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제힘으로 흥하는 길을 열어나가자

돌많은 땅도 귀중히 가꾸면 보배가 된다

앞뒤그루와 겹재배에 의한 강냉이세벌농사방법을 도입한 봉산군을 돌아보고

 

앞뒤그루와 겹재배에 의한 강냉이세벌농사!

호기심을 부쩍 불러일으키는 새 소식은 자기 지방의 특성에 맞게 부흥의 지름길을 열어나가는 단위들을 찾아 드바쁜 취재길을 이어가는 우리의 발걸음을 더욱 재촉하였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협동농장들에서 실천을 통하여 우월성이 확증된 앞뒤그루와 겹재배에 의한 두벌농사, 세벌농사방법을 적극 받아들이고 알곡 대 알곡, 알곡 대 감자를 기본으로 하면서 알곡 대 남새, 알곡 대 공예작물재배를 과학적으로 알심있게 하여 토지리용률과 농사의 집약화수준을 높여야 합니다.》

사리원을 지나 20여리가량 달리느라니 봉산군이라고 새겨진 표식판이 보였다.

봉산이라고 하면 누구나 봉산탈춤부터 떠올린다.세대를 이어 우리의 민족문화유산을 지키고 빛내여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 기쁨을 드린 봉산사람들, 남달리 민족적자존심과 애국열이 높은 그들이기에 오늘은 당의 뜻 받들어 알곡 대 알곡 세벌농사를 하며 어떻게 하나 이 땅에서 자기 손으로 행복의 열매를 거두어들이기 위해 애쓰고있다고 생각하니 한시바삐 만나고싶어졌다.

어느덧 군당위원회앞에 이른 우리의 눈앞에 이채로운 화폭이 펼쳐졌다.7월도 다 지나간 때에 무릎에 닿을가말가 하는 키작은 강냉이들을 보게 되니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그런가 하면 애어린 강냉이들 사이사이에서 이삭을 빼여물고 살을 찌우고있는 키높은 강냉이들도 흐뭇하게 안겨왔다.피뜩 앞뒤그루와 겹재배에 의한 강냉이농사를 진행하는 포전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아니나다를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 군의 한 일군이 키작은 강냉이들을 가리키며 6월말에 앞그루강냉이를 수확하고 뒤그루로 옮겨심은것이라고, 그리고 저 큰 강냉이들은 사이그루로 겹재배하는것인데 8월 중순에 거두어들일것이라고 설명해주었다.그러면서 앞뒤그루와 겹재배에 의한 이 강냉이세벌농사방법을 착상한 사람이 바로 군당책임일군이라고 귀띔해주는것이였다.

그는 우리를 읍협동농장으로 이끌었다.바로 그 농장의 한 작업반에서 지난해 앞뒤그루에 의한 강냉이두벌농사가 시험적으로 진행되였다는것이였다.

첫눈에 조용하면서도 연구심있어보이는 작업반장이 어줍은 웃음을 지어보이며 그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난해 2월초 김금철군당위원장이 찾아와 작업반에서 이른봄강냉이재배를 시험적으로 해보지 않겠는가고 할 때 솔직히 그는 생각이 많았다.처음 해보는 일인데다 박막과 비료, 로력 등을 타산해볼수록 아름차게만 느껴지고 실패하면 게도 구럭도 다 놓치는 격이 될것만 같아 며칠이 지나도록 선듯 결심을 내리지 못하고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군당책임일군이 또다시 찾아와 절절히 호소했다.

군을 둘러보라.바다도 끼고있지 못하고 특이한 자원도 없는 우리 군의 실정에서 자체로 잘 살아나갈수 있는 방도는 첫째도 둘째도 토지리용률을 최대로 높이는데 있다.중간지대 군으로서 논보다 밭이 더 많은데 맞게 강냉이 대 강냉이 두벌농사를 하면 계획을 수행하면서도 농장원들의 식량문제를 풀고 생활도 윤택하게 꾸려나갈수 있지 않겠는가.…

며칠후부터 작업반에서는 이른봄강냉이재배가 시작되였다.

먼저 지력이 비교적 괜찮은 곳에 모판자리를 정한 그들은 언땅을 녹이기 위해 벼겨와 잡초를 두툼히 깔고 며칠동안 열을 보장해주면서 땅이 녹는 차제로 박막을 씌웠다.그리고 생육기일이 짧으면서도 소출잠재력이 큰 종자를 선택하여 싹을 틔운 후 그것으로 영양단지를 만들었다.강냉이잎크기가 20~25cm정도 되였을 때에는 포전관리를 진행하고 여기에 화학비료와 질좋은 유기질비료를 충분히 뿌려주었다.포전준비가 끝나자마자 1 500평의 땅에 강냉이영양단지를 옮겨심은 그들은 비닐박막을 씌우고 생육온도를 보장해주며 정성다해 가꾸었다.

일반재배를 하는 포전들에서 강냉이키가 무릎에 닿을가말가 할 때 시험포전의 강냉이들은 키를 넘게 자라 팔뚝같은 이삭을 쭉쭉 뽑아올리는 희한한 광경을 보며 누구나 놀라고 기뻐했다.

1 500평의 땅에서 강냉이두벌농사를 하여 얻은 실리는 참으로 컸다.

6월말에 철을 앞당겨 수확한 1 000이삭의 첫물풋강냉이를 봉산학원 원아들에게 보내준 그들은 뒤이어 따들인 근 3만이삭으로 농장원들에 대한 공급도 하고 작업반꾸리기와 영농자재구입에 효과있게 리용하였다.뒤그루강냉이농사도 알심있게 지어 국가의무수매계획을 100% 수행하고 나라에 10여t의 알곡을 더 바치면서도 많은 분배몫을 남긴 작업반의 자랑스러운 현실앞에서 군안의 일군들과 농업근로자들이 받은 충격은 컸다.

땅, 얼마나 소중한 재부인가.정녕 그 얼마나 보배로운 만복의 토대인가.

그 옛날 봉산군수는 돌밖에 없다고 돌자랑만 했다지만 우리는 돌많은 땅이라도 바로 이 땅을 피땀바쳐 가꾸어 덕을 보며 땅자랑을 하자.

이런 자각과 열정을 안고 올해에는 군안의 모든 농장들과 기관, 기업소일군들이 스스로 떨쳐나섰다.여기에 사이그루재배방법까지 더 받아들이면 정보당 20t이상의 알곡을 수확하게 된다는 의견이 합쳐져 결국 앞뒤그루와 겹재배에 의한 강냉이세벌농사가 온 군에 일반화되게 되였다.

읍지구의 여러 농장, 작업반들과 군에서 50리 떨어진 오봉리의 산골짜기에까지 펼쳐진 이채로운 풍경들은 보면 볼수록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우리와 만난 신인숙 군협동농장경영위원회 위원장은 지금 군당위원회부터 앞장에 서고 모든 군급기관들과 군안의 농장들에서 1정보씩 강냉이세벌농사를 진행하고있는데 열의들이 대단하다고 자랑을 아끼지 않았다.그러면서 솔직히 올해 읍, 묘송, 송산협동농장과 같이 이른봄강냉이재배에서 성과를 거둔 단위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농장들도 있다, 우리에게는 그 교훈조차도 큰 밑천으로 된다, 올해의 경험과 교훈에 기초하여 다음해부터 강냉이세벌농사를 더 본때있게 해보자는것이 군일군들의 결심이라고 덧붙였다.

그러자면 로력보장과 지력개선이 큰 문제로 나서겠는데 방도는 있는가고 묻는 우리에게 그는 대뜸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결심하고 달라붙으면 방도는 나지기마련입니다.로력문제는 사상사업을 앞세우면서 분조관리제안에서 포전담당책임제를 더 잘 짜고들어 실시하면 되는것이고 지력개선도 전망이 좋습니다.》

그는 현재 군에서 작전하고 내미는 사업들에 대해서도 간단히 이야기해주었다.

토착미생물을 리용하여 돼지기르기를 잘하고있는 군종축장과 어느 한 피복공장의 경험을 일반화하여 농산과 축산의 고리형순환생산체계를 세우기 위한 조직사업을 짜고들고있는 사실과 석회석이 많이 매장되여있는 군의 특성에 맞게 농장들에서 자체로 소석회를 생산하여 토지개량사업을 계획적으로 내밀고있는 사실…

들을수록 눈앞에 생동한 화폭들이 펼쳐져 가슴은 더욱 부풀어올랐다.

《우리 고장 사람들이 봉산탈춤과 함께 또 하나의 자랑으로 간직하고있는것이 있지요.바로 군에서 예술영화 〈한 당일군에 대한 이야기〉의 원형이 나왔다는 긍지입니다.》

오봉리에서 돌아오는 길에 리춘일 군협동농장경영위원회 기사장이 문득 하는 말이였다.그러면서 영화에서 궁벽한 산골군으로부터 근위1급군으로 변모되는 봉흥군이 바로 봉산군이며 주인공의 원형이 1970년대초부터 1980년대초까지 사업한 자기 군의 군당위원장이였다는데 대하여 영화장면들까지 례들어가며 구수하게 이야기를 엮어나갔다.

영화의 인상깊은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그중에서도 텔레비죤화면으로 자기 군의 녀자선수가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 이악하게 달리여 두번째로 결승선에 들어서는 모습을 보며 기뻐 어쩔줄 몰라하는 사람들앞에서 여러분! 봤지요, 봉흥이라고 왜 체육까지 지겠습니까, 산골이라고 왜 더 잘살지 못하겠는가, 우리도 이 공사만 해제끼면 잘살수 있다고 흥분하여 웨치던 군일군의 목소리가 귀전에 쟁쟁히 들려왔다.사기오른 사람들이 와- 하고 자갈밭으로 달려가던 장면이 눈앞에 현실로 펼쳐지는듯싶었다.

그것이 어찌 수십년전의 영화장면이라고만 하랴.

우리도 앞으로 체육도 이기고 농업도 이기고 지방공업도 이길것이라는 자신심과 배짱을 안고 피와 땀으로 군의 면모를 일신시켜나간 영화의 주인공들과 오직 제힘을 믿고 자체의 실정에 맞게 잘 살아나가기 위해 머리를 쓰며 이악하게 노력해가는 오늘의 봉산군사람들이 어찌하여 한모습으로 안겨오는것인가.

아직은 시작에 불과하고 성과도 그리 크지 않다.또 군이 실지로 덕을 볼 때 자랑해달라는 군책임일군들의 당부도 진실하고 소박하였다.

하지만 이들을 자랑하고싶은 우리의 충동은 시시각각 더욱 커졌다.

잘난 자식, 못난 자식 가리지 않는 어머니처럼 설사 돌자갈땅이라도 태를 묻고 자란 이 땅을 사랑하며 이 땅에서 자기 손으로 만복의 열매를 거두어들이기 위해 노력하는 참된 주인들의 애국열, 투쟁열이 더 크고 소중하기때문이다.그래서 더더욱 흐뭇하게 안겨오는 봉산땅의 이채로운 풍경이 달리는 차창가로 자꾸자꾸 비껴들었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장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