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식, 계급의식을 높여주기 위한 사상교양사업을 진공적으로 벌리자

천수백리길을 다녀온 사연

단천시계급교양관에서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전체 군대와 인민을 계급의 전위투사들로 키우는 중요한 임무가 계급교양부문 일군들과 강사들의 어깨우에 지워져있습니다.》

단천지방의 자료를 활용하여 계급교양의 실효를 높일것을 결심한 시당위원회의 작전에 따라 시계급교양관 일군, 강사들이 시안의 여러곳을 돌며 자료발굴을 하던 지난 6월 어느날이였다.

단천이 고향이라면서 보통강구역에 사는 한 전쟁로병이 전화를 걸어왔다.조국해방전쟁시기 단천지방에서 활동한 인민유격대의 투쟁내용을 소개한 당시 신문이 있는데 계급교양에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하는것이였다.

시당일군과 함께 학술연구원인 리인팔동무가 즉시 평양으로 떠났다.

소득이 컸다.지난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단천시 리풍리 만춘역뒤에서 애국자들을 총으로 쏘고 휘발유를 뿌려 불을 지르면서 야수적으로 학살한 계급적원쑤들의 만행을 직접 목격한 전쟁로병의 증언자료까지 청취하였던것이다.

편지를 통해 알고있던 동대원구역의 로인을 만나 단천농민폭동에 대한 새 자료를 발굴한것이 무엇보다 큰 소득이였다.

《농민폭동군 지휘자들을 학살한 왜놈들은 그들의 목을 잘라 관청앞 버드나무에 매다는 야수적인 만행을 감행하였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폭동발기자들중 한명과 친척간인 연고로 농민폭동자료를 상세히 기억하고 보관해왔다는 로인의 목소리는 비분에 젖어있었다.그러면서 로인은 농민폭동후 단천지방에서 널리 불리워진 노래가사까지 내놓았다.

천수백리 먼길을 언제 돌아왔는지 몰랐다.즉시 사업에 착수하였다.학술연구원은 새로 발굴한 자료들을 보충하여 계급교양전시판을 더 실효성있게 만들기 위한 문제를 놓고 직관원과 열띤 토의를 하였으며 강사들은 강의안을 다시 작성하느라 밤을 새웠다.

단천지방의 풍부한 자료를 가지고 강의를 깊이있게 진행했는데 참관자들의 반영이 대단히 좋았다.천년숙적 일제와 피의 결산을 하고야말 결의가 굳어진다.계급의 총대를 더욱 억세게 벼리여가겠다.…

얼마전 도안의 계급교양관 강사들의 강의경연에서 강사들인 김향화, 리수정동무들은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일제의 죄행을 단죄하는 강의안에 새로 발굴한 단천농민폭동자료를 풍부하게 반영한것이 은을 냈던것이였다.

시계급교양관 관장 송정원동무는 말하였다.

《우리가 뛰는것만큼 계급교양자료가 풍부해지고 대중의 계급의식이 높아진다는것을 명심하고 만리길도 마다하지 않을 결심입니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김향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