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도 늦출수 없고 한순간도 소홀히 할수 없는것이 반제계급교양이다

실화

강령할머니

 

무릇 낯익은 고장은 아무리 오랜만에 찾았다 해도 세월에 흐려진 희미한 기억까지도 되살려주는 법이다.하물며 그곳과 인연이 깊을적에야… 그처럼 사연리에서는 한줄기 오솔길마저도 엊그제 본듯 생소하지 않았다.

강령반도 한끝인 사연리는 해주만에 면한 바다가고장인데 주체81(1992)년 여름 바로 이곳에서 한 로인을 만났었다.

(이젠 년세도 많은데 아직 앉아계시는지?…)

강령군에 대한 취재여가에 사연리에 들려 소재지마을로 총총걸음을 놓으며 몇번이나 이런 생각을 하였다.그러다가 자전거를 타고 마주오는 사람에게 말을 건넸다.

《소재지마을에 사십니까?》

그렇다는 대답에 서둘러 물었다.《그럼 정옥순할머니를 아시겠구만요.》

이러자 그는 자전거에서 아예 내려섰다.《잘 아시는 사이인가요?》

《예, 좀…》

《그럼 모르시는게구만.》 하고 그는 한숨을 내쉬였다.《사망하셨는걸요, 병환으로.이젠 오래 되였습니다.》

《예?!》

아아, 이것은 얼마나 통분하고 가슴아픈 일인가, 더구나 그 할머니에게 있어서.

중년의 그 사람은 자리를 떴으나 좀체로 걸음이 나가지 않아 길가에 망연히 서서 멀리 마을만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가슴을 어이며 로인의 비분에 찬 얼굴이 다가들었다.

오, 땅속에서도 분연히 자리를 차고 일어서는 잊지 못할 강령할머니!

* *

평양에서 강령까지는 반나절이 넘는 길이다.27년전 여름 렬차로 강령군 읍까지 가서 다시 신작로를 따라 북서방향으로 수십리 강령반도 한끝에 들어가서야 목적한 사연리에 이르렀는데 도중에 그 고장에 사는 녀인을 만나 같이 걷게 되였다.그는 자기 고장 자랑을 쉼없이 늘어놓았다.대체로 사연리가 경치가 아름답고 살기가 좋다는것이였다.

《날씨도 온화하고 물산도 많답니다.》

《바다가여서 물고기도 흔하지, 굴이랑 조개랑 많이 나지.… 참 굴밥을 아시지요.생굴이나 볶은 굴을 두고 지은 밥인데 별맛이랍니다.우리 고장 별식이니 이번 길에 한번 맛보세요.》

녀인이 이러며 제고장 굴밥자랑을 감나무자랑으로 이어갔지만 생각은 딴곬으로 흐르는것을 어쩔수 없었다.이제 그곳에 가서 만나봐야 할 낯모를 로인, 그가 개마고원의 산간오지에서 강령반도 한끝으로 옮겨앉은것은 단지 사연리가 살기 좋아서일가? 혹시 그럴수도 있다.하지만 본인의 말을 들어보아야 알것이다.그의 인생풍파가 거기에도 사연을 남기였을지 어찌 알겠는가.

고향은 량강도, 해방전 일제에게 강제련행… 로인에 대해 알고있는것은 그때엔 이것뿐이였다.이제 로인의 어떤 과거사에 접할지 그것도 시간에 맡겨야 했다.아직은 한 녀성의 피절은 과거가 당사자의 침묵으로 수십년동안 가리워져있던 때였다.

강령할머니는 이제 그 괴로운 침묵을 깨리라!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조선인민은 악독한 일제놈들의 극심한 민족적억압과 착취를 받았으며 초보적인 정치적권리와 민주주의적자유마저 빼앗기고 피눈물나는 식민지노예생활을 강요당하여왔습니다.》

사연리,

마침내 정옥순로인과 마주앉았다.얼기설기 패인 주름, 눈언저리며 입가에 얽힌 잔주름에조차 비통의 울기가 배긴 어두운 얼굴… 로인은 책상우에 놓인 취재수첩과 사진기를 일별하고나서 묵묵히 고개를 들었다.

《해방전에 일제놈들에게 끌려가 많은 피해를 당하셨다는데 자세한 내용을 신문에 내자고 찾아왔습니다.》

로인이 응하길 원하여 덧붙이였다.

《아시겠지요, 일본이 과거죄행을 한사코 부인하는걸 말입니다.그러니 돌이키기 괴롭다 할지라도 증언하셔야 합니다.》

로인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외로 틀었다.입에서 신음소리가 새여나왔다.눈길은 창문쪽으로 향해있었다.거기에 가득찬 울분과 저주… 그것은 벼락맞을 섬나라에 보내는것이리라!…

한손으로 책상모서리를 틀어쥔채 부들부들 떨던 로인이 결심한듯 움쭉 몸을 일으켰다.그리고는 옷섶을 쫙 헤쳤다.

《그럼 이걸… 이걸 찍소! 이것도 여기도 이 몸을 몽땅!》

그의 눈에선 눈물이 아니라 피가 뿜는듯 하였다.기실 그런 눈물은 난생처음 보았다.로인은 목갈린 소리로 부르짖었다.

《이걸 세상에 알리오.온 세상에… 이게 바로 일본놈 그 개새끼들이 한짓이요! 이게 그 륙실할 일본 개잡놈들의 취미이고 향락이요!》

로인은 이러고 자리에 어푸러졌다.그가 두손으로 방바닥을 치는 소리가 흉벽을 긁어내렸다.강령할머니는 이렇게 자기 인생에 두텁게 드리워놓았던 세월의 장막을 걷어올렸다.

순간 로인의 육체로부터 차마 마주 볼수 없는, 인간으로서 상상조차 할수 없는 귀축같은 만행의 흔적이 눈을 찔렀다.그것은 사람을 전률케 하였고 민족의 일원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일제야수들같이 사람이 되기를 그만둔 악마들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으로 가슴이 부글부글 끓게 하였다.

* *

《1934년이였소.내 나이 14살때요.난 풍산에서 살았는데 지금 김형권군이라고 부르는 고장이요.우리 집은 파발리에 있었소.그런데 하루는 왜놈들이 달려들더니 날 다짜고짜 경찰서로 끌고갔소.밭에서 김을 매다가 이걸 알게 된 부모님들이 달려와 내 딸을 내놓으라고 통곡했지만 왜놈들은 모른다고 하면서 목검으로 때리고 발로 차서 내쫓았소.그리고는 내 입을 누데기로 틀어막고 번갈아가며 욕을 보이였소.그런 후 다시 일본수비대로 끌고갔소.거긴 혜산이였소.숱한 녀자들이 왜놈병영에 잡혀와있었소.수비대 장교놈은 우리들을 모아놓고 이제부터 제놈들에게 봉사해야 한다고 소리쳤소.정말 일본놈들은 짐승보다 못한 더러운 야수들이였소.놈들은 우리가 소리를 못 치게 입에 말자갈을 물렸고 몸을 거절하면 군도를 배에 가져다대며 죽이겠다고 위협했소.내 배에 난 칼자국도 그때 생긴것이요.하루는 왜놈장교 여덟놈이 한꺼번에 나에게 달려들었소.그리고는 내가 반항했다고 해서 알몸상태로 철봉대에 매달고 먹물을 가득 묻힌 바늘도장으로 온몸을 마구 찔렀소.난 너무 고통스러워 악악 소리를 지르다가 까무라치고말았소.정신을 차리고보니 오물장에 내던져져있었소.내가 죽은줄 알고 버렸던거요.혜산엔 나처럼 그렇게 욕을 당하는 녀자들이 400명이나 있었는데 왜놈들악행에 죽은 처녀들만 해도 200명이 넘소.그해 8월에 놈들은 병영에 가두었던 녀자들을 모두 중국 광주로 끌고가 그 지랄을 계속했소.그래서 숱한 녀자들이 자살했소.일본놈들이 다 망가뜨린 몸, 깡그리 빼앗긴 청춘을 어디 가서 되찾는가 말이요.정말 지옥같은 세상이였소.녀인들의 피와 눈물이 강물처럼 흐른 세월이였소.그러나 아무리 원통해도 수치감때문에 우린 제 처지를 어디에 하소연조차 못했소.나도 몇번이나 목숨을 끊으려고 했댔지.허나 눈에 흙이 들어간다 해서 잊을수 있나 말이요.원쑤를 갚기 전엔 죽을수 없어 이를 악물고 이날이때까지 살아왔소.…》

피눈물의 세월을 헤치고 로인이 꺼내는 하나하나의 사실은 가슴을 날카롭게 허비였다.

* *

여름에 밤이 깊으면 정옥순은 남몰래 집을 나와 기슭에 버들이 우거진 산골짝 내가에 가서 물에 몸을 잠그었다.

교교한 달빛을 보느라면 떠나온 고향생각이 났다.

사람들도 좋고 산천경개도 아름다운 강령땅이지만 이 바다가마을로 피나는 추억이 없이 왔더라면 오죽이나 좋으랴.아, 험악한 상처를 안고 타향으로 피해온 고통스러운 몸…

자신의 처지를 생각할 때면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고 몸을 더듬는 손은 사정없이 떨리였다.가슴에도 입묵, 팔에도 입묵… 복부 지어 하반신에까지 왜놈악귀들은 흉측한 그림을 새기였다.피부가 쏘고 쓰리던 그때의 육체적고통, 온몸이 영원히 지울수 없는 먹물그림투성이가 된 정상보다 더 가슴저린것은 뼈를 깎는 치욕과 모멸감이였다.몸과 마음의 그 모든 깊은 상처를 안고 그는 낮마다, 밤마다 몸부림쳤다.그는 목욕탕에 가는것을 금하였고 밝은 곳에서 속옷을 갈아입는것도 금하였다.겨울이면 헛간에 숨어 함지목욕을 하였고 여름이면 한밤중에 개울에 나가 몸을 씻지 않으면 안되였다.여름에도 팔소매가 짧은 옷을 입지 않았다.입을수가 없었다.복더위로 숨이 막힐 때에도 팔소매가 긴 옷을 벗지 못하였다.남들에게는 풍한습이 껴서 여름에도 추위를 탄다고 말하지 않으면 안되였고 누구인가 속을 덥히는데 좋다고 하면서 들고온 탕약도 애써 웃으며 받아야 했다.

그것을 뒤뜰에 쏟아버리며 그는 가슴을 쥐여뜯었다.

(욕하지 말아요.이렇게밖에 딴 도리가 없어요.날 용서하시라요.)

그는 바람벽에 세워둔 도끼를 틀어쥐고 치를 떨군 하였다.뜨락구석의 나무등걸은 정옥순의 도끼질로 하여 날마다 패이였다.시퍼런 도끼날밑에 그가 마음속으로 끌어다 눕힌 일제야수놈이 천이였던가, 만이였던가.

(일제, 천하의 악귀들.네놈들을 모조리 이 한도끼에 찍어죽이였으면!… 아 어머니, 어느때면 이 한을 풀수 있을가요.)

* *

일본군성노예생활을 강요당하였던 모든 녀성들과 마찬가지로 정옥순로인이 수치와 모멸감으로 하여 수십년동안 묻어온 과거도 더는 개인의 《비밀》로 될수 없었다.주체81(1992)년 9월, 일제가 감행한 수십만 조선녀성들에 대한 전대미문의 야만적행위의 극히 하나로서 정옥순로인이 당한 만행이 《로동신문》을 통하여 세상에 공개되였다.한편 일제에 의해 싱가포르에 끌려갔던 리원옥, 쏘만(당시)국경에 끌려갔던 심청옥 등 수많은 조선녀성들이 강요당한 성노예생활의 진상이 련이어 폭로되였다.그해 10월에는 구일본의 전시죄행과 관련한 국제조사위원회가 조직되였다.국제조사위원회는 일제의 만행을 조사공개하기 위해 국제조사단을 무어 조선에 파견하였다.국제조사단은 평양에서 진상조사사업을 진행하였다.같은 해 12월 조선중앙통신은 국제조사단이 일제놈들에게 끌려가 갖은 모욕과 고통을 당한 피해자, 목격자들의 증언을 청취하였으며 정옥순녀성이 일제의 천추에 용납 못할 야만행위를 낱낱이 고발한데 대하여 보도하였다.주체84(1995)년 7월에는 유엔의 해당 성원들이 녀성폭행에 관한 유엔특별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평양에 도착하였다.그들은 일본군위안부로 끌려다닌 장수월로인을 비롯한 여러 녀성의 증언과 함께 정옥순로인의 증언도 청취하였다.일제의 야수적만행에 그들은 경악하였고 격분을 금치 못하였다.광범한 국제사회는 일제의 잔악무도한 인권유린행위를 강력히 규탄하였다.

력사는 또다시 증거를 제시하였다.주체92(2003)년 2월 평양에서 진행된 일제의 조선인강제련행의 범죄성에 대한 북남공동자료전시회에는 일제의 만행을 신랄하게 폭로하는 새로운 사진자료들이 전시되였다.인류는 일제가 일본군위안부로 끌고다닌 조선녀성들을 어떻게 무참히 학살하였는가를 몸서리치는 사진자료들을 통해 똑똑히 보았다.그중에는 사진기자들이 찍은 정옥순로인의 복부사진도 있었다.사람들은 그앞에서 치를 떨었다.그것은 무엇으로써도 가리울수 없고 지울수 없는 일제야수들의 귀축같은 만행의 생생한 증거이고 피타는 고발이였다.

구일본은 진정 야수의 나라였고 그 야수들을 괴여올리고저 야스구니진쟈참배놀음을 부지런히 벌리는 오늘의 일본에도 야수의 피가 그냥 차있다.

* *

길가의 들꽃무리에서 흰 꽃 한송이를 꺾어들었다.강령할머니가 누워계시는 봉분에 드리고 명복을 빌고싶었다.허나 그런다고 할머니가 족해하시랴!…

불쑥 사연리에 처음 다녀온 후 평양역앞에서 우연히 로인을 다시 만났던 일이 떠올랐다.그는 말하기를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는 연단에서 발언하기 위해 평양에 왔다는것이였다.수난의 여파에 등이 일찍 굽은 로인이 활기에 넘쳐 거리를 지나는 꽃같은 처녀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그때를 생각하면 속에서 바늘묶음이 돌아가는듯 가슴이 쓰려난다.

정녕 강령할머니처럼 영원히 아물수 없는 상처를 안고 일생 분노로 가슴을 태웠고 오늘도 원한에 떠는 수난자들이 어찌 한둘이겠는가.어떻게 복수하면 참혹하게 유린당한 수십만 조선녀성들, 수천만 우리 민족의 천추의 한을 풀것인가!…

로인은 헤여지면서 뒤돌아보았다.사연리에서 처음 본 그때처럼 주름깊은 얼굴에 꽉 배겨있던 원한과 울분, 활활 불타는 복수심!

그것은 후대들을 돌아보는 얼굴이였다.일제에게 짓밟히였던 수십만 녀성들이 우리를 돌아보는 얼굴이고 인류의 량심에 보내는 엄준한 고소였다.

피눈물나는 과거를 절대로 잊지 말라고, 조선민족의 모든 불행과 고통의 근원인 일본악귀들을 천백배로 복수하라고 그 얼굴은 오늘도 웨치고있다.

본사기자 박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