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친선의 년대기에 아로새겨진 형제적우의와 전투적단결의 력사 불멸하리

생사고락을 함께 하던 나날에

 

중국인녀성이 찾은 아들

 

1953년 11월, 우리 나라에 온 중국인민위문단 성원들속에는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중국인민지원군으로 용감히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한 천귀화렬사의 어머니도 있었다.

그는 관계부문 일군들에게 김의덕이라는 아들을 찾아달라고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전화의 나날 김의덕동무가 속한 조선인민군 구분대와 천귀화동무가 속한 중국인민지원군 구분대는 한고지에서 함께 싸우고있었다.

어느날 그들이 있는 감시소주변에 적들의 포탄이 마구 떨어졌다.위험한 그 순간 김의덕동무는 자기 몸으로 지원군전우를 덮어 구원하고 심한 부상을 당하였다.

의식을 잃은채 안타까이 물을 찾는 그를 위해 천귀화동무는 적탄속을 뚫고 고지밑에 내려가 물을 길어오다가 희생되였다.

이런 사연으로 하여 천귀화렬사의 어머니는 비록 아들은 조선에서 전사하였으나 자식과 함께 싸운 김의덕동무를 아들처럼 찾게 되였던것이다.

 

40년만에 찾은 지원군불사조의 고백

 

지금으로부터 30년전 10월 만수대의사당에서는 뜻깊은 수여식이 진행되였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영웅적위훈을 세우고 희생된것으로 알려졌던 전 중국인민지원군 군인 리옥안에게 국기훈장 제1급이 수여되였다.

40년만에 찾은 지원군불사조, 그는 과연 어떻게 되여 죽음에서 구원되였는가.

중국인민지원군 용사들이 진행한 가렬처절한 전투들중의 하나였던 송골봉전투에서 적탄에 치명상을 입고 쓰러진 그를 제일먼저 발견한것은 그곳을 지나던 한 인민군전사였다.

순간이라도 지체하면 귀중한 전우를 잃게 된다는 한생각으로 전사는 마을을 찾아 온밤 그를 업고 달렸다.의식을 잃은 지원군용사를 소생시키기 위해 마을사람들은 모두가 친혈육이 되여 지극한 정성을 기울였다.그후 여러 병원으로 옮겨가면서 치료를 받은 그는 조국으로 후송되게 되였다.

그때로부터 그는 40년동안 단 한번도 자기의 전투공로를 이야기하지 않고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왔다.자기 조국을 위하여, 공동의 원쑤를 반대하여 피흘린것을 응당하게 생각했던것이다.

못 잊을 전화의 그 나날을 추억하며 리옥안은 이렇게 고백하였다.

만약 조선의 전우와 형제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구원하지 않았더라면 자기는 벌써 송골봉기슭에 묻혀버렸을것이라고.

 

《이것은 내가 할 일이요!》

 

지난 조국해방전쟁의 두번째 해 8월 어느날이였다.

성천강의 어느 한 다리로 포탄을 실은 중국인민지원군 자동차대렬이 들어섰다.

선두차가 다리복판에 들어섰을 때 갑자기 공중비적들이 날아들었다.

끝내 선두차가 불길에 휩싸였다.뒤에는 수많은 자동차들이 꼬리를 물고 늘어서있었다.

일분일초도 지체할수 없었던 그때 다리에서 초소근무를 수행하던 한 청년이 선두차로 달려갔다.적탄에 맞아 정신을 잃고 쓰러진 운전사를 안아내린 그는 결사의 각오를 안고 운전대를 틀어잡았다.

《위험합니다.차는 내가 뽑겠소!》

뒤따라 달려온 중국인민지원군 운전사들이 웨쳤다.

《아니요.이것은 내가 할 일이요!》

이렇게 웨치면서 그는 불붙는 자동차를 몰고 성천강물속으로 떨어졌다.

그가 목숨으로 열어제낀 다리를 지나 전선으로 차를 몰아가는 지원군운전사들의 귀전에는 그가 남긴 마지막말이 오래도록 메아리쳐왔다.

《이것은 내가 할 일이요!》

지원군자동차대렬을 구원하고 장렬한 최후를 마친 그 청년은 바로 교통안전원인 공화국영웅 리성채동지였다.

본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