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도 늦출수 없고 한순간도 소홀히 할수 없는것이 반제계급교양이다

벗어날수 없었던 노예의 운명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새 세대들이 행복하면 할수록 지난날 부모들이 겪은 피눈물나는 력사를 절대로 잊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청진시의 어느 한 수산사업소에서 선장으로 일하던 박영철의 마음속에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아물수 없는 원한의 상처가 있었다.

해방전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 형과 동생을 다 잃었다.어부였던 아버지는 중병에 걸려 약 한첩 변변히 써보지 못하고 돌아갔고 형은 돈벌이를 위해서는 사람의 생명같은것은 파리목숨만큼도 여기지 않는 악착한 선주놈의 등쌀에 못이겨 파도세찬 날 돛배에 몸을 실었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했으며 어머니는 그로 인한 화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하여 영철은 아홉살 나던 해부터 어린 동생을 먹여살리려고 지주집머슴으로 들어가게 되였다.지주집에서 그에게 차례진것이란 짐승보다도 못한 생활이였다.바쁜 농사철에는 어른들과 꼭같이 논밭에서 등뼈가 휘도록 일을 하여야 했고 여느날에는 소를 끌고 들에 나가 풀을 뜯어먹여야 했으며 해질 때는 풀단을 한짐 지고 들어오고 해뜨기 전 어둑새벽에는 일어나 돼지물을 끓여야 했다.

이렇게 어린 영철이를 소와 말같이 부려먹고도 지주놈이 끼니를 에우라고 주는것은 통감자가 섞인 식은 조밥덩어리였다.영철이는 그것을 싸들고 집에 돌아가 동생과 같이 나누어먹군 하였다.

어느날 그가 자기에게 차례진 조밥덩어리를 보자기에 싸고있을 때 지주놈은 다짜고짜로 그것을 빼앗아 뜨물통에 넣으면서 다시 그랬다간 아예 이런것도 먹지 못할줄 알라고 으름장을 놓았다.영철이가 시키는 일을 다 할테니 집에서 배고파 우는 어린 동생을 생각해서 제발 사정을 봐달라고 애절하게 간청하였지만 놈은 들은척도 하지 않았다.

할수 없이 영철이는 제가 먹을것을 몰래 동생에게 가져다주군 하였는데 끝내 놈에게 걸려들었다.어느날 그의 주머니가 불룩한것을 본 지주놈은 달려들어 사정없이 그 감자를 빼앗아 소여물가마에 던져넣었다.빈손으로 집에 돌아간 그는 종일 주린 배를 달래며 자기를 기다리던 어린 동생을 끌어안고 울기만 했다.

여섯살밖에 안되였던 동생은 끝내 굶어죽었다.

하나밖에 없는 동생마저 잃고 정처없이 헤매이던 영철이는 일본인선주놈밑에서 지긋지긋한 바다일을 시작하게 되였다.

일본인선주놈은 조선인어부들을 착취하고 억압하는데서 승냥이처럼 악착하였다.놈은 아예 조선인어부들이 륙지에 올라서지도 못하게 하고 밤낮없이 물고기를 잡아들이게 했다.이렇게 조선사람들을 악독하게 부려먹고도 그들에게 응당 주어야 할 몇푼의 삯마저 제대로 주는 일이 없었다.

영철이가 넉달동안 죽도록 물고기를 잡아주고 그놈에게 삯을 받으러 갔을 때였다.놈은 품삯을 줄 대신 그물이 약간 찢어진것을 놓고 트집을 잡으면서 넉달 일한 삯을 가지고는 그물값도 안된다고 지껄여댔다.

영철이는 너무도 억이 막혀 치솟는 분노를 터뜨리고야말았다.그 자리에서 장작개비를 집어든 그는 놈의 낯판대기를 후려갈기고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그러나 나라없던 그 세월 어디에 가나 고된 노예생활을 강요당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본사기자 박철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