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조국수호정신은 오늘도 우리 심장속에 살아높뛴다

두줄기 궤도가 전하는 잊지 못할 이야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조국해방전쟁시기에 특히 철도운수부문 일군들이 아주 용감하게 싸웠습니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에 우리의 철도로동계급은 적들의 가혹한 폭격속에서도 전시수송을 원만히 보장하였으며 우렁찬 기적소리로 싸우는 인민군용사들과 후방인민들을 승리에로 고무하였다.

 

신념으로 헤쳐온 불비속만리

 

준엄한 전화의 나날에 전시수송에 크게 이바지한 사람들속에는 강동군 대리로동자구에서 살고있는 함덕원로병도 있다.

주체39(1950)년 9월 함덕원은 서울의 어느 한 역에서 인민군대 부상병들을 후송하여올데 대한 명령을 받게 되였다.어려운 임무였다.

적기들이 수시로 달려들어 폭탄과 기총탄을 미친듯이 퍼부어댔다.그러나 그보다 더 가증스러운것은 대오안에 생겨난 동요분자였다.

어느날 한놈의 배신자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놈은 달라진 전선형편에 대해 루루이 설명하고나서 북으로 가면 망한다, 남으로 나가야 살수 있다고 력설했다.

놈을 노려보는 함덕원의 눈에서는 시퍼런 불이 펄펄 이는듯싶었다.그의 입에서는 추상같은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이 기관차는 나와 함께 김일성장군님께서 계시는 북으로만 달릴것이다.공화국을 배반한 네놈은 인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을것이다.》

그러는 함덕원의 눈앞에는 해방후 어버이수령님의 품속에서 행복을 누려온 꿈같은 나날이 떠올랐다.해방전 뼈도 굳기 전에 소년화부가 되여 왜놈의 철도기관구에서 온갖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피눈물을 씹어삼키던 자기를 기관사로, 기관구의 첫 당조직의 한 성원으로 내세워주시고 참된 삶을 안겨주신분은 바로 어버이수령님이시였다.

하기에 그는 전쟁이 일어나자 용약 전시수송의 길에 올랐으며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의 그 준엄한 시기에도 목숨은 버릴지언정 김일성장군님만을 믿고 따르는 마음만은 변하지 말아야 한다는 투철한 신념을 간직하고 두줄기 궤도를 따라 오직 앞으로만 내달릴수 있었던것이다.

어느날 적구에 들어가 중요물자들이 실려있는 화차들을 끌고올데 대한 임무를 받았을 때에도 그는 죽음을 각오하고 적강점지역의 어느 한 기차굴에 머물러있던 7개 차량의 중요물자들을 안전한 곳으로 무사히 소개시킴으로써 전쟁승리에 적극 기여하였다.

 

가슴속에 안고 산 복수의 일념

 

원산철도차량공장에서 일하던 김승률은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나라의 철도와 운명을 같이하였다.

언제 포탄이 날아올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순간에도 그는 기대곁을 떠나지 않았다.

가슴속에서는 낮이나 밤이나 복수의 불길이 활활 일었다.

더 많은 포탄과 무기를 싣고 기차여, 전선으로 달려다오.침략자들에게 무자비한 죽음을 주기 위해!

당시 적기의 폭격속에서 대차를 조립하고 화차를 살려내기 위한 투쟁은 목숨을 내건 싸움이였다.부속품 하나, 철판 한장을 구하기 위해 불비를 헤치던 그 나날에 넘은 사선의 고비는 얼마이던가.

금방 마라초를 나누어피우며 화차를 수리하던 동무들이 적탄에 쓰러질 때면, 방금 수리해낸 화차가 적기의 맹폭격에 불탈 때면 눈에서는 피눈물에 앞서 천백배 복수의 불줄기가 쏟아져나왔다.그는 분발하여 잠도 휴식도 미루어가며 쉬임없이 일손을 놀리였다.

그는 순간도 잊고 산적 없었다.위대한 수령님의 명령을 받들고 전시수송을 보장하기 위한 치렬한 전투를 벌리던 그 나날을.

그래서 전후에도 그는 공장을 뜨지 않고 전쟁때처럼 기대곁에서 살다싶이 하였다.그렇게 대차생산에 자기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치였다.

 

포화속의 기적소리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신성천기관구(당시)에서 일하던 박영실은 아직은 기관조사이지만 소원은 기관사가 되는것이였다.그것은 처녀의 한갖 허영심이 아니였다.다시 노예가 되느냐 마느냐 하는 때 싸움이면 일선에 서고 목숨이면 먼저 바치고 일이라면 제일 힘든것을 맡으려는 희생성이였다.

기관차가 신성천을 떠나 높은 령을 넘자면 석탄을 여러t이나 먹여야 했다.그것을 폭격과 포격, 앞을 막는 매연속에서 해내야 하였다.그러나 그는 사생결단으로 맡은 임무를 수행하였다.탄을 넣을 때마다 그의 입에서 새된 부르짖음이 터졌다.

한삽 뜨며 《미제에게》, 또 한삽 던지며 《죽음을!》

1951년 7월 30일부 《로동신문》은 이렇게 전하였다.

《기관조사 박영실동무는 남녀평등권법령발포 5주년을 기념하면서 하루속히 훌륭한 기관사로 될 억센 결의밑에 운전기술습득에 더욱 힘쓰는 한편 자기에게 부과된 임무를 항상 남자들에게 못하지 않게 수행하고있다.》

그후 그는 기관사가 되였다.기관구의 16호기관차에 오른 그는 자기 손으로 처음으로 기적을 울렸다.만짐을 받든 강철차륜들은 천백배 복수의 열기로 달아오른 레루를 세차게 구르며 불꽃을 튕기였다.나날이 커져가는 포성을 따라 기적소리가 더 높이 울렸다.

전선서부로 군수화차 20차량을 긴급수송할데 대한 임무를 받고 그가 급수를 위해 기관차를 몰고 역구내를 지날 때였다.불의에 적기편대가 달려들었다.사방에 연방 불기둥이 치솟는 속에 한 화차가 화염에 휩싸였다.불이 번지면 뒤에 서있는 기관차와 화차가 위험에 처할수 있었다.그는 폭격을 뚫고 불달린 화차에 뛰여올라 살수호스를 들이댔다.이어 그는 선두기관차를 몰고 뒤차들을 안전구역으로 인도하였다.화염으로 철길이 보이지 않고 파편이 마구 날아들었지만 그는 두렴없이 기관차를 몰았다.그가 여는 길로 다른 기관차들이 뒤따랐다.

이렇게 박영실은 전쟁승리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본사기자 현경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