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오늘도 포전길을 걷고있다

청단군 삼정협동농장 제4작업반 부림소관리공이였던 윤세린동무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애국은 보석과 같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지난 6월 16일 이른아침이였다.청단군 삼정협동농장 제4작업반 2분조 농장원 윤세린동무는 여느날처럼 일찌기 일어났다.그날은 작업반원들이 포전에 나오기 전에 다른 두명의 부림소관리공들과 함께 마지막모판자리에 대한 갈이를 끝내야 하였다.

안해가 대문밖까지 따라나오며 걱정스레 물었다.

《그 몸으로 괜찮겠어요? 오늘은 더 힘들어보이는데 하루 좀 쉬는게 어때요?》

윤세린동무는 머리를 저었다.

《오늘이 마지막모판자리요.모내기가 끝나면 내 푹 쉬지.》

올해 2월 중병으로 침상에 누웠던 그는 논갈이가 시작되기 바쁘게 일어나 소고삐를 잡았던것이다.

아직 작업반원들이 출근전이라 포전에서는 《이랴, 이랴》 하는 그의 목소리만이 울렸다.뒤이어 포전에 나온 다른 부림소관리공들도 그를 따라 땅을 갈아엎었다.그때 그들은 윤세린동무가 모진 아픔을 간신히 이겨내며 일하고있다는것을 알수 없었다.

얼마후에야 그가 힘겹게 부림소를 몰아가는것을 띄여본 부림소관리공들이 논뚝에 나가 좀 쉬라고 권고하였지만 윤세린동무는 계속 논을 갈아나갔다.

그때로부터 몇분후 《아-》 하는 신음이 울리였다.농장원들이 뒤돌아보니 윤세린동무가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져있었다.…

윤세린동무의 심장은 이렇게 포전에서 고동을 멈추었다.

그는 부드러운 한줌 흙을 움켜잡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땅을 가꾸기 위해, 소를 부리기 위해 태여난것만 같던 사람, 소를 쓸 일이 있으면 제일먼저 찾군 하던 친근한 부림소관리공, 그가 갈이한 땅에서는 정말 농사짓기가 헐하다고 누구나 칭찬하던 실농군…

그는 땅을 가꾸는데서 무한히 성실하였다.

평시에는 온순하고 남에게 싫은소리를 하지 않았지만 일을 손쉽게 하려는 눈치가 조금이라도 보이게 되면 그저 지나칠줄 몰랐다.그리고 무섭게 닦아세웠다.

《말 못하는 땅이라고 그렇게 막 다루어도 된다고 생각하면 언제 가도 실농군이 될수 없소!》

윤세린동무에게는 남의 포전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다른 농장원, 다른 분조, 다른 작업반이라고 하여 조금도 일을 소홀히 하는 법이 없었다.그의 생일은 6월초, 해마다 모내기전투로 드바쁜 시간을 보낼 때이다.그래서인지 그는 언제 한번 생일을 쇠본적이 없었다.

올해에도 마찬가지였다.그날도 윤세린동무는 땀을 철철 흘리며 뜨락또르로 갈다가 설핀 부분들을 다시 갈아엎었다.

그 모습은 얼마나 미덥고 돋보였던가.

하루일을 끝내고 늦게야 집에 들어와 윤세린동무는 딸이 부어주는 한잔술을 달게 들었다.

그에게는 명절날과 휴식일이 따로 없었다.그만큼 포전에서 사는 시간이 더 많았다.

한직종, 한초소에서 수십년동안 성실히 일한다는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윤세린동무는 27년간을 부림소관리공으로 일하였다.그의 나이는 55살, 그러니 반생을 소와 함께 살아온것이다.

그는 제대군인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자기가 관리하는 부림소와 농기구를 눈동자처럼 아끼고 사랑하였다.온 집안이 부업으로 애써 마련한 자금도 소를 위해, 농기구들을 마련하기 위해 주저없이 내놓았다.

그가 관리하는 소는 언제 보아도 실하고 튼튼하였다.리는 물론 군에서 열리는 부림소품평회에서 그가 맡은 부림소들은 항상 우수한 평가를 받군 하였다.

언제인가 그는 리당일군에게 이렇게 물었다.

《나같은 평범한 농장원도 경애하는 원수님을 만나뵈올수 있을가요?》

이런 간절한 소원을 안고 그는 한생을 땅처럼 가식없이, 변함없이 한모습으로 살아왔고 그렇게 생을 마치였다.

윤세린동무는 지금 우리곁에 없다.하지만 그의 넋은 이렇게 웨치고있다.

《조국을 위해 자기의 본분을 마지막까지 책임적으로 다해야 한다!》

윤세린동무처럼 누가 보건말건, 알아주건말건 성실한 피와 땀을 조국에 바쳐가는 그런 사람이 오늘 우리 당이 바라는 참된 애국자이다.

김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