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의 과수정책관철에 적극 떨쳐나 과일생산을 더욱 늘이자

품을 들인것만큼 덕을 본다

 

살림을 윤택하게

혜산시 신장리 25인민반 리춘녀동무의 가정

 

혜산시 신장리 25인민반에서 사는 리춘녀동무의 가정에서는 과일나무를 많이 심어 그 덕을 톡톡히 보고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집주변에 과일나무를 심으면 꽃도 보게 되고 과일도 먹을수 있습니다.》

리춘녀동무가 강원도지방에서 가져온 과일나무들을 이 고장에 처음 심을 때 마을사람들은 머리를 저었다.

년중 추운 날이 많은 고산지대에서 과연 성공할수 있겠는가 하는 우려에서였다.

그는 신심을 가지고 이악하게 달라붙었다.하지만 잘되지 않아 손맥이 풀리였다.

그러던 어느날 리춘녀동무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일찌기 량강도인민들이 과일맛을 보게 하시려고 많은 심혈을 기울이시였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이때부터 리춘녀동무뿐아니라 온 집안식구가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뜻을 꽃피우는 길에 앞장설 결심을 품고 떨쳐나섰다.

리춘녀동무는 머나먼 고향땅에 찾아가 수종이 좋은 과일나무모들을 마련해왔고 남편 조광규동무도 출장길에 오를 때면 과일나무모를 구해오는것을 잊지 않았다.딸 효심이도 후치령을 넘어 북청군에까지 오가며 좋은 과일나무모들을 구해오군 하였다.

겨울기간이 긴 량강도에서는 과일나무를 일단 심어놓아도 몇해 지나야 덕을 볼수 있다.

리춘녀동무는 봄이면 돌배나무에 벌방의 배나무를 접하였다.이렇게 접한 배나무는 열매달리는 시기가 훨씬 앞당겨졌다.

포도도 마찬가지였다.

포도나무를 심으면 여름에 줄기가 넝쿨을 치면서 땅에 닿은 부분에서 또 새싹이 나오게 되는데 그것을 잘라심었더니 열매가 빨리 맺었다.

지식을 하나하나 터득해가며 일하니 과일나무재배에서는 날이 갈수록 성수가 났고 해마다 풍성한 열매들이 주렁졌다.

가정에서는 사과, 추리, 살구, 배를 수확하여 마을사람들과 나누어먹기도 하고 생활을 잘 꾸려나가고있으며 중요건설장들에도 보내주고있다.

위대한 수령님의 유훈을 가슴깊이 새기고 과일나무재배에서 남다른 모범을 보이고있는 리춘녀동무를 사람들은 정열가라고 부르며 존경하고있다.

특파기자 전철주

 

《돌배나무집》

강계시 내룡동 61인민반 리정성동무의 가정

 

강계시 내룡동 61인민반 리정성동무의 가정은 많은 과일나무를 심고 가꾸는것으로 하여 《돌배나무집》으로 정답게 불리우고있다.

얼마전 우리가 과일나무숲속에 묻힌 그의 집을 찾았을 때 리정성동무의 안해 김명희녀성은 올해에도 과일이 많이 달렸다고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의 시아버지인 리경선로인은 수십년전 당의 뜻을 받들고 농촌으로 자원진출하였다.

강계시의 어느 한 협동농장에서 농사일을 시작한 그는 집집마다 과일나무를 5그루이상 심을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높이 받들고 돌배나무 한그루만이 외로이 서있던 집주변에 과일나무들을 심기 시작하였다.

그때부터 오늘까지 집에서 많은 과일나무를 심어 가꾼다고 한다.

그의 이야기를 깊은 감흥속에 듣는 우리의 가슴속에 애국심은 고향집뜨락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말의 참뜻이 다시금 새삼스럽게 새겨졌다.

우리는 그에게서 과일나무들을 심고 가꾸어오는 과정에 터득한 풍부한 경험도 들었다.

듣던바대로 해마다 많은 과일을 따들여 사회와 집단에 보탬을 주고 생활도 윤택하게 꾸려나가는 이 가정의 현실을 놓고도 우리는 집집마다 과일나무를 많이 심을데 대한 당정책이 얼마나 정당한가를 깊이 느낄수 있었다.

글 및 사진 특파기자 김순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