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편단심 당과 수령을 받든 충신들의 한생에서

석탄증산으로 수령을 옹위한 고속도굴진운동의 선구자

 

우리 당과 인민의 기억속에 영생하는 충신들의 군상에는 석탄증산으로 당을 받든 고속도굴진운동의 선구자, 공화국의 첫 2중로력영웅인 김직현동지도 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확고한 신념으로 간직하고 당과 수령의 령도를 진심으로 높이 받들어나가는 사람만이 참다운 혁명가로 될수 있습니다.》

김직현동지는 나라의 석탄생산을 늘이기 위해 그리도 마음쓰시는 어버이수령님의 숭고한 뜻을 높이 받들어 자기의 모든것을 깡그리 다 바쳐 투쟁한 참된 전사였다.

주체44(1955)년 8월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조국해방전쟁시기 희생적인 투쟁으로 전시석탄수요를 보장하는데 크게 기여하였고 전후에는 미제의 야만적인 폭격으로 침수되였던 탄광을 복구하여 석탄생산을 높이기 위한 투쟁에서 뛰여난 공로를 세운 김직현동지의 3형제에게 표창장과 함께 사랑의 선물을 보내주시였다.

대를 두고 길이 전해갈 하늘같은 은덕을 받아안은 그밤을 뜬눈으로 지새운 김직현동지는 날도 밝기 전에 갱속으로 들어갔다.

굴진에서 새 기록을 창조함으로써 위대한 수령님의 은덕에 보답하려는 불타는 열망에서였다.

김직현동지의 가슴속에서는 탄광의 지질조건에 맞는 새로운 발파방법을 찾아내기 전에는 갱을 떠나지 않으리라는 맹세가 세차게 맥박치였다.

이런 결심을 안고 그는 시험발파를 련속 진행하였다.

열번, 스무번…

고심어린 시험발파는 계속되였지만 결과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

수십번의 시험발파를 거듭하던 김직현동지는 뜻하지 않은 사고로 심한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실려가게 되였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기간 김직현동지의 가슴은 타다 못해 재가 되는것만 같았다.

그는 의사들에게 사정사정하여 치료가 채 끝나기도 전에 병원에서 퇴원하였다.그길로 그는 곧바로 갱으로 향하였다.뜻밖에 김직현동지를 맞이한 갱장은 몹시 놀라와하며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어떻게 막장으로 들어가겠는가고 그를 막아나섰다.

그러는 갱장의 손을 뜨겁게 잡으며 김직현동지는 절절히 말하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다 죽었던 나를 다시 살려주셨네.다시 살아난 이 목숨이야 살아도 굴진막장에서 빛나고 죽어도 굴진막장에서 빛나야 할게 아닌가!》

김직현동지는 갱안에 들어가 착암기를 틀어잡았다.

시험발파가 또다시 거듭되였다.쉰번, 예순번…

그러던 주체45(1956)년 12월 김직현동지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 참가하여 회의휴식시간에 꿈결에도 그립던 어버이수령님을 만나뵙고 고속도굴진운동을 벌릴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받아안게 되였다.

그의 가슴은 더욱 뜨겁게 끓었다.

(그렇다! 탄광의 암벽을 고속도로 밀고나가는것이 당이 어려운 시련을 겪고있는 이때에 내가 해야 할 일이다.어버이수령님과 우리 당을 보위하는 전초선에 내가 바로 기수로 나서야 한다.)

평양을 떠나는 렬차에 올라서도 그는 어떻게 하면 합리적인 천공위치와 각도, 천공깊이를 보장하겠는가를 놓고 사색에 사색을 거듭하였다.그러한 그의 머리속에 순간적으로 한가지 방도가 떠올랐다.

너무도 흥분한 나머지 그는 기차가 정거장에 닿기 바쁘게 뛰여내려 막장으로 달음질쳤다.그리고는 착암기를 틀어잡고 발파구멍을 뚫기 시작하였다.

드디여 84번째 시험발파가 진행되였다.발파가 끝나자 그는 아직도 가스가 뽀얗게 서려있는 막장으로 나는듯이 달려들어갔다.

미장이라도 한것처럼 매끈하게 떨어져나온 발파면에는 잔공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안전등에 비쳐진 매끈한 암벽을 쓸어보고 또 쓸어보는 그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련속 울리고있었다.

《어버이수령님, 고속도굴진을 시작하겠습니다.돌파구를 열어놓았습니다.》

이렇게 김직현동지가 속한 굴진소대는 고속도굴진운동의 봉화를 추켜들었다.소대는 한달에 100m를 굴진할 높은 목표를 내세웠다.

그러자 일부 사람들은 기계화수준이 낮은 탄광에서 무슨 수로 100m를 굴진하려 하는지 모르겠다고 머리를 기웃거렸다.

김직현동지는 그들에게 단호하게 말하였다.

《고속도굴진은 당의 명령이요! 우리가 고속도굴진을 하지 못하면 혁명의 원쑤들이 좋아한단 말이요.》

그는 자체의 설비와 로력으로 100m를 굴진할것을 결심하고 소대원들앞에서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이 어려운 때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우리들을 믿고계신단 말이요.우리가 하려는것은 단순히 고속도굴진이 아니요.100m를 미는것도 수령님을 옹호보위하는 혁명투쟁이요!》

그것은 그대로 오직 어버이수령님의 크나큰 믿음에 무한한 충성으로 보답하려는 우리 로동계급의 심장의 웨침이였다.

김직현굴진소대는 한달이 아니라 18일동안에 102m를 밀고야말았다.

그 나날 김직현동지는 5개년계획을 단 1년 2개월에 끝내는 기적을 창조했다.이곳 탄광에서 타오른 고속도굴진운동의 봉화는 거세찬 불길이 되여 온 나라의 탄광, 광산들로 퍼져갔다.

주체47(1958)년 1월 김직현동지는 우리 나라의 첫 2중로력영웅이 되였다.

천리마대진군의 시작과 함께 이곳 탄광에서 타오른 고속도굴진운동의 봉화, 그것은 자기 한몸이 그대로 육탄이 되더라도 어버이수령님을 받들고 당을 보위하려는 우리 로동계급의 심장에서 뿜어져나온 충성의 불길이였다.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무한한 충성심을 안고 석탄증산의 돌파구를 열어놓은 김직현동지,

그가 보여준 수령에 대한 무한한 충실성과 결사관철의 정신은 새로운 5개년계획수행의 첫해 과업관철에 떨쳐나선 온 나라 전체 당원들과 근로자들이 따라배워야 할 산모범으로 된다.

최혁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