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력갱생으로 승리 떨쳐온 력사를 돌이켜보며

잊지 못할 처창즈의 무기수리소

 

오늘도 우리 인민에게 결사항전의 정신을 깊이 심어주는 처창즈,

준엄한 항일전의 나날 바로 이곳에서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이 높이 발휘되였다.

당시 처창즈유격구역의 동남차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유격구건설방침에 따라 설치된 무기수리소가 있었다.

이 무기수리소는 이전 연길현의 삼도만과 화룡현의 어랑촌무기수리소 일군들로 꾸려졌다.이전 근거지들에 있던것들보다 규모가 훨씬 클뿐아니라 작탄제조실, 무기제작 및 수리실, 단야실, 작식칸, 침실 등이 배치된 무기수리소에는 자체로 만든 수백종의 공구가 갖추어져있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은 혁명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지녀야 할 투쟁정신입니다.》

처창즈를 중심으로 하는 여러 지역에 수많은 혁명군중이 조직적으로 이동하고 이 일대가 유격구역으로 꾸려지는데 극도로 당황한 일제는 대병력을 동원하여 끊임없는 《토벌》공세를 벌리였다.

놈들의 토벌이 없는 날은 거의나 없었다.

제일 곤난한것은 식량문제였다.유격구역의 인민들과 유격대원들은 적들의 악랄한 《집단부락》정책으로 말미암아 식량을 구할수 없는 조건에서 햇곡식이 나올 때까지 굶주림과 싸워야만 했다.

난관은 이루 헤아릴수 없이 크고 지어 생명까지도 위협했으나 처창즈의 혁명군중, 무기수리소의 용사들은 그 어떤 동요나 비관을 몰랐다.

밀림속에 꾸려진 동남차의 무기수리소에서 투사들은 끊어진 무기의 부분품들을 련결하였고 마사진 무기까지도 원상대로 수리하였다.

무기고장에서 많은 비률을 차지한것은 부분품이 부러지는것이였다.목재부분일 때에는 문제로도 되지 않았다.그러나 격침, 송탄기, 련결판 등이 고장나는 때가 문제였다.

언제인가 다리가 부러진 기관총이 들어왔을 때였다.

고장난 무기를 한시도 그대로 두고있을수 없는 조건에서 어떻게 할것인가.

그때 투사들의 가슴을 울린것은 더 많은 무기를 자체로 제작할뿐아니라 고장난 하나의 무기도 버리지 말고 다 수리하여 리용하라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였다.

어떤 일이 있어도 무조건 무기를 수리할 결심이 투사들의 가슴에서 끓어번졌다.

투사들은 고심어린 탐구를 거듭하던 끝에 단접으로 부러진 부분을 맞붙이는 귀중한 경험을 얻게 되였다.

이 방법은 크기와 두께에 관계없이 부러진 무기의 그 어떤 부분품이라도 다 손쉽게 붙일수 있는 방법이였다.

먼저 붙이려는 두 부분에 진하게 푼 흙물을 바른 다음 풀무를 불며 불에 달구었다.그리고 높은 온도를 보장하여 금속부위에서 시퍼런 빛이 번쩍번쩍 튀여나는것이 눈에 보일 때에 그것을 집게로 집어서 모루에 댄 다음 두드리면 매끈하게 련결되게 되였다.

투사들은 이렇게 맡겨진 임무를 무조건 수행하기 위해 애썼다.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면서 여러가지 방법으로 시험을 계속하는 과정에 귀중한 실천적경험을 쌓았다.

무기수리소에는 하나의 원칙, 하나의 생활준칙이 있었다.

전투가 있은 뒤에는 의례히 수리할 무기들이 들어오군 했는데 그것을 다 수리하여 부대에 보내기 전에는 누구 하나 일손을 놓지 않는것이였다.

언제인가 근거지방위전투가 있은 다음 동남차무기수리소에는 수십정의 고장난 무기가 들어왔다.적들의 총탄에 총가목이 달아나고 겨눔장치가 뚝 떨어진것들이였다.그런가 하면 약통물개, 격동턱이 마모되거나 부러진 무기도 있었다.

방금 전투장에서 돌아온 동남차의 용사들이였지만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또다시 무기수리에 달라붙었다.

적들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를 정황에서 무기수리는 그야말로 전투였다.그것은 그 무기들이 빨리 수리되여 유격대원들의 손에 쥐여져야만 적들을 때려부시고 유격근거지를 사수할수 있었기때문이였다.

재봉대원들도 달려와 풀무를 당기고 연마하는 일을 도왔다.

이러한 결사의 투쟁속에서 10여일이 걸려도 힘든 작업량인 수십정의 무기를 수리하는 일도 단 하루밤사이에 끝낼수 있었다.

이때뿐이 아니였다.

동남차의 용사들은 무기수리임무가 제기되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고 언제 어디서나 일판을 벌려놓고 고장난 무기를 제때에 수리하였다.

주체24(1935)년 11월 어느날이였다.

대오가 처창즈에서 내도산으로 행군하던 도중 선두대렬에서 긴급련락이 왔다.빨리 와서 기관총을 고쳐달라는것이였다.

수리공들이 몇가지 공구를 넣은 배낭을 걸머지고 50~60리길을 한달음에 갔을 때에는 벌써 새벽 4시경이나 되였다.

기관총은 적탄에 맞아 가스관부위에 구멍이 나졌다.뚫어진 구멍을 막아야만 했다.

투사들은 지체없이 나무밑에 적당한 자리를 잡았다.이어 도끼로 나무를 다듬어 간단한 풀무를 만들고 숯불을 피웠다.

그리고는 뚫어진 구멍에 맞춤하게 탄피를 오려서 대고 두줄의 철사로 고정시켰다.다음은 짬사이만 막으면 되였다.

많은 실천적경험을 가지고있던 그들은 오려서 댄 가스관부분을 모로 세워 숯불에 달구면서 탄피를 녹인 방울을 떨구었다.

구리는 녹음점이 높지 않으므로 인차 녹기때문이였다.녹아떨어진 구리방울은 경사면을 따라 짬사이에 흘러들었다.

그리하여 기관총수리는 야장간조차 없는 곳에서 날이 밝기 전에 끝났다.

이렇게 항일투사들은 아직 사람들의 발길이 미친적이 없는 심산속에서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혁명정신을 높이 발휘하였다.

동남차무기수리소에 대한 이야기는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이야말로 무에서도 유를 창조하고 아무리 어렵고 힘든 혁명임무도 제때에 무조건 철저히 수행할수 있게 하는 힘있는 사상정신적원동력이라는것을 우리에게 다시금 새겨주고있다.

본사기자 김진욱

 

항일무장투쟁시기 자체로 수리제작한 무기들과 리용하던 도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