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3(2024)년 7월 27일 토요일  
로동신문
영광스러운 전승세대에 대한 긍지높은 추억-그들처럼 영원히 승리하리라
하나밖에 없는 조국을 위하여 둘도 없는 청춘을 바치는것, 그것은 조선청년의 가장 아름다운 희망, 위대한 행복이다!
《민청》호는 오늘도 청년들을 위훈에로 부른다

2023.5.24. 《로동신문》 3면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열백번 바뀐다 해도 전승세대의 영웅적투쟁정신과 불멸의 위훈은 영원히 우리 후대들의 심장에 뛰는 붉은 피를 더욱 진하게 해줄것이며 그 위대한 정신과 업적은 우리 혁명의 승리적전진과 더불어 영원불멸할것입니다.》

1951년 4월 902.4고지전투에서 민청원 조군실영웅은 《내 팔다리가 떨어져나가도 나의 심장이 고동치는한 나의 중기는 결코 복수탄을 멈추지 않으리라.조선로동당 만세! 김일성장군 만세!》라고 소리높이 웨치고 턱으로 중기관총의 압철을 누르며 영웅적으로 싸우다가 장렬하게 희생되였다.최후의 순간에 그는 《나의 중기를 〈민청〉호중기로 불러주시오.》라는 마지막부탁을 전우들에게 남기였다.

그후 영웅의 중기관총 236호에는 《민청》호칭호가 수여되였다.

조군실영웅이 발휘한 무비의 희생성과 용감성, 무기애호정신은 료원의 불길마냥 인민군전사들속에 파급되였으며 《민청》호무기쟁취운동의 불씨로 되였다.

1952년 7월 26일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은 지령 제81호에서 《민청》호무기쟁취운동을 대중적으로 조직진행할데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민청단체와 인원들이 원쑤격멸과 부대의 전투과업수행에서 특별한 위훈을 세운 무기, 전투기술기재에 대하여 해당한 정치기관의 추천에 의하여 〈민청〉호칭호를 수여한다.…그러므로 민청원들의 전투위훈과 그들의 창발성을 발전시키는 군중적사업으로 되게 할것.》

이렇게 시작된 《민청》호무기쟁취운동은 인민군전사들의 가슴마다에 조국에 대한 사랑과 원쑤에 대한 적개심, 승리에 대한 열망을 더욱 뜨겁게 해주었다.

1952년 8월부터 1953년 7월까지 무려 3 460여개의 무기 및 전투기술기재들에 《민청》호칭호가 수여되였다는 사실은 보병총으로 원자탄을 이긴 세계전쟁사의 기적을 창조한 인민군용사들의 백절불굴의 정신력과 무비의 대중적영웅주의에 대한 뚜렷한 실증으로 된다.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에는 많은 《민청》호무기들이 전시되여있다.

3명의 공화국영웅들이 틀어잡았던 중기관총과 최고사령부의 방탄벽이 되여 미제의 공중비적들에게 죽음의 불소나기를 들씌웠던 고사기관총, 안동제12보병사단의 명성높은 박격포, 호도반도에서 적구축함을 비롯한 대소함선 29척을 격침격파하는데 기여한 해안포, 근위 제6보병사단에 소속되여 서울해방전투를 비롯한 여러 전투에서 혁혁한 전과를 거둔 자동포, 맹호처럼 전시수송길을 달린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조국해방전쟁시기 청춘과 위훈의 대명사와도 같은 《민청》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무기들은 수없이 많다.

《민청》호의 긍지높은 이름으로 불리우는 무선기와 교환기도 있다.조국해방전쟁의 전 기간 최고사령부와의 통신을 믿음직하게 보장한 《민청》호무선기와 교환기는 오늘도 전화의 나날에 발휘되였던 수령결사옹위정신, 결사관철의 정신이 어떤것인가를 전승세대의 후손들에게 가르쳐주고있다.

조국과 인민을 수호하는 최전방에는 언제나 이러한 《민청》호들이 있었으며 이 무기들을 틀어잡은 위훈의 주인공들인 민청원들이 있었다.《민청》호칭호야말로 1950년대 조국방위자들이 발휘한 무비의 영웅성과 희생성에 조국이 안겨준 또 하나의 고귀한 훈장과도 같다.

오늘날 청년의 이름과 더불어 빛나는 시대의 기념비들과 창조물들을 전화의 《민청》호무기들이 초석이 되여 굳건히 떠받들고있다.

어머니당이 펼쳐준 거창한 청년판인 수도의 새 거리건설장에서도 전화의 《민청》호무기들에 대한 전설같은 이야기들은 청년들을 새로운 위훈창조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고있다.

김혁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