들어서는 날 마을사람들은 10여리밖에까지 마중나와 만세를 부르며 덩실덩실 춤을 추지 않았던가.…

그때로부터 24년이 되는 두해전 11월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력사의 땅 원화리농민들이 위대한 수령님들께 분배몫을 올리게 되는 자료를 보게 되시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들과 가슴뜨거운 혈연의 정을 맺은 원화리농민들이 올린 사연깊은 분배몫에 대한 자료를 보게 되신 경애하는 원수님의 감회와 격정이 얼마나 크시였으랴.

원화리농민들을 지극히 위해주신 어버이수령님의 위대한 사랑의 한평생을 더듬으시며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뜨겁게 회억하시였다.

《1993년 가을이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자신의 분배몫을 받으시고 그 돈으로 원화협동농장에 자동차와 농기계들을 마련하여 보내주신 그날 일군들이 우리 수령님께 또 빈봉투만 남았다고 말씀올렸습니다.

그때 수령님께서는 왜 빈봉투겠소, 인민들을 위해 바친 그 빈봉투가 나에게는 억만금이 담겨진것보다 더 무겁게 느껴진다고 뜨겁게 교시하시였습니다.》

인민을 위하시는 수령님의 그날의 그 교시를 되새기시며 가슴후더워짐을 금치 못하신 경애하는 원수님이시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지금까지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 분배몫으로 올린 알곡과 현금가운데서 알곡은 농장원들에게 그대로 나누어주며 현금으로는 화물자동차와 뜨락또르, 비료를 마련하여 농장에 보내주자고 하시였다.

원화리농민들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들의 사랑을 이어주시려 수령님들의 마음까지 합쳐 세상이 알지 못하는 류례없는 사랑의 조치를 취해주신 경애하는 우리 원수님!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을 명예농장원으로 높이 모시고 일하는 원화리농민들에 대한 그이의 사랑은 이렇듯 강렬한것이였다.

며칠후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보내주신 많은 량의 알곡과 화물자동차, 뜨락또르들, 비료가 원화리에 도착하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와 위대한 장군님께서 다시 농장을 찾으신것만 같아, 그처럼 오매불망 바라던 소원이 이루어진것 같아 온 원화땅이 끓어번지였다.

자기들의 정성이 고인 한알한알의 낟알이 우리 원수님께 드리는 따끈한 밥 한그릇이라도 되여주길 간절히 바랐건만 그대로 집집에 다시 돌아올줄 어찌 알았으랴.

농장원들은 목메여 흐느끼였다.

그들은 위대한 수령님들 그대로이신 경애하는 원수님을 일편단심 높이 모시고 받들 불타는 일념으로 심장의 목소리를 터치였다.

어버이수령님들을 명예농장원으로 높이 모시고 살며 일하는 원화땅의 농민으로서의 자각을 더 깊이 간직하고 력사의 대지를 더욱 기름지게 가꾸어 년년 풍년가을을 안아오며 영광의 땅을 사회주의무릉도원으로 꾸려갈 불타는 맹세였다.

그 격동적인 자료를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밤깊도록 한장한장 기쁨속에 보고 또 보시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저으기 흥분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원화협동농장 농장원들은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 올린 분배몫이 다시 자기들에게 차례진데 대하여 격정을 금치 못해하였습니다.…

온 세상이 부러워할 만복을 받아안은 사랑의 대지 원화땅은 오늘도 불도가니마냥 끓고있다.

친아버지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경애하는 원수님을 그리며 깊은 밤에도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이 력사의 땅 원화리농민들이다.

우리 나라 사회주의농촌이 걸어온 력사의 축도인 원화리,

원화리는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의 력사가 련면히 흐르는 대지, 일심단결의 송가가 끝없이 메아리치는 땅이다.

인간은 정에 살며 그리움에 산다고 한다.하지만 날이 갈수록 더욱 강렬한 정에 사는 인민의 열화같은 진정을 그렇듯 사려깊이 헤아리시여 류례없는 화폭을 펼쳐주시는 경애하는 원수님과 같으신 그런 위대한 어버이가 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우리 당의 혼연일체의 력사와 더불어 길이 전해질 이 이야기는 천만사람의 심장을 뜨겁게 달구어주며 우리 인민모두를 영원한 그리움과 충성의 일편단심에 살게 하는 귀중한 사상적량식으로 될것이다.

위대한 수령님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심장을 불태우시며 한평생 인민을 위하신 수령님들의 사랑의 력사를 끝없이 이어주시는 경애하는 원수님!

경애하는 원수님을 높이 모시여 원화리만이 아닌 이 땅 그 어디에서나 은혜로운 사랑의 력사가 줄기차게 흐르고 그 격동적인 날과 달과 더불어 위대한 혼연일체의 년대기가 더욱 광휘롭게 수놓아지고있는것이 바로 우리 조국의 감동적인 현실이다.

본사기자 량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