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마기수의 영예를 빛내이며 50여년

원산시제1인민병원 간호장 오명희동무에 대한 이야기

 

50여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인민들의 생명과 건강을 돌보는 일에 깡그리 바쳐온 녀성이 있다.그는 원산시제1인민병원 마취수술과 간호장 오명희녀성이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오늘 우리의 당원들과 근로자들속에는 누가 보건말건, 알아주건말건 묵묵히 자기가 맡은 초소에서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직종에서 맡은 일에 성실한 피와 땀을 아낌없이 바쳐온 간호원, 정말 쉽지 않은 길을 걸어왔다고 하는 우리에게 오명희녀성은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도 저의 가슴속에는 천리마기수의 영예가 간직되여있답니다.》

알고보니 그는 1960년대말에 천리마작업반칭호를 수여받은 외과작업반(당시)의 천리마기수들중의 한사람이였다.

그의 고향은 숙천군이다.천리마시대 보건일군들의 사랑과 정성에 대한 이야기로 온 나라가 들끓던 1961년 8월, 중학교를 졸업한 그는 간호원들을 전문으로 양성하는 학교에 추천받게 되였다.농사군의 가정에서 자란 그가 간호원이라는 생소한 직종을 두고 걱정하고있을 때 농장의 소문난 실농군인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였다.

《너도 몇달전 비날론공장준공을 경축하는 함흥시군중대회와 군중시위소식을 들었겠지? 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온몸에 심한 화상을 입었던 소년을 기적적으로 살려낸 흥남비료공장병원의 외과 과장과 간호원을 몸가까이에 부르시고 이런 동무들이 바로 공산주의자라고 높이 평가하시였다.간호원이란 별다른 사람이 아니다.인민을 위하여 충실히 복무하려는 각오만 높으면 누구나 훌륭한 간호원이 될수 있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수 있지.》

그날 밤 오명희녀성은 밤깊도록 생각했다.

(어버이수령님께서 바라시는 참된 보건일군이 되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는 인민을 위해 충실히 복무하는 참된 보건일군이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이악하게 의학지식을 습득하였고 부드러운 말씨와 상냥한 웃음이 몸에 푹 배게 하기 위하여 남모르는 노력을 많이도 기울였다.그의 이러한 노력은 어느 한 리진료소의 간호원으로 배치되였을 때에도, 몇년후 원산시인민병원(당시)으로 조동되여 일할 때에도 변함이 없었다.

어느날 오명희녀성은 한 화상환자에 대한 피부이식수술에 참가하게 되였다.진료소간호원으로 일하면서 수술에 한번도 참가해본적이 없는 그는 마음이 다소 긴장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바로 이때 자기 피부를 제일먼저 떼여달라고 하면서 의사들앞으로 성큼 나서는 사람이 있었다.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간호원으로 싸웠다는 총간호장이였다.그가 수술대에 올랐을 때에야 몸에 난 허물자리가 한두군데가 아니라는것을 알게 된 오명희녀성의 눈가에는 뜨거운것이 샘솟아올랐다.수술이 끝난 후 허물자리를 어루쓸며 아프지 않은가고 조용히 묻는 그에게 총간호장은 이렇게 말하였다.

《어쩐지 나에게는 이 흠집이 훈장과 같이 생각되는군요.》

환자를 위해 자기의 피부를 주저없이 떼내고도 그것을 마땅한 본분으로, 보람으로 여기는 어제날 화선간호원의 정신세계, 바로 이것이 천리마시대 의료일군들이 지녀야 할 정신임을 오명희녀성은 그때에야 비로소 깨닫게 되였다.

그후 그는 전혀 딴 사람이 된듯싶었다.수술환자에게 피가 요구되면 서슴없이 자기의 팔을 제일먼저 걷어올리였고 중환자가 들어오면 자진하여 환자를 맡아나섰다.

그는 환자들에게 한알의 약을 내주고 한대의 주사를 놓아도 그들이 사회주의보건제도의 우월성을 가슴뜨겁게 느낄수 있도록 정성을 기울이였다.그러면 환자들이 고마운 사회주의제도를 지키기 위하여 몸바쳐 투쟁하게 될것이라고 그는 믿고있었다.실지로 퇴원한 사람들속에서 누구는 혁신자가 되고 또 누구는 천리마기수가 되였다는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그는 간호원의 보람과 긍지를 한껏 느끼군 하였다.환자치료에 정성을 기울여오던 나날에 그가 속한 외과작업반은 천리마작업반칭호를 수여받게 되였다.천리마기수의 영예를 지니고 사람들로부터 축하의 인사를 받을 때마다 오명희녀성의 가슴속에는 이 고마운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리라는 결심이 더욱 굳어졌다.이것이 그가 한생 심장속에 간직하고 사는 삶의 좌우명이였다.하기에 그는 일하면서 배우는 교육체계를 거쳐 준의사자격을 받았을 때에도 자기 초소를 떠나지 않았고 병원에 마취수술과가 새로 조직되였을 때에는 그곳 간호원으로 자진하여 갈수 있었던것이다.

우리와 만난 마취수술과 과장 리현숙동무는 말하였다.

《사실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환자들속에 건강이 회복되여 퇴원할 때까지 수술이 잘되도록 방조한 마취수술과 간호원들의 수고에 대하여 아는 사람은 별반 없을것입니다.하지만 오명희간호장은 누가 알아주건말건 이 직종에서 수십년을 일해오고있습니다.》

오명희녀성이 마취수술과에서 간호원으로 일하기 시작한지 몇년 안되여 이 땅에 고난의 파도가 밀려들었다.그는 가정의 많은 부담을 걸머지고 일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언제인가 소독해낸 수술기재들과 수술포를 한짐 지고 병원으로 총총히 걸음을 옮기던 그는 길가에서 외과작업반시절의 녀동무를 만나 이런 질문을 받게 되였다.

《넌 수술장에서 늙을셈이냐? 더구나 이 어려운 시기에 제 살림도 생각해야지 않겠니?》

한동안 생각에 잠겼던 그는 머리를 저었다.

《그래도 이 길을 끝까지 가련다.왜냐면 난 달리는 살수 없기때문이지.》

오명희녀성은 이런 말을 남기고 힘있게 걸음을 내짚었다.

그는 자기가 일하는 수술장이 곧 우리의 사회주의제도를 지키는 애국의 전호라고 생각하였다.이런 신념을 지닌 그였기에 고난의 행군시기 혈청검사에서 반드시 있어야 할 표준혈청이 없어 지장을 받고있을 때 주저없이 자신의 몸에서 많은 량의 피를 뽑아 보장하는 소행도 발휘하였으며 그 나날에 분에 넘치게도 위대한 장군님의 은정어린 감사를 받아안는 영광을 지니게 되였다.

오명희동무는 간호원으로 일해온 지난 50여년간 5만 5천여건의 각종 수술에 참가하였으며 1만 5천여명의 중환자와 1 800여명의 최중증환자들을 직접 담당하고 치료하여 자기 초소에 다시 세웠다.당에서는 보건부문의 한직종에서 오래동안 일한 그에게 위대한 수령님의 존함을 모신 시계표창을 안겨주고 사회주의애국공로자로 값높이 내세워주었다.

오늘도 오명희녀성은 우리의 사회주의보건제도를 빛내이는 밑거름이 될 일념으로 가슴 불태우며 50여년전의 그날처럼 변함없이 한길을 이어가고있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정영철

 

오명희동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