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과 혁명을 위한 길에 바쳐진 고귀한 한생

 

칠골!

룡악산의 일곱번째 골안에 자리잡은 마을이라고 하여 칠골로 불리운 이곳이 사람들의 기억속에 지워지지 않는 력사의 고장으로 된것은 무엇때문이던가.

추억의 노를 저어가는 우리의 눈앞에 연분홍진달래꽃이며 노란 개나리꽃이 활짝 피여나고 강산이 푸른빛으로 단장되여 한폭의 그림같이 아름다운 칠골의 초가집이 선히 안겨왔다.

크지 않은 대문이며 머리에 닿을듯 드리운 처마, 초가이영, 부지런한 농사군의 체취가 느껴지는 여러가지 농쟁기들…

1890년대에 우리 나라 농촌마을 어디에서나 볼수 있던 수수한 초가집이였다.바로 이 추녀낮은 초가집에서 조선녀성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이시고 조선의 위대한 어머님이신 강반석녀사께서 탄생하시였으니 우리 어찌 무심히 이곳을 대할수 있으랴.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어머님은 조국의 광복과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하여 한생을 바치시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 가르치심은 조국의 해방과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하여 한몸그대로 나라를 받드는 든든한 반석이 되신 강반석어머님의 빛나는 한생에 대한 고귀한 총화이기도 하다.

강반석녀사께서는 1892년 4월 21일 칠골의 수수한 농가에서 탄생하시였다.강반석어머님께 강돈욱선생님께서는 나라와 가정을 잘 받드는 주추돌이 되라는 뜻에서 이름을 강반석이라고 지어주시였다.

그 깊은 뜻대로 어머님께서는 한평생을 반석처럼 살아오시였다.

언제인가 강반석녀사께서 지으신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울안의 꽃이 됨을 뿌리치고

겨레가 딛고 일어설 반석이 되렵니다

나라의 기둥을 굳건히 떠받드는

반석이 되렵니다

이것은 강반석어머님께서 언제나 가슴속에 간직하고계신 신념이고 의지였다.

명실공히 반석이 되여 나라를 굳건히 받드시려는 열망을 간직하시였기에 강반석어머님께서는 불의에 달려든 일제경찰놈들앞에서 불굴의 기상을 떨치시였고 위대한 수령님의 지도밑에 우리 나라에서 첫 혁명적녀성대중조직인 반일부녀회도 조직하시였다.

《새날》신문을 보급하시며 혁명의 씨앗을 뿌려가기도 하시고 적들의 삼엄한 경계망을 뚫고 소고기갈피속에 무기를 감추어가지고 나르신것을 비롯하여 강반석어머님께서 나라의 해방을 위한 투쟁에 한몸바치신 이야기들은 그 얼마나 많고많은것인가.

손에 무장을 잡고 강도 일제를 때려부시는 길만이 조국의 독립과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한 참다운 길이라는것을 확신하시였기에 어머님께서는 반일인민유격대의 창건을 위해 병약하신 몸으로 부녀회원들과 함께 온갖 정성을 기울여 군복을 만드시고 군량미도 마련하시며 헌신분투하시였다.

주체21(1932)년 위대한 수령님께서 남만원정을 앞두고 어머님을 뵈오러 집에 들리시였을 때의 사실이 오늘도 격정속에 되새겨진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엉성한 싸리바자며 벼짚이영도 제때에 갈아넣지 못해 페가와 같이 한산해보이는 집을 대하시는 순간 우리 수령님의 가슴은 참으로 쓰리시였다.더우기 자신의 중한 병을 애써 숨기며 화제를 자꾸만 돌리시는 어머님의 모습은 수령님으로 하여금 눈물을 삼키시게 하였다.

하지만 어머님의 신상이 걱정되여 선뜻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시는 위대한 수령님께 하신 강반석어머님의 말씀은 준절하였다.

왜놈들이 나라를 강탈한지도 벌써 스물두해가 되여오는데 너두 조선의 사내라면 맘을 크게 먹구 걸음을 크게 떼야 할게 아니냐.네가 장차로도 이 에미걱정때문에 집으로 찾아올 생각이라면 아예 이 문앞에 얼씬도 하지 말아라.나는 그런 아들은 만나지 않겠다.

아드님을 위해서라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오고 불속에라도 주저없이 뛰여들 어머님이시였다.그러나 강반석어머님께서 위대한 수령님께 기울이신 사랑은 단순한 모성애가 아니였다.그것은 우리 수령님을 자신의 아들이기 전에 나라의 아들이라고 생각하시며 부모에게 효도를 하기 전에 나라에 충직해야 한다는것을 깨우쳐준 진실하고 혁명적인 사랑이였다.

하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도 강반석어머님을 잊지 못해하시며 어머니의 온 생애는 그대로 자신의 가슴에 참된 인생관, 혁명관을 심어준 하나의 교과서와도 같은 생애였다고 뜨겁게 회고하시였다.

한생을 조국과 혁명을 위해 반석같이 살아오신 강반석어머님!

조국과 민족에 대한 이런 무한한 헌신성과 희생성, 열화같은 사랑으로 심장을 깡그리 불태우신 위대한 녀성혁명가를 력사는 알지 못하고있다.

비록 짧은 한생이였지만 어머님께서 남기신 공적은 하늘같은것이여서 인민은 그이의 탄생 80돐을 맞으며 유서깊은 칠골에 어머님의 동상을 삼가 모시였다.

잊을수 없다.

주체61(1972)년 4월 22일 항일의 로투사들과 새 세대 군사지휘관들과 함께 칠골혁명사적지를 찾으신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

면실목도리를 걸친 단정한 치마저고리차림에 《새날》신문을 쥐고 앉아계시는 어머님의 모습을 형상한 동상을 오래도록 바라보시던 그 시각 어버이수령님의 심중에 차넘치던 하많은 사연들을 우리 어찌 다 헤아릴수 있으랴.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어머님의 모습대로 동상이 잘 형상되였다고 하시면서 항일유격대를 처음 창건했을 때 소사하집 뒤산에 오르시여 조선의 끌끌한 첫 군대를 보시고 그렇게도 기뻐하시며 눈물을 흘리시던 어머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절절한 그리움에 젖어 말씀하시였다.

잊지 못할 그날 력사의 땅 칠골을 찾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제밤 수령님께서는 꿈에 어머님을 보셨다고 하시면서 강반석녀사께서 살아계신다면 40여성상 승리의 행군로를 거쳐 수백만대오의 지휘성원으로 자라난 끌끌한 로혁명투사들과 지휘관들을 보시며 대단히 기뻐하실것이라는데 대하여 격정어린 말씀을 하시였다.

그날 위대한 수령님들께서는 강반석어머님의 동상을 배경으로 어제날의 유격대원들과 우리 혁명의 바통을 든든히 이어나갈 새 세대 군사지휘관들과 함께 뜻깊은 사진을 찍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강반석어머님의 탄생 100돐이 되는 주체81(1992)년 4월에도 두차례나 칠골혁명사적지를 찾으시였으며 새 세대들에게 우리가 백두밀림에서 개척한 혁명위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하시면서 주체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계승하고 완성할데 대한 귀중한 당부를 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그 절절한 당부를 심장에 새기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령도따라 주체의 사회주의강국을 반드시 일떠세우고야말 의지를 안은 사람들의 물결이 오늘도 칠골혁명사적지로 끝없이 굽이치고있다.

본사기자 백영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