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도 늦출수 없고 한순간도 소홀히 할수 없는것이 반제계급교양이다

자료의 생동성과 높은 실효

함흥시 흥남구역계급교양관에서

 

계급교양의 높은 실효는 무엇에 의해 담보되는가.

함흥시 흥남구역계급교양관 일군, 강사들의 활동이 그에 대답을 준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계급교양관 강사들은 인민군군인들과 근로자들의 계급의식을 높여주는 전초선에 서있다는 영예를 가슴깊이 간직하고 맡은 초소에서 자기의 혁명적본분을 다해나가야 합니다.》

계급교양관강사로 임명된 몇해후 일제의 강제징용, 징병책동의 야만성과 악랄성을 폭로하는 강의를 준비하던 주혜영동무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우에서 내려보낸 강의자료를 형상만 잘하여 전달하는것으로 강사의 책임을 다한다고 할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갈마들었다.보다 생동한 자료 특히 자기 고장의 자료가 없겠는가 하고 생각하던 그는 흥남비료련합기업소 계급교양실에 찾아갔다.

해방전 흥남비료공장(당시)에 끌려와 이름마저 빼앗기고 《징용 32》로 불리우며 소년로동을 강요당한 한 로인의 증언자료를 찾아 강의에 반영하였는데 참관자들의 반영이 대단하였다.

구역당위원회의 지도밑에 계급교양관에서는 이 증언자료에 기초하여 《〈징용 32〉는 고발한다》라는 제목으로 교양자료를 만들어 흥남구역과 해안구역, 흥덕구역을 순회하며 이동강의를 진행할것을 결정하고 준비에 품을 들였다.

예술선동을 배합한 이동강의의 실효는 대단하였다.

흥남비료련합기업소, 룡성기계련합기업소, 2.8비날론련합기업소는 물론이고 가는 곳마다에서 군중의 좋은 반영들이 수없이 제기되였다.

강사들은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바다가에서 감행된 살륙만행에 대한 이동강의준비를 할 때에도 직접 현지답사를 하면서 일명 《피바위》라고 부르는 학살장소를 찍은 사진을 반영하여 직관물을 만들었다.

이런 준비밑에 진행한 이동강의의 실효가 대단했다는것은 두말할것도 없다.

분노에 치를 떠는 군중의 모습에서, 복수의 함성에서 그들은 자기 임무의 중요성, 책임감을 새삼스럽게 느끼군 하였다.

하다면 이러한 높은 책임성이 어떻게 마음속에 자리잡히게 되였는가.

지금으로부터 6년전 신천박물관을 현지지도하시면서 하신 경애하는 원수님의 말씀에 접한 강사들의 가슴은 크나큰 격정으로 세차게 높뛰였다.

계급교양의 전초선을 지켜선 우리 당의 핵심, 직업적인 혁명가!

이 크나큰 믿음을 안고 강사들은 분발하였다.보다 생동한 자료를 찾아 계급교양의 실효를 높이기 위하여 발이 닳도록 뛰여다녔다.

주혜영동무만 보아도 신발수리소에서 일하는 한 로인으로부터 전쟁시기 흥남지구 대폭격을 직접 목격한 자기 어머니가 흥덕구역에 살아계신다는 이야기를 들은 날 지체없이 밤길에 올랐다.

아흔살을 넘긴 할머니는 기억을 더듬었다.

시장에 갔다오다가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으며 몰려오는 적기를 보고 대피하였는데 폭격이 끝난 후 나와보니 비료공장(당시)굴뚝이 하나도 남지 않고 건물도 성한것이 없었다.…

이 증언자료에 기초한 강의《무차별적인 폭격, 포격으로 혹심하게 파괴된 흥남땅》을 인민군대에 탄원한 고급중학교 졸업반학생들앞에서 하면서 뒤끝에 노래 《하나밖에 없는 조국을 위하여》를 불러주었는데 그 여운이 참으로 컸다.

후날 길가에서 만난 군인들이 반가와하면서 강사선생님들의 강의를 심장에 새기고 군사복무를 잘하여 표창휴가를 왔다고 할 때면 계급교양의 전초선을 지켜선 긍지와 보람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자기 초소에 대한 애착심이 없이는 책임성도, 높은 실효도 기대할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많은것을 생각케 하는 관장 차학실동무의 말이였다.

계급교양의 높은 실효,

그것은 혁명초소에 대한 무한한 애착에 뿌리를 둔 높은 책임감과 정열의 산물이 아니겠는가.

글 및 사진 본사기자 김향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