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로운 태양의 빛발 영원하리

 

 

영원한 우리 수령 김일성동지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인민의 가슴에 열화같은 사상감정이 더욱 뜨겁게 끓어번지는 7월이다.

주체로 빛나는 이 나라를 더 기름지게 가꾸시기 위해 한평생 공장과 농촌을 찾으시고 찾으시여서는 인민들과 어울려 이야기를 나누시기를 그처럼 즐겨하시였으며 누구나의 가슴에 영원한 정을 안겨주신 우리 수령님!

우리 인민들처럼 위대한 인민은 세상에 없다고 늘 외우시며 그 인민을 세상에서 가장 존엄높고 행복한 인민으로 내세워주시려 어느 하루도 편히 쉬여보지 못하시며 현지지도의 길을 헌헌히 이어가신 어버이수령님!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지극히도 인민을 사랑해주신 어버이수령님의 친근하고 인자하신 모습 세월이 흐르고 강산이 변한들 우리 어이 잊을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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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수령님의 한평생은 인민의 어버이의 위대한 사랑의 한평생이다.

인민들을 친혈육처럼 귀중히 여기고 사랑하시며 모든 사색과 실천의 중심에 인민의 행복을 놓으신 바로 여기에 우리 수령님의 위대성이 있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는 고결한 인품과 덕망을 지니신 위대한 인간이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뜨거운 인정미와 한없이 검박하고 소탈한 품성을 지니시고 인민들을 따뜻이 대해주고 보살펴주시였다.》

인민을 위한 헌신의 길에 어버이수령님께서 남기신 눈물겨운 이야기들은 자나깨나 수령님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안고 사는 온 나라 인민의 가슴을 날이 갈수록 뜨겁게 달구어주고있다.

언제인가 강원도의 산골군에 대한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터밭에서 마늘을 수확하고있는 한 로인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로인에게 손수 담배를 권하시며 집에 식구는 몇이나 되는가고 물으시였다.

식구가 7명이면 많은 축인데 토지는 얼마나 가지고 농사를 짓는가, 그 토지가 로인의 집에서 농사를 짓는데 적지 않은가, 산골이라고 해서 조나 감자와 같은 밭곡식만 심어서는 소출을 높일수 없다.…

어버이수령님의 헤아리심은 참으로 사려깊은것이였다.

해방과 함께 제땅에서 농사를 짓게 된 로인은 그렇지 않아도 어떻게 하면 소출을 더 높일수 있겠는가를 두고 궁리도 많이 해보았었다.하지만 신통한 방안이 떠오르지 않아 예전그대로 밭농사에만 매달려 살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런데 어버이수령님께서 로인의 마음속을 환히 들여다보신듯 마을이 잘살수 있는 방도를 하나하나 가르쳐주시는것이 아닌가.

여기서는 저 령밑에 있는 발전소에서 전기를 일구고 흘려보내는 강물을 리용하여 밭을 얼마든지 논으로 만들수 있겠는데 앞으로 논을 많이 풀어 벼농사를 하여야 합니다.그러면 소출도 밭농사보다 훨씬 더 높일수 있고 벌방부럽지 않게 늘 흰쌀밥을 먹으며 잘살수 있습니다.그리고 이곳에서는 산을 끼고있는것만큼 뽕누에를 치거나 산열매를 따들이는것과 같은 여러가지 부업을 많이 하여야 농민들의 생활이 더 유족해질수 있습니다.

너무도 희한한 말씀에 로인은 그만 입을 벌리였다.자기 고장에 그런 눈부신 앞날이 있다는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아서였다.

그러는 로인에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집짐승을 기르고있는 정형에 대해 알아보시고 여기는 마을주변의 하천부지와 가까운 산들에 풀이 많으므로 농가들에서 소, 돼지, 양, 염소, 토끼, 닭같은 집짐승들을 많이 기르는것이 좋다고, 그러면 집식구들이 고기와 닭알을 떨구지 않고 먹을수 있고 두엄을 많이 받아 농사도 더 잘 지을수 있다고 일깨워주시였다.

로인은 저도모르게 무릎을 탁 쳤다.일생 농사를 지으면서도 찾지 못하였던 방안, 산골사람들도 벌방 못지 않게 잘살수 있는 그야말로 희귀한 묘책이기때문이였다.

이어 장마피해방지대책까지 가르쳐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로인의 손을 꼭 잡으시고 말씀하시였다.

앞으로 여기 산골농민들도 산과 강을 잘 보호관리하고 토지를 비옥하게 하며 선진영농방법을 도입하면 행복하게 살수 있다고, 바로 이렇게 농민들을 잘살게 하자는것이 우리 공화국의 시책이라고.

해방직후의 어느날 어버이수령님께서 한 할머니를 위해주신 이야기는 또 얼마나 만사람의 심금을 울려주고있는것인가.

어느 한 시장에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부관만 데리고 시장을 돌아보시였다.장군이 많기로 소문난 시장이였지만 파장무렵이여서 사람이 얼마 없었다.

싸전, 포목전, 어물전을 비롯하여 시장의 여러곳을 일일이 돌아보시면서 수요와 가격 등 인민생활과 관련된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료해하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뜻밖의 일에 접하게 되시였다.어버이수령님을 미처 알아뵙지 못한 웬 할머니가 수령님앞을 막아나서며 풋당콩을 사달라고 하였던것이다.

보매 장사라고는 통 해보지 못한 순박한 할머니였다.앞에는 풋당콩이 든 큼직한 자루가 놓여있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풋당콩꼬투리를 몇개 집어드시고 살펴보시며 값을 물으시였다.

할머니는 값을 부르더니 눅게 팔겠으니 어서 사가시라고 하면서 많이 담아서 흘러내리는 풋당콩을 자꾸만 되박우에 덧얹어놓는것이였다.

그러는 할머니에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할머니, 풋당콩이 잘 팔리지 않는 모양입니다라고 하시며 한되박 사겠다고 하시였다.

할머니옆에는 나어린 처녀애가 오도카니 앉아있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애에게 눈길을 주시며 손녀인가고, 왜 손녀애까지 데리고나왔는가고 물으시였다.

할머니는 한숨을 지으며 말씀올리였다.

시장이 무슨 좋은데라고 앨 데리고나오겠수.치마가 없다고 학교에 못 가겠다 해서 풋당콩을 팔아 해주마 했더니 저렇게 따라나왔수다래.그런데 풋당콩이 팔려야지요.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못내 안색을 흐리시며 이제 조금만 참으시라고, 나라가 해방되였으니 이제 다 잘살게 된다고 말씀하시였다.

저애 치마감이나 하나 끊게 이 풋당콩을 다 사주시우다.

할머니는 경황없이 졸랐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러는 할머니에게 할머니, 이 풋당콩이야 집에서 맛이나 보려고 터밭에 몇평 심었겠는데 내가 다 사가면 집에서는 애들에게 풋당콩맛도 못 보이지 않겠습니까, 나는 한되박만 사겠습니다라고 하시면서 값을 치르시였다.

할머니와 헤여지기에 앞서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 돈으로 저애 치마감을 끊으라고, 앞으로는 할머니같으신분들이 애들옷때문에 이렇게 고생하시는 일이 없을것이라고 하시였다.

돈을 세여보던 할머니는 그만 굳어졌다.자기가 엄청나게 많은 돈을 받았기때문이였다.…

이런 전설같은 이야기는 세상의 어느 위인도 남기지 못하였다.

우리 인민모두가 꿈결에도 잊지 못하는 어버이수령님의 인정의 세계는 그처럼 한없이 뜨겁고 다심하였다.

이 세상에서 옷자락을 찬이슬에 제일 많이 적시시고 비바람, 눈보라를 제일 많이 맞으시며 조국과 인민을 위한 길을 제일 많이 걸으신 인민의 어버이!

어버이수령님의 위대한 한평생은 그 하루하루가 인민에 대한 가장 헌신적인 복무로 수놓아져있다.

전후복구건설의 나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현지지도의 길에 계시는 어버이수령님을 수행하시였다.

어느날 밤 현지에 도착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수령님께 왜 차창을 열어놓으시는가고 말씀올리시였다.

그러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자신께서는 해방후부터 함흥처럼 화학공장이 많은 도시에 오면 반드시 차문을 열고 시내에 가스냄새가 나지 않는가를 확인해보군 했다고, 지금 흥남비료공장을 비롯해서 화학공장들이 일어서기 시작하는데 시내의 공기가 흐려질가봐 걱정이라고, 인민들이 나쁜 공기를 마시지 않도록 우리는 복구건설과 함께 도시의 공해에 대해 깊은 주의를 돌리면서 미리미리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하시였다.

복구건설에 앞서 인민들의 건강을 념려하시면서 한밤중에 차창을 열고 시내를 돌아보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함흥지구에 대한 현지지도를 마치고 어두운 새벽에 청진에 도착하시였을 때에도 차창을 열어놓으신채 인적없는 시가지를 한바퀴 쭉 도시였다.

어찌 그뿐이랴.

언제인가 신포에 물고기랭동공장을 꾸리였을 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여름옷차림으로 령하 30℃의 극동실안으로 들어가시였다.수행일군들과 현장일군들이 동상을 입으실수 있다고 극력 만류해드리였건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겉구경이나 하고 돌아갈바에야 무엇때문에 백사불구하고 평양에서 여기까지 왔겠는가고 하시며 끝내 극동실안으로 들어가시였다.

그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산골사람들에게도 생선을 먹일수 있게 되였다는 기쁨과 랭동공장을 더 좋게 만드실 생각으로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오래도록 극동실을 돌아보시였던것이다.

일군들이 어버이수령님앞에서 죄송스러워 고개를 떨굴 때 수령님께서는 오히려 자신께서는 백두산에서 단련되여 일없었지만 동무들이 정말 혼이 났겠다고 하시며 흔연히 웃으시였다.

오로지 인민을 위하여!

바로 이 숭고한 목적에 바쳐진것으로 하여 어버이수령님의 혁명생애는 그렇듯 위대하고 그렇듯 고결한 력사로 광휘롭게 빛나는것이다.

위대한 혁명생애의 마지막나날 수령님께서 전 미국대통령과 함께 대동강하류를 따라 경쾌히 내달리는 유람선우에서 이야기를 나누신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있다.바로 그날 유람선이 도시를 벗어나 어느 한 곳을 지날 때에 있은 일이다.

어버이수령님께서 문득 한 일군을 부르시더니 배의 속도를 늦추라고 이르시였다.

사유를 묻는 손님에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손을 들어 한곳을 가리키시였다.사람들이 낚시질하는 풍경이 안겨들었다.

지금 근로자들이 강변에 앉아 낚시질을 하고있는데 우리가 물결을 세차게 일구면 방해가 된다.그러니 우리가 좀 천천히 가더라도 저들에게 방해를 주지 말자.…

사상과 업적으로 하여 걸출하실뿐아니라 한없는 인민적성품으로 위대하신 우리 수령님!

우리 인민과 세계 진보적인민들로부터 다함없는 존경과 흠모를 받고계시였지만 자신에 대한 그 어떤 특혜와 특전도 허용치 않으시고 언제나 인민들과 같이 소박하게 생활하신 어버이수령님이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이런 숭고한 덕망의 세계를 가슴뜨겁게 체험한 사람이 천인지 만인지 헤아릴수 없다.

언제인가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현지지도의 길에서 이른새벽 인민들에게 페를 끼칠가봐 로상의 이슬젖은 풀밭에서 곽밥으로 아침식사를 하시였다.

그 눈물겨운 사실을 체험한 일군들은 한지에서 식사를 하신 력사적인 장소에 패말표적을 해두려고 어디서 나무토막을 얻어오기까지 하였다.

이 사실을 아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따위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인민들을 더 잘 먹이고 더 잘 입히겠는가 하는 연구를 하라고 타이르시였다.

이 나라의 아침을 제일 선참 맞으신분, 인민이 걸어야 할 길이면 언제나 자신께서 먼저 걸으시고 새벽의 이슬도 먼저 터시였으며 조국을 위하여, 인민을 위하여 이 세상에서 제일 일감이 많으신분도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위대한 혁명생애의 마지막나날에도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인민을 위한 현지지도를 중단하지 않으시였다.

의료일군들이 어버이수령님을 보좌하는 일군들과 사전협의를 하고 고령의 몸으로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는 수령님의 앞길을 막은적이 있었다.

그들이 너무도 집요하게 길을 막아나서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노여움을 터놓으시였다.

동무들은 건강, 건강 하면서 인민들을 찾아다니지 못하게 하는데 그러면 내가 도대체 무슨 일을 한단 말인가.이제는 앉아서 통보나 받고 지시나 하면 된다고 하니 정말 동무들은 현지지도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있는것 같다.동무들의 말대로 나는 물론 집무실에 앉아서도 사업선을 통하여 인민들의 실정을 료해할수도 있다.그러나 그렇게 되면 나와 인민들사이가 사업선으로는 통하지만 정과 혈맥으로는 통하지 않는다.결국 나와 인민들의 거리는 아득히 멀어지고 나와 인민들의 관계는 물과 기름의 관계로 되고만다.…

나의 현지지도란 단순한 지도가 아니라 내가 인민들과 피를 나누는 하나의 혈액순환과정이다.그러니 인민들을 찾아다니지 못하게 나를 막는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좀 생각해보라.

인민들의 얼굴을 보고싶고 인민들의 목소리를 듣고싶고 인민을 위한 자신의 꿈을 인민들과 나누고싶으신것, 총적으로 인민들과 한시공간속에 계시면서 그들과 혈연의 정을 뜨겁게 나누고싶으신것, 이것이 우리 수령님의 현지지도를 추동하는 힘이였다.

바로 이런 숭고한 목적으로 하여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인민을 향해 끝없이 이어지는 행보를 두고 인민행렬차라는 표현을 쓰신것이 아니였던가.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렇게 인민을 찾아 쉬임없이 달리는 인민행렬차의 기적소리와 더불어 인민에게 행복과 웃음을 실어다주시였다.

자식을 위한 부모의 한생은 누구도 대신해줄수 없는 가장 아름답고 열렬한 사랑의 발현이며 가장 희생적인 생활의 산 화폭이다.

어버이수령님의 위대한 80평생은 진정 그 누구도 대신할수 없는 인민의 수령, 인민의 어버이의 위대한 사랑과 헌신의 력사이다.

어버이수령님을 영원한 수령으로 높이 모시고 살며 혁명하는 인민이여, 대대손손 은혜로운 태양의 력사 끝없이 전하여가자.

글 본사기자 량순

사진 본사기자 김광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