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식, 계급의식을 높여주기 위한 사상교양사업을 진공적으로 벌리자

생동한 자료를 활용할수록 감화력이 크다

성천군당위원회 일군들의 사업에서

 

성천군당위원회가 일군들과 근로자들속에서 진행하고있는 계급교양사업을 투시해보면 주목되는것이 있다.생동한 사실자료를 적극 활용하여 교양사업의 실효가 최대로 나타나게 하고있는것이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뀔수록 순간도 늦추거나 소홀히 할수 없는것이 반제계급교양입니다.》

지난해 7월 어느날 삭창리에 들려 계급교양실태를 료해하던 최명수군당위원장의 생각은 깊어졌다.지난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계급적원쑤들의 학살만행이 가장 악랄하게 감행된 곳이 바로 삭창땅이였다.그런데 실태는 어떠했는가.현실발전의 요구에 맞게 계급교양을 응당한 수준에서 진행하지 못하고있었다.그러다나니 그 실효가 높지 못했다.

계급적원쑤들의 만행이 감행된 때로부터 수십년의 세월이 흐르고 그때의 사실을 체험한 사람은 단 한명밖에 남지 않았다.이런 조건에서 새 세대들이 삭창땅에 서린 피의 교훈을 잊지 않도록 하자면 계급교양의 도수를 높여나가야 했다.

군당일군들은 삭창리에서 감행한 계급적원쑤들의 만행을 보여주는 자료를 깊이 분석한데 기초하여 군계급교양관 일군들과 함께 학살장소인 자연수직굴에 여러차례 가보았다.또한 자연수직굴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력포구역 장진2동에 사는 리춘선로인을 만나 보다 정확하고 생동한 자료를 수집하여 해설문을 다시 만들었다.

군당일군들은 군계급교양관 관장과의 거듭되는 토의끝에 삭창리에서 감행한 계급적원쑤들의 만행을 폭로하는 직관물을 만들기로 하였다.그리하여 한달후에는 리계급교양실에 삭창리에서 감행한 계급적원쑤들의 만행을 그대로 재현한 반경화가 생겨나고 무고한 인민들을 수직굴에 처넣는 계급적원쑤들의 천인공노할 만행을 보여주는 조각, 유물 및 증거물들도 전시되게 되였다.이것은 생동성과 직관성으로 하여 감화력이 컸다.

그후 삭창리당위원회는 농장원들속에서 계급교양의 도수를 높여나갔다.계급교양실과 자연수직굴, 애국렬사묘에 대한 참관과 복수결의모임, 웅변모임, 영화실효모임, 시랑송발표모임…

생동한 자료를 적극 활용하여 진행한 이런 참신한 교양은 농장원들의 계급의식을 백배하여주었다.

군당위원회는 이에 기초하여 지난해 9월 군안의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의 당, 행정책임일군들과 계급교양강사들이 참가한 가운데 보여주기를 조직하였다.이것은 참가자들에게 세월이 흐를수록, 세대가 바뀔수록 순간도 늦추거나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할것이 반제계급교양이라는 철리를 다시금 새겨주었다.그후 군안의 농장들에 계급교양실이 더 잘 꾸려지게 되였다.

군당위원회에서는 군계급교양관 강사들의 역할을 높이는데도 큰 힘을 넣고있다.

이곳 군계급교양관 강사들은 지난 시기에도 이동강의를 잘하여 대중속에서 반영이 좋았다.하지만 이것으로 만족할수 없었다.이동강의의 실효를 더욱 높이자면 격식과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본 군당위원회일군들은 예술선동형식을 받아들이기 위한 사업을 짜고들었다.군당위원회의 방조밑에 군계급교양관 관장과 강사들은 《잊지 말자 삭창땅의 피의 교훈을》이라는 제목으로 3인시를 준비하였다.3인시에는 계급적원쑤들에게 환상을 가졌다가 사랑하는 아들을 원쑤들에게 빼앗긴 한 농민일가의 비참한 운명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농민의 아들이 잠간 집에 들린적이 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계급적원쑤들은 한번 만나만 보고 돌아가겠다고, 그와 한학급동창생인 자기들도 믿지 못하겠는가고 입에 침발린 소리를 늘어놓았다.그 말에 속은 농민은 아들이 있던 장소를 로출시켰다.결과는 어떠했던가.

놈들은 이리떼처럼 달려들어 뭇매질을 안긴 다음 잔인하게 학살하였다.

감화력이 크고 호소성이 강한 예술선동으로 그 내용을 들려주니 대중에게 주는 여운이 컸다.그후 군계급교양관 강사들은 군안의 협동농장들을 순회하면서 예술선동을 줄기차게 벌려나갔다.실효는 영농실적으로 이어졌다.

이곳 군당위원회일군들의 사업은 보여주고있다.

생동한 사실자료를 적극 활용하여 계급교양을 참신하게 진행할 때 그 실효는 몇십배로 크다는것을.

글 및 사진 본사기자 손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