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기

자애로운 그 모습이 못 견디게 그립습니다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더 사무쳐오는 7월이면 저는 어버이수령님을 몸가까이에 모셨던 잊지 못할 그날이 못 견디게 그리워지군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45년전 포평혁명사적지를 찾아오시여 18살 애어린 처녀강사였던 저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시던 어버이수령님의 자애로운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량강도 김형직군에 있는 포평혁명사적지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10대의 어리신 나이에 조선이 독립하지 않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굳은 맹세를 남기시고 압록강을 건느신 유서깊은 포평나루터를 비롯하여 불요불굴의 혁명투사이신 김형직선생님과 강반석어머님, 리보익녀사의 애국의 발자취가 새겨진 뜻깊은 곳입니다.

주체63(1974)년 10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근 50년세월의 추억을 안으시고 눈덮인 오가산을 넘어 포평혁명사적지를 찾으시였습니다.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제가 올리는 꽃다발을 받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저의 두손을 꼭 잡아주시면서 손이 몹시 차다고, 어서 솜옷을 입으라고 다정히 말씀하시며 저를 자신의 품에 꼭 안아주시였습니다.

먼길을 오신 자신의 로고는 다 잊으시고 오히려 애어린 처녀강사의 찬손을 먼저 걱정하시는 어버이수령님을 우러르며 저는 북받치는 눈물을 걷잡을수 없었습니다.

이날 저는 위대한 수령님께 사적지의 여러곳을 해설해드렸습니다.

불요불굴의 혁명투사이신 김형직선생님께서 일제경찰놈들에게 체포되여 포평경찰관주재소로부터 신의주 도경찰부로 이송되던 도중 탈출하신 연포리주막집에 대한 구체적인 해설을 들으시며 깊은 감회에 잠기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목숨을 걸고 아버님의 탈출을 도와드린 황씨와 아버님의 림종을 지켜드린분들을 뜨겁게 회고하시였습니다.

이날 저의 해설을 마지막까지 다 들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저의 잔등을 가볍게 두드려주시며 어린 동무가 강의를 참 잘한다고, 추운데 수고가 많았다고 분에 넘치는 치하를 주시였습니다.그러시면서 여기에 와서 많은것을 알게 되여 대단히 기쁘다고, 오늘같이 기쁜 날 기념사진을 찍자고 하시며 저를 사랑의 한품에 안으시고 뜻깊은 기념사진을 찍어주시였습니다.

영광의 그날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감격에 목메여 흐느끼는 저에게 울지 말라고, 울면 사진이 잘 안되니 울지 말고 웃으라고 하시며 몸소 손수건을 꺼내시여 저의 두볼로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시던 어버이수령님의 자애로운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정녕 어버이수령님께서 포평혁명사적지를 찾으셨던 그날은 저의 한생의 전부와도 같은 뜻깊은 날입니다.

그후 백두산절세위인들의 따사로운 품속에서 저는 조선로동당원으로, 공훈출판물보급원, 구역인민회의 대의원, 한개 단위를 책임진 일군으로 성장하였으며 근 33년간 우리 당사상전선의 중요초소를 지켜가고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어버이수령님을 뵈옵던 영광의 그날을 언제나 심장에 새기고 백두산절세위인들의 불멸의 혁명업적을 만대에 길이 빛내여나가는 길에 온넋을 깡그리 바쳐가겠습니다.

모란봉구역출판물보급소 소장 김선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