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제힘으로 흥하는 길을 열어나가자

방문기

구슬 서말을 꿰여 보배를 만드는 사람들

룡등탄광을 찾아서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여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제힘으로 흥하는 길을 열어나가는 단위들을 돌아볼 때마다 우리는 자주 이 말을 새삼스럽게 뇌여보군 한다.한것은 아무리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있다고 하여도 그것을 옳게 리용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에 불과하기때문이다.결국 매 단위가 부흥의 길을 어떻게 열어나가는가 하는것은 조건상차이에 기인되는것이 아니라 자기 땅의 모든것을 효과있게 리용하여 진귀한 보배로 만들려는 비상한 자각과 이악한 노력에 달려있는것이다.얼마전 룡등탄광에 대한 취재길에서도 우리는 이것을 다시금 절감하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예비는 찾으면 찾을수록 더 나오기마련입니다.》

구장군의 남부에 위치한 룡등탄광은 이름난 무연탄생산지의 하나이다.그러나 룡등땅의 자랑은 비단 석탄만이 아니였다.

우리가 찾아온 사연을 들은 탄광일군은 스스럼없이 이렇게 자랑보따리를 풀었다.

《범골에는 석회석이 무진장하게 매장되여있고 새우골쪽으로 올라가면 칠색송어가 꼬리치는 양어장이 있답니다.》

첫마디에 거침없이 쏟아져나오는 자랑거리들은 우리의 취재길을 독촉하였다.

우리는 먼저 양어장으로 향하였다.방금 일군이 외운 칠색송어라는 말이 유별나게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았던것이다.여기가 바로 칠색송어와 더불어 유명한 구장땅임을 새삼스럽게 느끼며 우리는 차창밖으로 흘러가는 전경에 시선을 얹었다.

강냉이잎새들이 차창을 스칠듯 바투 다가서고 그뒤로 비교적 가파로운 산발들이 병풍처럼 둘러서있었다.양어장이 자리잡은 곳치고 지세가 험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또한 흔치 않은 체험이여서 마음은 즐겁기만 하였다.

양어장은 산으로 빙 둘러막힌 아늑한 골짜기에 자리잡고있었다.계단식으로 들어앉은 여러개의 양어못우에 수양버들이며 오동나무, 대추나무 등 갖가지 나무들이 시원한 그늘을 던지고있었다.

덩지큰 곰이 묵직한 물고기 두마리를 안고 넘어지는 모양을 형상한 조각이 눈길을 끌어 다가가보니 휴식터였다.동물조각아래에서 콸콸 쏟아져나오는 물을 한모금씩 떠마시는 우리에게 관리공은 자랑삼아 말하였다.

《이렇게 잠관에서 직접 흘러나올 때의 물온도는 9℃입니다.한여름에 도마도나 오이같은것을 물에 담그어놓았다가 먹으면 얼마나 시원한지 모릅니다.》

그러면서 관리공은 물속에 있던 유리병들을 꺼내보였는데 그안에는 새끼고기먹이에 섞어줄 염소젖이 들어있었다.

《그러니 이 물은 천연랭장고나 같군요.》

우리의 말에 관리공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을 달았다.

칠색송어는 맑고 찬 물에서 자라는 민물고기이다.한낮이 되면 물온도가 웃못에서는 14~16℃, 아래못에서는 18~20℃정도 되는데 칠색송어를 기르기에 알맞춤하다.그리고 잠관에서 직접 나올 때의 물온도는 알깨우기에 리상적이다.…

칠색송어양어와 관련한 실무적인 이야기였지만 그의 목소리에서 우리는 분명히 느낄수 있었다.그것은 양어를 해도 자기 고장의 특성에 맞게 해야 덕을 단단히 볼수 있음을 실지체험을 통해 절감한 사람만이 간직할수 있는 뿌듯한 긍지감이였다.

종어못에서는 팔뚝보다 더 큰 칠색송어들이 유유히 꼬리치고있었다.한번 몸통을 휘저을 때마다 등의 검푸른색이며 배의 은빛색 그리고 옆구리의 무지개같은 띠무늬가 해빛에 반사되여 령롱한 자태를 드러냈다.

새끼고기못에서는 수만마리의 새끼고기들이 오골거리고있었다.이 새끼고기들이 얼마후엔 비육못으로 옮겨진다고, 해마다 가을이면 비육못에서 건져낸 칠색송어들을 굴진공, 채탄공들에게 공급한다는 관리공의 기쁨넘친 이야기를 들으니 10년전 위대한 장군님께서 개건확장된 구장양어장(당시)을 찾으시였던 사연이 돌이켜졌다.

샘물에서는 찬물을 좋아하는 물고기를 기르고 온천에서는 더운물을 좋아하는 온수성물고기를 기를수 있다고 하시면서 샘물, 온천을 적극 리용하는 한편 물고기를 기를수 있는 적지들을 빠짐없이 찾아내여 양어장들을 더 많이 건설함으로써 물이 있는 모든 곳에서 물고기떼가 욱실거리게 하여야 한다고 간곡히 교시하신 위대한 장군님,

그이의 가르치심을 심장깊이 새기고 떨쳐나 자기의 실정에 맞게 양어를 본때있게 내밀어 덕을 보는 탄광일군들과 종업원들의 일본새는 얼마나 훌륭한가.

이런 생각을 하며 우리가 발걸음을 옮긴 곳은 부업농목장이였다.오리사의 알깨우는기계가 주목을 끌었다.농목장에서 자체로 만든 설비인데 그것이 알깨우기률을 높이는데서 큰 은을 낸다는것이였다.

알깨우기에서 기본은 온도와 습도보장이라며 부업농목장 일군인 박광일동무는 우리를 보이라칸으로 이끌었다.알깨우기실의 온도를 보장하기 위해 구들을 놓는 한편 오리호동의 온도를 보장하는 보이라의 페열을 재리용하고있었다.2중으로 온도를 보장하니 동지섣달에도 알깨우기에 지장이 없다며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자체의 힘으로 알깨우는기계를 만들고 무진장한 석탄으로 온도를 보장하니 걱정이 없습니다.새끼오리를 사서 기를 때보다 실리가 크다는것은 더 말할나위 없지요.자체로 고기생산을 늘여 탄부들에게 공급하니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그저 자기의것이 제일입니다.》

그 말이 무척 인상깊었다.

자기의것에 대한 확신, 바로 그것이 대담하고 통이 큰 설계를 주저없이 할수 있게 하는것이 아니겠는가.

다음해에는 오리를 수만마리 길러볼 작정이라고, 그러면 막장에서 일하는 탄부들에게 더 많은 고기를 공급할수 있다고 신심에 넘쳐 말하던 일군의 목소리가 농목장을 나선 우리의 귀전에 이윽토록 공명되여 울리였다.

우리의 취재차는 또다시 달리였다.세멘트생산기지로 가는 길이였다.차창으로 나지막한 산발들이 연신 비껴들었다.심은지 4~5년쯤 되여보이는 나무들이 어깨를 겨루며 자라고있었다.

《버럭산에 아카시아나무를 심었더니 이모저모로 좋습니다.》

동행한 탄광일군이 흔연히 하는 말에 우리는 약속이나 한듯 차창밖을 다시금 눈여겨보았다.버럭산이 분명했다.

우리는 차에서 내려 버럭산으로 올라가보았다.어디서나 흔히 볼수 있는 아카시아나무였지만 버럭산에 뿌리를 박고 푸른 숲을 펼친것이 더없이 장해보였다.

탄광일군은 버럭산에 나무를 심던 때를 추억하였다.

구뎅이를 파고 진흙을 다지고 부식토를 깐 다음 나무를 심자니 품이 곱절로 들었다.그러나 일단 나무를 심어놓으니 그 덕이 나날이 커간다.시꺼멓던 버럭산에 푸른 숲이 펼쳐지니 좋고 또 꿀생산을 할수 있어 좋다.이전에는 자동차를 타고 다른 군의 깊은 산골까지 찾아가 벌을 치군 하였는데 올해 봄부터는 여기 버럭산의 아카시아나무림에서 꿀을 생산할수 있게 되였다.…

일군의 이야기를 들으니 보배란 따로 있는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머리를 쓰고 이악하게 노력하면 쓸모없던 버럭도 진귀한 보배로 만들수 있는것이다.

얼마후 우리는 세멘트직장에 이르렀다.

세멘트싸이로에 적재함을 들이대고있던 자동차가 부릉부릉 발동을 걸고있었다.안심지구 주택보수용세멘트를 출하하는중이라며 직장장 김광원동무는 이렇게 말하였다.

《이앞에 보이는게 다 석회석입니다.이렇게 무진장한 석회석을 두고 이전에는 일군들이 늘 〈세멘트, 세멘트!〉 하며 안타까와했지요.》

탄광에서 자체로 세멘트생산기지를 꾸리기 시작한것은 8년전부터였다고 한다.탄부들의 살림집을 짓자고 해도, 문화후생시설을 건설하자고 해도 세멘트가 절실히 필요했다.세멘트공장에 발이 닳도록 뛰여다니면서도 늘 세멘트에 목말라하는 자재일군들을 보며 한순명초급당위원장은 탄광에 세멘트생산기지를 꾸릴것을 결심하였다.처음에는 적지 않은 일군들이 머리를 기웃거렸지만 초급당일군의 완강한 일본새는 끝끝내 엄두도 낼수 없었던 일을 현실로 펼쳐놓고야말았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여야 보배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직장장이 스스럼없이 한 그 말을 우리는 무심히 들을수 없었다.아무리 곁에 원료가 산같이 쌓여있어도 쓰면 보물이요, 버리면 돌덩이가 되는것이다.

걸음걸음 더욱더 굳어지는 확신을 안고 우리는 취재길을 이어갔다.

살림집건설장이 눈에 띄였다.두동의 5층짜리 살림집건설이 마감단계에 이르고있었다.탄광에서 자체로 생산한 세멘트로 블로크를 찍고 미장작업도 하고있다고, 세멘트가 있으니 마음먹은대로 건설을 내밀고있다고 탄광일군은 말하였다.

잠시후 우리는 입갱하는 탄부들과 함께 인차에 올랐다.갱안의 뽐프장에서 콩나물을 기른다는 이야기를 들었던것이다.

시간이 퍼그나 흘러서야 우리는 북갱뽐프장에 이르렀다.복도로 들어서니 한 녀성이 박막을 걷고 콩나물에 물을 주고있었다.탄광녀맹돌격대 대장 박명실동무였다.알고보니 몇해전부터 녀맹돌격대원들이 자진하여 뽐프운전을 맡아보고있었다.

《여가시간에 콩나물에 물을 주는중입니다.갱안에서 콩나물을 길러보니 정말 잘됩니다.》

그러면서 박명실동무는 박막을 씌워 콩나물을 기르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었다.

땅우에 콩을 펴고 그우에 모래를 1㎝정도 깔아준 다음 박막을 씌워준다.그다음 하루에 한번씩 물을 주는데 갱안의 습도에 의하여 24시간만에 싹이 트고 4일정도 지나면 콩나물이 먹기 좋게 자란다.…

그의 설명을 들으며 뽐프가 있는 곳으로 들어서던 우리는 저도모르게 탄성을 올렸다.뽐프주위의 공간을 리용하여 3단씩 3줄로 콩나물을 기르고있었는데 아래단에는 나무로 만든 콩나물시루가, 웃단들에는 싸리바구니와 마대로 만든 《시루》가 있었다.

마대를 헤쳐보니 한뽐나마 자란 콩나물이 키돋움하며 우리를 올려다보았다.

불현듯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에 옛 모습그대로 꾸려진 1211고지갱도에서 보았던 싱싱한 콩나물이 련상되였다.가렬한 전화의 나날 1211고지의 전투원들을 위해 콩을 보내주시면서 콩나물을 길러 따끈한 콩나물국도 끓여먹이고 두부와 비지도 만들어먹이라고 하시던 어버이수령님의 절절한 음성이 금시 귀전에 들려오는것만 같았다.

탄부들에게 콩음식을 떨구지 않고 먹이기 위해 녀맹돌격대원들은 뽐프장에서 콩나물을 기를것을 발기하였다고 한다.콩나물은 습기가 있고 그늘진 곳에서 잘 자라며 부지를 크게 요구하지 않는것으로 하여 막장에서도 충분히 기를수 있었다.그리고 뽐프운전을 하면서 여가시간에 물만 주면 되므로 녀맹돌격대원들이 얼마든지 맡아할수 있었다.

실지 막장에서 콩나물을 길러보니 실리가 컸다.1주일에 한번씩 콩나물을 수확하는데 이 뽐프장에서 매달 500㎏이상 생산한다는것이였다.

들을수록 흥미진진한 이야기였다.부지와 로력을 따로 내지 않고 공간과 여가시간을 리용하여 막장조건에 적합한 콩나물을 기르니 얼마나 실리적인가.

어느덧 뽐프장을 나서서 막장길을 걷는 우리의 가슴속에는 이런 확신이 차넘쳤다.

예비와 가능성은 어디에나 있다.인민생활향상을 위해 꾸준히 탐구하고 이악하게 노력한다면 무엇이나 귀중한 밑천으로, 유리한 조건으로 만들수 있는것이다.이 어두운 막장까지도.

글 및 사진 본사기자 김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