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사들의 넋을 깊이 새겨주어

김책시 송암남새전문협동농장 초급당위원회 사업에서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수령님을 모시는 항일혁명투사들의 자세와 립장, 그들의 모범을 따라배워야 합니다.》

리용만초급당위원장이 송암남새전문협동농장에서 사업을 시작하였을 때였다.

실태를 료해하는 그의 마음은 무거웠다.작업반들의 면모가 생각했던것보다 뒤떨어졌던것이다.일부 일군들은 작업반들이 시주변에 분산되여있고 농장원들이 로동자, 사무원들과 함께 살고있는 조건을 내세우면서 인민경제계획을 수행하는것만도 대단한것으로 여기고있었다.

하지만 초급당위원장은 문제를 그렇게 보지 않았다.농장원들에게 작업반의 주인이라는 관점, 일터에 대한 애착심이 부족한데 있다고 보았다.

그는 항일혁명투사들 특히 김책동지가 지녔던 숭고한 정신세계를 일군들과 농장원들의 가슴속에 깊이 심어주는데 모를 박고 교양사업을 심화시켰다.그것은 일군들과 농장원모두가 김책동지의 이름으로 불리우는 도시에서 살며 일하고있는 실정과 관련되여있었다.

초급당위원회에서는 우선 당초급선전일군들을 발동하여 집단에 애국의 열풍이 차넘치게 하기 위한 사업을 짜고들었다.

제2작업반 선동원 김동무를 농장적인 본보기로 내세운것이 실례로 된다.

얼마전 해당 당세포에서는 농장원들이 시에 세워진 김책동지의 동상을 찾는 기회에 그 선동원이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연구발표모임에 출연하도록 분공조직사업을 하였다.모임에 출연한 그는 항일혁명투사들의 투쟁기풍을 거울로 삼고 많은 퇴비와 흙보산비료를 장만하여 해마다 알곡생산계획을 120%이상 수행한 경험을 구수하게 이야기하였다.모임을 통하여 농장원들은 항일선렬들이 피로써 찾아준 조국땅 한치한치를 더욱 알뜰히 가꾸어갈 결의를 다지였다.

초급당위원회에서는 그의 모범을 일반화하여 모든 당초급선전일군들이 단위의 실정에 맞게 선전선동활동을 기백있게 벌리도록 사업조직을 면밀히 하였다.

초급당위원회에서는 또한 여러가지 방법을 적극 활용하여 농장원들을 애국농민으로 키우기 위한 사업도 실속있게 진행하였다.

학습회, 강연회를 비롯한 여러 계기에 하는 집체교양과 함께 개별교양에 깊은 관심을 돌렸다.그것은 집체교양이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을 대상하여 교양하는 좋은 방법이지만 개별적사람들의 특성과 심리에 맞게 실속있는 교양을 주는데서는 일정한 제한성이 있기때문이였다.

제1작업반 농장원 김동무가 농사일을 잘하지 못하여 사람들의 말밥에 오르고있을 때였다.

작업반에 나간 기회에 포전에서 그를 만난 초급당위원장은 김책동지가 지녔던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과 조국과 인민에 대한 헌신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그러면서 김책동지의 이름을 가진 도시와 공장, 대학이 사회주의건설에서 언제나 앞장서기를 바란다고 하신 어버이수령님의 유훈을 언제나 가슴깊이 간직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였다.그와 헤여지기에 앞서 위대한 수령님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계승본) 제8권에 수록된 《혁명가 김책》에 대한 학습을 깊이 하고 감상문을 쓸데 대한 과업도 주었다.

회고록을 다시 학습하는 과정에 김동무는 일시적난관앞에 주저앉아 땅의 주인, 작업반의 주인으로서의 본분을 잊고 생활해온 지난날을 깊이 반성하였다.그후 그의 사업과 생활에서는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났다.매일같이 남보다 먼저 일터로 출근하였고 작업에서도 솔선 앞장에 섰다.

초급당위원회에서는 그의 소행을 3대혁명붉은기쟁취운동 영예등록장에 등록하고 널리 소개선전하였다.김동무가 집이 좁아 생활에서 불편을 느끼고있다는것을 알고는 작업반가까이에 새 집도 마련해주어 그가 안착된 마음으로 농사일을 잘하도록 떠밀어주었다.

투사들의 정신세계를 따라배우는 과정에 작업반들은 화목하고 단합된 집단으로 자라났고 영농작업과 작업반꾸리기에서 전투력이 남김없이 발휘되였다.

경험은 당조직들이 사상교양사업을 단위의 구체적인 실정과 대중의 심리에 맞게 진행할 때 응당한 실효를 거둘수 있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본사기자 김승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