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다 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처럼 살며 투쟁하자!

대를 이어 나라의 산림자원을 늘여가는 참된 애국자

태탄군산림경영소 삼봉리산림감독원 김주철동무에 대한 이야기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조국과 인민의 부름앞에 말로써 대답할것이 아니라 자기 한몸을 내대고 실천으로 대답하는것이 애국자의 자세입니다.》

태탄군 삼봉리에 가면 한겨울에도 푸르청청한 산림을 볼수 있다.

잣나무며 창성이깔나무, 왕밤나무를 비롯한 경제적가치가 큰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온갖 새가 날아예며 산짐승들이 뛰노는 아름다운 숲의 주인공이 바로 태탄군산림경영소 삼봉리산림감독원 김주철동무이다.

나라의 귀중한 산림을 대를 이어가며 정을 다해 가꾸고 굳건히 지키는 김주철동무의 모습은 이 땅의 공민들에게 애국이란 무엇이며 전세대의 고결한 넋을 이어간다는것이 과연 어떤것인가를 심장깊이 새겨준다.

 

산림감독원의 아들

 

지금으로부터 17년전 가을 산림감독원으로 임명받고 군산림경영소를 나서는 김주철동무의 발걸음은 무거웠다.그 넓은 면적의 산림을 꽤 관리할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납덩이처럼 매여달렸던것이다.더우기 그가 맡은 구역에는 고난의 후과로 하여 벌거숭이로 된 곳이 많았다.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들어서는 그를 아버지가 반겨맞았다.

《삼봉리구역의 산림을 네가 맡게 되였다니 정말 기쁘구나.명심해라! 산림감독원의 일이란 부강조국의 뿌리가 되는 일이라는걸.》

지난 시기 그의 아버지도 삼봉리에서 근 30년간 산림감독원으로 일하였다.그러다나니 김주철동무의 어릴적추억은 대부분 아버지와 함께 나무를 심거나 깊은 밤 인적드문 산길을 걷던 일들이였다.

한번은 아버지와 함께 산에 올라 나무를 심고나서 언제면 이 나무가 크게 자라는가고 물은적이 있었다.그러자 아버지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대답하였다.

《한 15년쯤 지나면 잣이 열릴게다.그러면 네가 먼저 잣을 따거라.》

세월이 흘러 그 나무들에 정말 오롱조롱한 잣송이들이 열렸다.그러나 아버지는 그 잣에 손도 대지 못하게 했다.

《이건 다 종자로 써야 한다.우리 삼봉리산들에 잣나무가 꽉 들어차게 되면 그때 가서 우리도 마음껏 따먹자꾸나.》

또 이런 일도 있었다.청단군에서 찾아온 한 손님이 아이들에게 주라면서 아버지앞에 왕밤을 한구럭 내놓았다.그런데 이윽토록 왕밤을 바라보기만 하던 아버지는 우리 산에도 이런 왕밤나무가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고 하는것이였다.

다음날 그는 청단군에 가서 왕밤나무접붙이기에 필요한 접가지들을 구해왔다.아버지의 이렇듯 헌신적인 노력에 의하여 삼봉리주변의 산발들에는 잣나무와 왕밤나무를 비롯한 여러가지 나무들이 꽉 들어차게 되였다.그런데 아버지가 년로보장을 받은 후 고난이 겹쳐들면서 무성하던 산발이 푸른빛을 잃기 시작했다.아버지는 이것을 두고 몹시 괴로와하였다.…

《난 네가 이 산들을 나라앞에 직무로가 아니라 량심으로 책임진 진짜배기주인이 되길 바란다.주철아, 너에게 산림을 부탁한다.》

삼봉리의 푸른 숲을 가꾸는데 한생을 바친 아버지의 절절한 당부는 김주철동무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졌다.

김주철동무는 나무를 제일 많이 심어야 하는 구역에 대형구호판부터 세웠다.

《모든 산을 황금산, 보물산으로 만들자!》

그가 나무를 심기에 앞서 먼저 새긴 이 글발은 아버지를 비롯한 전세대들이 피땀으로 지키고 물려준 이 땅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어갈 심장의 맹세였고 철의 의지였다.

그러나 정작 일을 시작해놓고보니 산림감독원의 일은 그가 생각했던것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우선 나무모보장이 따라서지 못하고 멀리에서 나무모를 날라다 심다나니 사름률도 높지 못한것이 문제였다.

죽어버린 나무모들을 뽑아버리고 그 자리에 다시 심던 어느날 휴식참에 산리용반의 한 젊은 녀인이 드넓은 빈땅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뿜었다.

《지금같은 속도로 나무를 심다가는 우리가 꼬부랑할머니가 되여도 저 빈땅들을 다 없애지 못하겠군요.》

그의 말은 사실이였다.나무를 심어야 할 면적은 방대한데 자체양묘장을 꾸리자고 해도 녀성들뿐인 적은 로력만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아 몸을 뒤척이던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색날은 책 한권을 책상우에 펼쳐놓았다.그의 아버지가 수십년세월 산을 가꾸면서 얻은 귀중한 경험을 적어넣은것이였다.

아버지의 손때가 오른 책을 펼치던 김주철동무는 첫장에 씌여진 글줄을 보았다.

《까치산의 영웅처럼 살자!》

까치산은 태탄군과 이웃하고있는 벽성군의 어느 한 리에 있는 산이다.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침략자들이 불을 질러 벌거숭이가 되였던것을 그곳 관리위원장이 인민들을 불러일으켜 잣나무를 비롯한 여러가지 나무들을 많이 심었다.

현지지도의 길에서 그곳을 찾아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푸른 숲 우거진 까치산을 보시고 그 관리위원장에게 동무야말로 까치산의 영웅이라고 높이 치하해주시였다고 한다.

까치산의 영웅처럼 삼봉리의 산들도 푸르게 하여 위대한 수령님께 기쁨을 드릴 하나의 소원을 안고 한그루한그루 나무를 심어가꾼 아버지였다.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자신을 비추어볼수록 그는 자책감을 금할수 없었다.아버지가 섰던 초소에 아들이 섰다고 하여 대가 이어지는것이 아니며 직업이나 직무만이 아니라 사상과 정신을 물려받아야 진짜 대를 잇는것임을 그는 아버지가 넘겨준 색날은 책을 보면서 가슴절게 깨달았다.

다음날 그는 산림순시원들과 산리용반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체양묘장을 꾸릴 결심을 터놓았다.

우리 삼봉리에도 위대한 수령님의 거룩한 발자취가 새겨져있다.이 영광의 땅을 더 아름답게 가꾸지는 못할망정 조건이 어렵다고 주저하겠는가.생각해보자.위대한 수령님의 령도업적이 뜨겁게 깃들어있는 고장에 나무가 얼마 없는것을 우리 장군님께서 아시면 얼마나 가슴아파하시겠는가.…

마디마디 심금을 울리는 김주철동무의 말을 들으며 산림순시원들과 산리용반원들은 못쓰게 되여가는 나라의 산림을 놓고도 고난이 두려워 주저하며 통이 큰 일판을 벌리지 못한 자기들의 지난날을 돌이켜보았다.

고슬령의 골짜기에 자체양묘장을 꾸리기 위한 작업이 시작되였다.제멋대로 자란 잡관목들과 풀뿌리를 뽑고 돌부리들을 춰내며 땅을 일구느라 언제 낮이 가고 밤이 오는지 몰랐다.질좋은 거름을 날라다 고루 펴고 잣나무며 이깔나무, 세잎소나무종자를 심었다.

싹이 트자 하루에도 몇번씩 살펴보았고 김만 해도 한해에 열번이상 맸다.그런 지극한 정성속에 나무모들이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 어느덧 옮겨심을 때가 왔다.

김주철동무는 농장원들이 논판에서 벼모를 내듯 줄을 쳐놓고 나무를 심도록 했다.주민들이 나무심는것을 일일이 보아주던 그는 막 흙을 덮으려고 하는 어느 한 구뎅이앞에서 《잠간!》 하고 다급히 소리쳤다.주변에 있던 주민들의 눈길이 그에게로 모아졌다.

해의 위치와 나무그림자를 보며 방향을 가늠해본 김주철동무는 조심히 나무모를 들어 45°정도 돌려서 구뎅이에 다시 놓았다.흙을 덮고 물까지 준 다음 그는 어느 한 가지를 짚으며 차근차근 설명했다.

《이 가지는 양묘장에서 동남쪽으로 향해있었습니다.옮겨심을 때에도 그 방향을 그대로 유지해야 사름률을 높일수 있습니다.나무를 얼마나 많이 심었는가가 아니라 한그루라도 더 잘 자랄수 있게 하는것이 중요합니다.심은 나무가 모두 잘 자라야 여러분도 후날 떳떳하지 않겠습니까.》

주민들은 새 결심을 가다듬고 한그루한그루 정성을 기울여 심었다.

사실 김주철동무가 처음부터 산림에 대하여 잘 알고있은것은 아니였다.하지만 어떻게 하나 자기가 담당한 산들에 푸른 숲이 우거지게 하려는 각오를 안고 산길을 걸으면서도 책을 읽고 저녁늦게 집에 돌아와서도 기술잡지와 도서들을 펼쳐놓고 학습하였으며 읍에 가는 날에도 산림조성과 관련한 당정책과 과학기술적문제들을 깨알같이 적어넣은 수첩을 가지고가군 하였다.

이렇듯 불같은 열정을 지닌 사람이였기에 그는 리사람들을 불러일으켜 담당구역의 빈땅들을 모조리 찾아내여 10여만그루의 나무를 심었을뿐아니라 심은 나무의 사름률을 90%이상 보장하였다.

몇해전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조국의 푸른 숲을 가꾸는데 애국의 땀을 바쳐가고있는 산림가정들을 시대와 인민앞에 높이 내세워주시였다.이 크나큰 영광을 받아안은 훌륭한 가정들가운데는 김주철동무의 가정도 있다.

 

황금산, 보물산의 메아리

 

조국의 모든 산에 푸른 숲이 우거지게 할데 대한 당의 호소를 받들고 산림복구전투가 시작되자 김주철동무는 일판을 더 크게 벌렸다.산림조성 및 보호와 관련된 내용의 구호판들을 세우고 곳곳에 표어들을 게시하였으며 숲사이양묘장을 더 많이 조성하여 나무모생산능력을 훨씬 높이였다.

결패있고 열정적인 젊은 산림감독원을 만나 삼봉리산들이 달라져간다고 누구나 감탄하고있을 때 김주철동무의 생각은 또 다른 곳으로 뻗어갔다.오랜 세월 땅속에 뿌리박고있어도 인간생활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나무들이 있는 산림구역이였다.

(저 산들도 하루빨리 쓸모있는 황금산, 보물산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런 생각을 굳히던 그의 뇌리에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다녀가신 리원군의 잣접림이 떠올랐다.

소나무에 잣나무를 접하면 씨를 심어 나무모를 키워 옮겨심는것보다 잣나무를 빨리 자래울수 있고 잣이 달리는 시기를 훨씬 앞당길수 있었다.로력과 자재를 많이 절약할수 있는데다가 보기에도 좋고 송충의 피해까지 받지 않으니 그야말로 일거다득이라 할수 있었다.

그는 위대한 장군님께 기쁨을 드린 리원군사람들처럼 잣접림을 조성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잣접림을 조성하는 일도 말처럼 헐하지 않았다.잣나무의 눈을 따서 접그루에 붙이는 동작을 잠간사이에 끝내야 하는데 경험이 부족하고 기능이 미숙하다나니 자칫 실수하면 날카로운 칼에 손을 베이기가 일쑤였다.그때마다 손가락을 붙들고 울상이 되여 김주철동무를 바라보는 녀인들도 있었다.

어느날 김주철동무는 하루작업을 끝내고 산을 내리면서 산림조성전망도를 그들앞에 펼쳐놓았다.

자, 여기가 바로 지금 우리가 서있는 곳이다.이곳에 있는 꼬부랑소나무들을 모두 잣나무로 바꾸고 또 여기에 있는 야생밤나무들은 왕밤나무로 만들자.그리고 여기 양묘장에서 나오는 은행나무모와 참대버드나무모는 마을의 길가와 집주변에 심어 풍치를 돋구고 땔감과 목재를 해결하자.그러면 우리 삼봉리의 산과 마을은 더 아름다와질것이다.힘들어도 오늘보다 더 좋아질 래일을 그려보며 이겨내자.…

지금보다 더 아름다와질 삼봉리의 수려한 산발들을 그려보는 산림순시원들과 산리용반원들의 눈빛은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빛났다.

우리 자식들과 후대들이 더 잘살게 될 그날을 하루빨리 앞당겨오려는 마음으로 한정보한정보 산림을 개조해나가던 어느날 평양에 있는 산림부문의 한 일군으로부터 기름밤나무종자를 구해놓았으니 가져가라는 련락이 왔다.

기름밤나무로 말하면 위대한 수령님께서 몸소 저택정원에서 가꾸시면서 형태생리학적특성과 인민경제적의의를 료해하시고 그 이름까지 지어주시여 온 나라에 널리 퍼치도록 해주신 나무였다.

이런 가슴뜨거운 사연이 깃들어있고 경제적가치가 큰 나무를 가져다 심으면 삼봉리에 후대들을 위한 재부가 또 하나 늘어나게 된다는 생각으로 김주철동무는 마음이 부풀어올랐다.그는 출장준비를 서둘렀다.집을 나설 때 안해는 위탈이 더 심해진것 같은데 이번 출장길에 꼭 큰 병원에 가보라고 당부하였고 어린 자식들은 학용품이랑 간식이랑 꼭 가져오라고 졸랐다.그러마 하고 흔연히 대답하며 떠났지만 김주철동무는 그날로 돌아섰다.깊은 밤 땀을 흘리며 집에 들어선 그에게는 두개의 큰 나무모배낭만 있을뿐이였다.

《나무모는 일단 뜨면 한시라도 빨리 심어야 사름률이 높다는걸 당신도 알지 않소.그래서 걸음을 다그쳤소.우리 애들도 크면 다 리해할거요.》

그렇게 자기를 바쳐 심기 시작한 기름밤나무들이 삼봉리의 산발들에 널리 퍼졌으며 몇해전부터는 그 나무들에 열매가 달려 인민들의 생활에 이바지되고있다.

김주철동무의 집뜰안에도 그때 심은 기름밤나무가 자라고있는데 그의 세 자식은 학교와 유치원에서 돌아와 물도 주고 김도 매주면서 애지중지 돌보고있다.

산림부문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말한다.나무를 새로 심고 가꾸는것보다 산림을 지키는것이 더 힘들고 중요하다고.

김주철동무도 산림감독사업을 시작하면서 이것을 뼈저리게 느꼈다.곳곳에 돌차단물도 설치하고 해마다 농약도 뿌리면서 산불과 병충해를 미연에 방지할수 있는 대책을 세워놓았다.그런데 제일 안타까운것은 사람들속에서 나무를 찍는 현상이 없어지지 않는것이였다.막상 나무를 찍은 사람들을 만나보면 땔감문제와 집수리문제, 영농자재문제를 비롯하여 나름대로의 딱한 사정을 호소하는것이였다.

그러던중 어느 한 리에서 도에 흔한 갈을 심어 그 덕을 톡톡히 본다는 말이 들려왔다.참으로 반가운 일이였다.그런 좋은 일을 같은 도에서 사는 우리가 왜 못하겠는가고 생각한 김주철동무는 옹진갈뿌리를 얻어다가 자기 집과 퇴적장주변 그리고 마을의 빈땅들에 심었다.해빛이 잘 비치는 바다가토양에서 자라던 갈을 그늘진 산기슭에서 키우는것이 뜻대로 잘되지 않았다.일부 사람들은 그가 되지도 않을 일을 가지고 괜히 헛고생만 한다고 도리여 측은해하였다.그러나 어떻게든 땔감문제와 영농자재문제를 해결하여 주민들의 생활에도 보탬을 주고 산림을 보호하려는 그의 굳은 결심을 막을수 없었다.

부식토의 조성도 달리해보고 재배방법도 여러가지로 연구하면서 꾸준한 노력을 기울인 끝에 몇해후부터 드디여 갈이 무성하게 아지를 치며 자라기 시작했다.처음으로 갈을 수확하던 때의 일을 마을사람들은 지금도 잊지 못해하고있다.그때 김주철동무는 큰 낫으로 갈대를 썩썩 베내며 이렇게 말했다.

《이 갈을 어서 가져다가 땔감으로 쓰십시오.그대신 산에 심은 나무들을 더 애지중지해야 합니다.산림은 나라의 재부인데 우리모두가 주인이 됩시다.》

그의 진정에 주민들도 모두 감복하여 자기들도 갈을 많이 심겠다고 나섰다.이렇게 되여 모든 농가들의 뜨락에서 갈대들이 키를 솟구며 자라는 이채로운 풍치가 마을에 펼쳐지게 되였다.여기서만도 해마다 평균 600㎥의 갈이 생산되여 주민들의 살림살이와 농사일에 적지 않은 도움을 주고있으며 이런 갈풍경은 김주철동무가 사는 마을뿐아니라 이웃마을에도 퍼져갔다.이렇게 삼봉리의 산들을 푸르게 하는데 온넋과 열정을 쏟아부은 그에게 있어서 제일 기쁜 날은 언제였던가.

하루는 그가 여느때없이 환한 얼굴로 집에 들어와 안해에게 말하였다.

《여보, 아까 고슬령을 넘어올 때 노루 한쌍이 유유히 오가며 풀을 뜯어먹고있지 않겠소.》

남편이 그처럼 기뻐하는 모습을 일찌기 본적이 없었다고 하면서 그의 안해는 그날의 일을 뜨겁게 추억하였다.

《그날 우린 온밤 짐승들과 새들이 먹을수 있게 소금주머니를 만들었습니다.가로, 세로의 길이가 한 3cm정도 되게 주머니를 만들었는데 남편이 그 투박한 손으로 바느질을 하는 모습을 보니 우습기도 하고 또 슬그머니 눈물이 나기도 했습니다.제 집일이라면 그렇게 심혈을 바치겠습니까.》

숲에 산짐승들이 모여들고있다!

이것은 삼봉리의 산들이 황금산, 보물산으로 되여가고있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김주철동무는 산림을 가꾸어온 보람을 느끼며 산림순시원들과 산리용반원들, 가족들과 함께 수천개의 소금주머니와 500여개의 새둥지를 만들었고 곳곳에 물웅뎅이들도 만들어놓았다.

그 산림구역은 그후 유용동물보호구로 선정되였다.

고향의 산들에 쓸모있는 나무들이 꽉 들어차게 할뿐아니라 온갖 새들이 날아예고 짐승들이 뛰놀게 하는것, 이것이 김주철동무가 가슴깊이 품고있는 리상이고 포부이다.

돌패기골이라 불리우는 곳에 자리잡은 숲사이양묘장에서 우리와 만난 김주철동무는 이렇게 말하였다.

《아직 할 일이 많습니다.삼봉리산뿐아니라 군안의 모든 산을 황금산, 보물산으로 만들어야 후대들에게 떳떳이 넘겨줄수 있지 않겠습니까.올해에도 우리 양묘장에서 수만그루의 나무모가 생산되여 다른 리들에 나갔습니다.》

끝없이 뻗어간 삼봉리의 산발들에 산림을 가꾸고 지키기 위해 그가 찍은 무수한 발자욱은 보이지 않는다.그러나 조국을 위하여, 후대들을 위하여 더 많은 땀을 흘리려는 그의 고결한 리상은 솨-솨-설레이는 푸른 숲의 정겨운 설레임소리와 더불어 끝없이 메아리쳐가고있다.더욱 아름다와질 황금산, 보물산의 메아리, 영원히 지지 않을 애국의 메아리가 되여!

* *

우리 당은 김주철동무에게 중앙사회주의애국공로자의 영예를 안겨주었다.

김주철동무는 한없는 격정에 가슴 설레이며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우러러 삼가 옷깃을 여미고 마음다지였다.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값높이 내세워주신 산림가정답게, 중앙사회주의애국공로자답게 영원히 조국의 산림을 떠받드는 억센 뿌리로 살겠다고.

그의 아버지 김영수로인도 고마움과 격정에 겨워 눈굽을 찍었다.

산이 많은 우리 나라에는 어디 가나 산림감독원이 있고 산림초소를 지켜가는 일군들과 근로자들이 있다.누구나 김주철동무처럼 전세대들이 피땀으로 가꾸어 물려준 이 땅을 자기의 살붙이로 품어안고 후더운 애국의 땀과 열정, 지혜로 가꾸어갈 때 우리 조국은 인민의 락원으로 더 아름답게 솟아 빛날것이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김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