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도 늦출수 없고 한순간도 소홀히 할수 없는것이 반제계급교양이다

비참한 노예로동

 

해방전 일제는 《징용》의 명목밑에 길가던 사람이건, 밭에서 일하던 사람이건, 깊은 밤에 집에서 잠자던 사람이건 관계없이 닥치는대로 마구 잡아서 일본으로 끌고갔다.이렇게 끌려간 조선사람들은 살인적인 노예로동을 강요당하다가 무참히 죽거나 종신불구가 되였다.

수안군에서 살던 김진성로인의 생활체험이 이를 잘 보여주고있다.

1944년 여름 어느날 당시 18살이였던 김진성은 구장놈의 심부름으로 마을을 떠났다.

마을을 벗어난지 얼마 안되였을 때였다.

갑자기 두놈의 왜놈경찰이 달려들어 그의 두손에 수갑을 채우더니 다짜고짜로 그를 유개차에 처실었다.

왜놈들이 구장놈과 미리 짜고 그를 《징용》에 끌어갈 흉계를 꾸민줄을 알리 없었던 진성이가 왜 죄없는 사람을 잡아가는가고 항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진성이가 강제로 끌려간 곳은 일본 히로시마교외의 어느 한 목재가공공장이였다.

왜놈들은 군수용목재를 가공하는 그 공장의 주변에 철조망을 둘러치고 군견을 끌고다니면서 삼엄한 경계망을 펴고있었다.

지옥같은 공장에는 이미 1 300여명의 조선청년들이 끌려와 갖은 고역에 시달리고있었다.

그들은 2명이 한조가 되여 철도역에서 공장까지 하루에 30번이상 손달구지로 통나무를 날라야 했다.육중한 통나무 4대를 실은 손달구지를 폭격에 파괴된 험한 길로 끌고간다는것은 헐치 않았다.게다가 제대로 먹지도 못하다나니 로동자들은 허기져 쓰러지기가 일쑤였다.

한번은 김진성과 한조가 되여 손달구지를 끌던 한 청년이 도중에 쓰러진적이 있었다.전염병에 걸려 심하게 앓다가 왜놈들의 강요에 못이겨 끌려나온 그의 정상을 보다 못해 진성은 엎어진김에 잠시 쉬자고 했다.

멀리서 그들을 지켜보던 왜놈감독이 눈알을 부라리며 달려오더니 무작정 때리기 시작하였다.그리고는 《꾀》를 부리는자들에게 본때를 보인다면서 진성이와 청년을 철도옆의 전주대에 묶어놓고는 하루종일 물 한모금 먹이지 않고 굶기였다.

쇠약해질대로 쇠약해진 청년은 그날밤 종시 숨지고 말았다.

진성이는 겨우 목숨은 건질수 있었지만 감독놈에게 매맞은 후과로 종신불구가 되여 해방되기 전까지 이역땅의 여기저기를 방황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김진성로인의 해방전 생활체험은 조선사람들을 강제련행, 유괴, 랍치하여 노예로 부려먹다 못해 마구 살해하고 불구로 만든 철천지원쑤 일제의 만고죄악을 다시금 고발하고있다.

본사기자 정원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