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홍색국기아래 우리가 산다

한 장애자청년의 생활에서

 

지난해 12월 청년중앙회관에서는 국제장애자의 날을 맞으며 조선장애자예술협회 예술소조원들의 음악무용종합공연이 진행되였다.

공연무대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것은 사륜차를 타고나와 한편의 시를 랑송하는 장애자청년의 모습이였다.그는 조선장애자예술협회 리국철동무였다.

그가 읊는 시는 공화국창건 70돐을 맞으며 진행된 전국군중문학작품현상모집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은 시초 《람홍색국기아래 우리가 산다》의 한 대목이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나라에서는 돌볼 사람이 없는 늙은이들과 불구자들, 어린이들의 생활을 국가가 책임지고 보장하여주고있습니다.》

어려서부터 두다리와 한팔을 쓰지 못하는 리국철동무에게는 부러운것이 참으로 많았다.마당에서 떠들며 뛰노는 아이들을 볼 때면 그속에 함께 있는 자기의 모습을 그려보았고 책가방을 메고 학교로 가는 아이들을 볼 때면 나도 학생이 될수 있을가고 생각하군 하였다.

그의 이런 꿈은 고마운 선생님들과 정다운 학급동무들에 의해 이룰수 있게 되였다.

그러나 인생은 꿈의 련속이런듯 학교를 졸업한 그에게는 또 다른 꿈이 움터났다.나도 수도에 사는 시민으로서 남들처럼 보람있게 살았으면…

하지만 자기는 아무 일도 할수 없는 몸이여서 그것만은 도저히 이루어질수 없는 꿈이라고 단정할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그 꿈이 현실로 다가오고있음을 미처 알지 못하였다.어느날 조선장애자보호련맹 중앙위원회의 한 일군이 그를 찾아와 이렇게 말하였다.

《동무도 사회의 당당한 한 성원이요.래일부터 출근하도록 하시오.》

순간 리국철동무는 자기의 귀를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다.

(출근이라니? 혹시 내가 잘못 들은것은 아닐가?)

하지만 그것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였다.그는 자기를 태우려고 집앞에까지 와있는 차에 선뜻 오르지 못하였다.그러는 그에게 일군은 말하였다.

《국철동무, 이 차에 새겨진 저 마크를 보라구.우리 나라에서는 장애자들을 저렇게 두손으로 고이 떠받들어 보호하고있거던.》

이렇게 어제날의 학교길이 오늘의 보람찬 출근길로 이어지게 되였다.첫 출근을 했던 날 그는 온밤을 뜬눈으로 새웠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앞으로 누리게 될 크나큰 행복의 한 토막에 불과한것이였다.

얼마후 그는 화려한 무대우에 올라 자기가 쓴 시를 랑송하게 되였다.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받을 때마다 그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웨쳤다.

나는 조국을 위해 피흘린 영예군인도 아니고 자랑찬 위훈을 세운 공로자도 아닙니다.그저 평범한 장애자일뿐입니다.하지만 병든 자식, 상처입은 자식일수록 더 뜨겁게 안아주는 은혜로운 품이 저에게도 삶의 희망과 행복을 안겨주었습니다.사회주의 우리 집이 세상에서 제일입니다!

이것이 어찌 그의 심정뿐이랴.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을 은혜로운 한품에 안아 꿈과 희망을 활짝 꽃피워주는 사회주의제도에서 복받은 삶을 누리는 장애자들모두의 마음속진정이였다.

하기에 그는 붓을 들었다.가슴에 그득히 차오르는 감사의 정을 세상에 소리높이 전하고싶어 시의 제목을 이렇게 달았다.

《람홍색국기아래 우리가 산다》

박주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