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표를 통해 본 내 조국의 자랑찬 발전행로

새로 개건된 조선우표박물관을 찾아서 (1)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자기 조국의 력사와 자기 민족의 우수한 문화유산에 대하여 잘 알아야 조국에 대한 사랑과 민족적자부심과 긍지감을 간직하게 됩니다.》

당의 현명한 령도아래 민족의 력사, 조국의 력사를 전해주는 귀중한 문화재부들이 나날이 빛을 뿌리고있는 속에 우리는 얼마전 새로 개건된 조선우표박물관을 찾았다.

조선우표박물관에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청소년시절에 몸소 수집하신 우표첩을 비롯한 사적자료들과 우표발행사업에 깃들어있는 절세위인들의 불멸의 혁명업적, 주체조선의 발전행로를 보여주는 우표와 우편엽서들 그리고 우리 나라의 고대 및 중세 우편통신력사, 조선봉건왕조시기 근대적인 우편제도의 설립을 보여주는 우표관련유물들, 력사자료들이 전시되여있다.또한 여러 나라에서 진행된 국제적인 우표전람회들에서 수여한 상장과 컵, 메달들이 전시되여있다.이밖에도 조선의 국가상징을 비롯하여 우리 나라의 력사와 문화, 동식물, 민족적풍습 등이 반영된 수많은 우표들을 게시한 전시판들이 있으며 우표보급매대와 기념품매대가 꾸려져있다.

인민을 제일로 사랑하시고 나라와 민족의 존엄을 빛내여주시려 모든것을 다 바치신 백두산절세위인들의 한평생이 뜨겁게 어려있고 민족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 주체조선의 자랑찬 발전행로가 력력히 새겨져있는 조선우표,

나라없던 그 세월 얼마 안되는 자기의 우표마저 침략자들에게 깡그리 빼앗겼던 우리 인민이 오늘은 태양민족의 존엄과 긍지, 끝없는 행복과 영광을 세상에 자랑높은 조선우표를 통해 만방에 전하고있다.

 

파란곡절을 겪은 첫 우편제도

 

우편료금을 지불한 표시로 우편물에 붙이는 증서인 우표가 세상에 나온지도 오랜 세월이 흘렀다.

1840년 5월 1일 교육자이며 발명가인 로렌드 힐에 의하여 영국에서 세계최초의 우표가 발행된 이후 개인들사이, 나라들사이에 쉬임없이 오고간 우표들을 가리켜 사람들은 《나라의 증권》, 《꼬마외교관》, 《종이보석》이라고 불러왔다.

고대, 중세시기 우리 나라에서의 통신활동을 보여주는 전시판앞에서 강사의 해설을 들은 우리는 참관자들과 함께 근대시기의 우편제도를 보여주는 자료들이 전시되여있는 곳으로 향했다.

《우표의 생활력이 나타나자마자 여러 나라에서 우표를 발행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러한 흐름속에 우리 나라에서도 최초의 우표인 문위우표가 나왔습니다.》

강사의 말에 의하면 우리 나라에서 우편제도를 근대화하기 위한 사업은 19세기 후반기 개화파들의 적극적인 활동에 의하여 시작되였다고 한다.당시 국내외적으로 체신업무가 급격히 늘어남에 따라 김옥균을 비롯한 개화파들은 락후한 역참제도를 없애고 근대적인 우편제도를 실시할것을 적극 주장하였다.그리하여 그것을 총괄하기 위한 기관으로서 우정국이 설치되고 그 총판으로 홍영식이 되였다.

1884년 11월 우리 나라의 첫 우표인 문위우표(당시 화페의 단위가 《문》이라는데로부터 붙여진 이름)가 발행되였으며 이때부터 근대적인 우편활동이 개시되게 되였다.

우표를 통하여 선진적인 우편통신제도의 원리를 사람들에게 인식시키고 사회생활에 전면적으로 도입한것은 우리 나라를 근대문명에로 전진시킨 커다란 혁신이였다.그러나 갑신정변의 실패로 우리 나라에서의 첫 근대우편봉사는 불과 십여일밖에 진행되지 못하였다.그후 갑오개혁을 계기로 김홍집을 비롯한 혁신관료들에 의하여 근대적인 우편봉사활동이 다시 시작되였다.

20세기초까지 우리 나라에서는 수십종의 우표와 여러종의 엽서들이 발행되였다.

일제의 조선우표말살책동을 보여주는 전시판앞에서 강사는 격한 어조로 이렇게 말하였다.

《발전하는 세계문명에 편승하여 설립되였던 우리의 근대우편제도는 간악한 일제의 민족문화말살책동으로 하여 짧은 기간밖에 존재하지 못하였습니다.》

1905년 일제의 강요로 하여 우리 나라는 자주적인 독립국가의 통신권을 완전히 강탈당하였다.그후 일제는 조선사람들이 제놈들의 우편봉사를 통하지 않고서는 편지나 전보도 보낼수 없게 하였다.

민족문화발전의 극악한 원쑤, 불법무도한 침략자로서의 일제의 정체를 낱낱이 폭로하는 자료들앞에서 우리는 탁월한 수령을 모시지 못하면 대를 두고 전해가야 할 민족의 귀중한 문화유산도 송두리채 빼앗기게 된다는 력사의 진리를 다시금 깊이 새겨안게 되였다.

 

민주조선의 첫 우표가 태여나기까지

 

박물관에서 우리는 해방전 유격근거지들에 수립된 인민혁명정부안에 통신부가 있었으며 강도 일제를 때려부시고 조국해방을 앞당기는데 이바지하는 통신활동이 진행되였다는데 대하여 알게 되였다.간고했던 항일무장투쟁시기를 반영한 우표들이 전시되여있는 전시판을 보며 우리는 진정한 조선우표의 뿌리 역시 항일의 빛나는 혁명전통에 있다는 강사의 해설을 주의깊게 들었다.

이어 우리 나라 우표발전의 새 력사를 보여주는 전시판앞에 이르렀다.

해방후 일제식민지잔재를 하루빨리 청산하고 인민이 주인된 새 나라를 일떠세우는데서 우표발행이 가지는 중요성과 의의를 깊이 헤아리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나라의 현실과 인민의 생활감정에 맞게 우표를 새로 만들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이렇듯 현명한 령도의 손길아래 창작된 새 조선의 첫 우표들앞에서 우리는 좀처럼 눈길을 뗄수 없었다.

《주체35(1946)년 3월 12일 해방의 환희속에 새 조선의 첫 우표들이 태여남으로써 우리 인민은 진정한 자기의 우표를 가지고싶던 숙원을 풀게 되였습니다.》

강사는 계속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리신 장군님과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와 함께 새 조선의 첫 우표들을 친히 보아주시였다고 격정에 넘쳐 이야기하였다.

뜻깊은 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제는 우리 인민들이 조선우표를 가지고 서신거래를 할수 있게 되였다고 못내 만족해하시면서 우표는 우리 나라를 세상에 소개하는데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아직은 세상사람들이 조선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고있는데 조선이 얼마나 아름다운 나라이고 조선인민이 얼마나 근면하고 강직한 인민인가 하는것을 세상에 널리 알려야 한다는 내용의 간곡한 교시를 하시였다고 한다.그러시면서 오늘은 비록 작은 우표 두종이 나왔지만 머지않아 조선을 소개하는 큼직큼직한 신문, 화보, 잡지들이 나올것이라고, 첫 우표를 만든 경험과 교훈에 기초하여 도안도 더 잘하고 인쇄기술도 높여 해방된 조선의 현실과 우리 인민의 생활감정에 맞는 여러가지 우표를 더 많이, 더 훌륭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우표발행과 그 발전에서 나서는 문제들에 대한 구체적인 가르치심도 주시였다.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는 이제는 나라의 주인이 된 인민들이 우리 우표를 가지고 해방의 환희와 서로의 건국열의를 마음껏 편지로 나눌수 있게 되였다고 감회와 기쁨을 금치 못해하시였다.

함께 계시던 어리신 장군님께서도 자주 출장을 가시는 아버님께 몸건강히 빨리 돌아오라는 내용으로 편지를 쓰겠다고 말씀하시였다고 한다.

그후 국가적인 조치에 따라 다양한 주제의 우표들이 발행되여 민주조선의 우편활동은 활기를 띠고 진행되였다.

주체35(1946)년 8월 15일 조국해방 1돐을 맞으며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위대한 수령님의 영상을 모신 기념우표가 발행되였으며 이때부터 우리의 우표들은 수령의 혁명사상을 구현하고 수령의 권위를 옹호하며 빛내여나가는 주체형의 우표로 더욱 발전하게 되였다.

우리는 《국기훈장》우표를 비롯하여 새 조국건설시기에 발행된 우표들을 보면서 이 시기 우리 나라에서 이룩된 위대한 사회경제적변혁과정에 대하여 다시금 되새겨보게 되였다.

세상에는 나라도 많고 나라마다 정치, 경제, 문화 등 여러 분야의 특징적인 면모를 반영한 형형색색의 우표가 있으며 그것이 노는 역할 또한 가볍지 않다.

하지만 조선우표처럼 자기 수령의 위대성을 칭송하고 복받은 인민의 삶, 보람찬 투쟁과 생활, 위대하고 존엄높은 시대를 노래하며 혁명과 건설을 힘있게 고무추동하는 그런 우표는 없다.

반만년력사에서 처음으로 맞이한 위대한 수령을 높이 모신 인민의 끝없는 기쁨과 행복, 강대하고 존엄높은 주체조선의 새 력사가 어떻게 마련되였는가를 가슴뜨겁게 절감하며 우리는 참관을 이어갔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조향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