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력갱생으로 승리 떨쳐온 력사를 돌이켜보며

평범한 철도로동계급이 증산경쟁운동의 선구자들로

 

해방후 위대한 수령님의 슬하에서 자라난 수많은 자력갱생의 투사들가운데는 애국운동의 앞장에 선 김회일영웅을 비롯한 정주기관구(당시)의 로동계급도 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자력갱생은 오래고도 간고한 투쟁의 길에서 시종일관 높이 발휘되여온 우리 혁명의 자랑스러운 전통입니다.》

조국이 해방된 이듬해 10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몸소 정주기관구(당시)를 찾아주시였다.

그날 건국사업에서 난관으로 되고있는것은 철도운수사업이라고 하시면서 고열탄이 없어 렬차운행에서 큰 지장을 받고있는데 누가 가져다줄것을 기다릴것이 아니라 애국적열성과 창발성을 발휘하여 자체의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은 정주기관구 로동계급의 가슴을 애국열의로 활활 불타게 하였다.

사실 그들은 많은 기관차를 세워두고도 그것을 수리하여 쓸 생각은 하지 않고 기관차가 부족하다고 우는소리만 하면서 난관을 뚫고나갈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있었다.

정주기관구만이 아니라 전국의 철도형편도 마찬가지였다.철도의 실태가 이러하다보니 그해 봄 흥남비료공장(당시)에서 생산한 비료를 제때에 수송하지 못하여 농업생산에 큰 지장을 주었으며 소금도 제대로 실어나르지 못해 수산부문에서 많은 물고기가 허실되게 되였다.또한 식량을 제때에 수송하지 못하여 인민생활에도 큰 지장을 주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다녀가신 후 정주기관구 로동계급은 수령님의 현지교시를 관철할 결의를 굳게 다지고 그 실현을 위한 투쟁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섰다.

그때 그들앞에 나선 가장 큰 애로는 기술문제와 연료문제였다.파괴된 기관차를 수리하자면 기술이 있어야 했다.그런데 패망전 일제놈들은 높은 기술이 요구되는 기관부수리같은것을 제놈들끼리 하면서 조선사람들은 수리현장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게 했다.그리하여 해방직후 정주기관구에는 대수리를 할수 있는 기능공이 한명도 없었다.게다가 설비와 자재도 부족하였다.

그러나 정주기관구 로동계급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안겨주신 크나큰 믿음에 기어이 보답할 일념으로 주저없이 기관차수리에 달라붙었다.밤낮으로 고심하던 끝에 그들은 완전히 파괴되였던 기관차 한대를 기어이 살려내고야말았으며 이를 계기로 철도수송을 정상화하기 위한 투쟁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섰다.

당시의 《로동신문》은 정주기관구 로동계급의 투쟁에 대하여 이렇게 보도하였다.

《…일제시대에 룡산기관구에서만 할수 있던 기관차의 대수리를 정주기관구에서도 능히 할수 있게 하였고 북조선에 없는 부속품들중 많은 부분을 자급자족하도록 창의적으로 연구제작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일제시대에 사용치 못한다고 돌보지 않던 28대의 기관차를 수리하여 북조선 각 선에 복무시켰으며 42대의 대수리와 87대의 중수리와 17대의 연통환치와 기타 수많은 소수리의 방대한 성과를 거두었다.…》

정주기관구 로동계급은 기관차수리에 달라붙는 한편 연료를 해결하기 위한 투쟁에 떨쳐나섰다.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정주기관구와 가까운 안주탄광(당시)의 석탄은 질이 낮아 기관차연료로 쓸수 없는것으로 알려져있었다.

그러나 자기의 힘을 굳게 믿은 그들에게 불가능이란 없었다.그들은 안주탄으로 기관차를 움직일것을 결심하고 1946년 12월 채탄돌격대를 무어 안주탄광으로 달려갔으며 자기들이 캐낸 석탄으로 17t의 알탄을 만들어 기관차에 싣고 평양역까지 시운전을 하는데 성공하였다.이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안겨주신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이 안아온 자랑찬 결실이였다.

당시 안주탄광에서는 로력과 갱목이 모자라 석탄을 제대로 캐내지 못하고있었다.정주기관구의 로동계급은 《우리들에게 부과된 최대의 임무는 기차를 원활히 돌리는데 있는것이며 기차가 정지되는 날은 우리들의 생명도 정지되는것이다.》라고 웨치며 또다시 안주탄광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께서 애국운동의 앞장에 선 자기들의 소행을 크게 여기시고 사랑의 선물을 보내주실줄이야 어찌 알았으랴.

나라형편이 어려운 때에 수많은 작업복과 신발을 보내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어버이사랑에 눈굽을 적시며 채탄돌격대원들은 억척같이 석탄을 캐냈다.그리하여 하루 겨우 30~60t밖에 생산하지 못하던 이 탄광에서 하루평균 300t생산목표를 돌파하고 최고 380t까지 생산하는 혁신을 일으켜 나라의 전반적인 철도운행을 국내산 연료로 정상화할수 있는 밝은 전망을 열어놓을수 있었다.

정주기관구 로동계급의 애국적발기는 조국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으로 여기며 건국사업에 한몸바치려는 열렬한 애국심과 헌신적인 투쟁정신의 발현이였으며 이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건국사상을 구현하기 위하여 로동자들속에서 벌어진 증산경쟁운동의 본보기로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6(1947)년 1월 20일 정주기관구 로동계급에게 감사문을 보내주시였으며 그들의 창발적애국운동을 이 운동의 선구자의 이름을 붙여 《김회일운동》으로 부르게 하시고 전국의 모든 철도부문 일군들과 로동자들이 이 운동을 힘있게 벌릴것을 호소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열화같은 충성과 새 조선의 주인된 자각이 지펴올린 김회일운동의 불길은 그후 인민경제 모든 부문, 모든 단위에로 세차게 타번져 새 조국건설에 떨쳐나선 우리 인민들의 투쟁을 적극 고무추동하였다.

본사기자 리남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