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구한 력사를 자랑하는 풍치수려한 대성산

 

예로부터 대성산은 천년강국으로 이름떨친 고구려의 강대성과 선조들의 슬기와 용맹을 보여주는 력사유적들이 많고 경치 또한 아름다운것으로 하여 평양의 자랑으로 되여왔다.

얼마전 우리는 봉우리마다에 락락장송이 우거져있고 참나무, 밤나무가 무성하며 단풍이 들기 시작한 갖가지 나무잎새들이 수려한 풍치를 펼친 대성산을 찾았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대성산은 우리 민족의 유구한 력사가 깃들어있는 아름다운 명승지입니다.》

우리는 먼저 대성산의 중심부에 솟아있는 장수봉에 올랐다.

장수봉!

어버이수령님께서 고구려의 장수왕이 대성산에 성을 쌓고 평양으로 수도를 옮긴 공적을 전하는 뜻에서 장수봉이라고 몸소 이름지어주신 유서깊은 봉우리에 올라 산성의 옛 지맥들을 굽어보니 민족의 유구한 력사가 교과서의 글줄과도 같이 생생히 떠올랐다.

대성산의 력사에 정통한듯싶은 대성산유적관리소의 한 일군이 들려주는 구수한 《력사강의》에 우리는 절로 심취되였다.

…평양으로 수도를 옮기기 위한 준비를 해오던 고구려는 광개토왕때부터 평양성건설을 본격적으로 추진해오다가 장수왕때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였다.구룡산 또는 룡산으로 불리우던 이곳은 고구려시기 나라방위를 위해 큰 성을 쌓은 때부터 대성산으로 불리우게 되였다.…

대성산을 한번 돌아보면 동방에서 가장 강성한 대국이였던 고구려의 력사에 대하여 잘 알수 있을것이라고 하던 말이 우연하지 않았다.

장수봉에 세운 루각에서 평양의 유구한 력사와 흥미있는 전설이야기를 들으며 소문봉으로 향한 우리의 발걸음은 절로 빨라졌다.소문봉일대에 고구려시기 수도를 평양으로 옮겼을 때 쌓은 옛성터가 그대로 있기때문이였다.

고구려의 애국명장인 연개소문의 이름에서 유래된 소문봉은 대성산에서 소문이 날 정도로 경치가 아름답고 산세가 수려하였다.소문봉 역시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름지어주신 봉우리였다.

우리와 동행한 대성산유원지관리소 일군은 우리 인민들은 물론 조국방문의 나날 대성산을 찾는 해외동포들도 소문봉에는 빠짐없이 오르군 하는데 옛성터와 안학궁터를 바라보며 민족적자존심과 긍지를 간직하군 한다고 흐뭇한 어조로 말하였다.

대성산성의 성돌들을 손으로 만져보니 자연돌을 일정한 크기의 4각추모양으로 다듬어 벽돌쌓듯이 서로 어긋물려 일매지게 쌓아올린 축조기술이 아주 섬세하였다.

경치좋은 소문봉을 내린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체80(1991)년 2월 12일에 찾으시였던 광법사에로 향하였다.

고구려시기 평양에 세운 절인 광법사는 선조들의 우수한 건축술과 유구한 문화전통을 보여주는 귀중한 력사유적이였다.

광법사의 중심건물인 대웅전의 자태는 웅장하고 화려하면서도 고색이 짙었다.대웅전은 2층으로 보이게 지은것이 특색있었다.

광법사사적비에는 광법사를 소개하기에 앞서 절이 자리잡고있는 평양에 대하여 새겨놓은 글도 있었는데 동방에는 왕검선인의 나라가 있고 나라의 동쪽에는 대성산(구룡산)이 있다고 하였다.왕검선인의 나라라는것은 평양이 우리 민족의 첫 국가를 세운 단군이 살던 곳이라는것을 증명하는 귀중한 력사자료로서 대성산이 단군조선의 수도와 더불어 우리 민족의 력사와 깊은 인연을 맺고있다는것을 보여주고있었다.

이어 우리는 사방이 확 트인 대성산성 남문에 올랐다.

수천년세월의 풍파속에서 흔적조차 찾아볼수 없이 묻혀있던 남문이며 안학궁터, 광법사를 비롯한 대성산의 력사유적들을 하나하나 발굴조사하여 로동당시대에 빛을 뿌리도록 하여주신분은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이시였다.

로동당시대와 더불어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는 대성산은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안겨주고 애국의 마음을 키워주는 아름다운 인민의 명승지로 길이 빛날것이다.

글 본사기자 리수정

사진 본사기자 리경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