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 대 1과 500 대 0

원산구두공장의 한 일군이 들려준 이야기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부강조국건설의 만년재부인 자립경제를 굳건히 고수하고 더욱 튼튼히 다져나가자면 수입병을 없애고 생산과 건설에서 국산화비중을 높여야 합니다.》

원산구두공장에 대한 우리의 취재는 500과 1이라는 두개의 수로부터 시작되였다.

사출작업반 생산현장에서 우리와 만난 공장일군의 손에는 한개의 구두창이 들려있었다.어느 구두생산단위에서나 볼수 있는 반제품이였다.하지만 일군의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류다른 눈길로 보게 하였다.

《지난 시기 우리 공장에서는 구두창생산에 염화비닐 100kg당 200g정도의 수입산 발포제를 리용하군 하였습니다.다시말하면 국내원료 대 수입자재의 비률이 500 대 1이였습니다.》

500 대 1,

따져보면 수입자재의 량은 많지 않았다.100kg의 염화비닐로 만들수 있는 각종 신발창의 개수까지 고려해보면 한개의 신발창생산에 드는 수입자재의 량은 사실상 보잘것없다고 할수도 있었다.

일군의 이야기는 계속되였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허용할수 없었습니다.왜냐하면 그것은 단순한 500 대 1이 아니라 우리의것 대 남의것이기때문이였습니다.》

구두창은 크지 않다.그렇지만 이 공장의 종업원들은 제품생산을 실무적인 사업으로가 아니라 우리의것 대 남의것이라는 치렬한 격전으로 여긴것이였다.

《우리는 초림계탄산가스에 의한 염화비닐발포창생산공정을 확립하여 수입산 발포제가 없이 구두창을 만들어내고있습니다.결국 500 대 1이 500 대 0으로 된셈입니다.새 기술도입으로 구두창의 무게도 종전보다 15~20g 더 경량화되였습니다.》

물론 순수 경제학적측면에서 이러한 변화들을 론한다면 그것은 요란한 원가절약이나 생산장성을 의미하는것은 아니였다.하지만 그속에는 우리의것으로 남의것 부럽지 않은 우리의 제품을 남들이 보란듯이 더 많이 생산하려는 창조본때가 비껴있었다.

《사실 초림계탄산가스에 의한 염화비닐발포창생산공정을 확립하던 과정에는 실패도 많았습니다.그때마다 우리는 생각했습니다.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왜 우리가 생산하는 신발의 상표를 〈매봉산〉으로 하자고 하시였으며 나라가 허리띠를 조이는 속에서도 천만금을 들여 일터를 우리 나라 신발공장의 본보기, 표준으로 꾸려주셨는가.가렬처절하였던 전화의 나날에는 총대로 매봉산을 지켰다면 오늘날에는 우리의 힘과 기술로 사회주의조국의 존엄을 사수할것을 바라는 당의 믿음과 기대가 〈매봉산〉, 이 글발에 함축되여있지 않는가.설사 그것이 500 대 1이 아니라 5 000 대 1, 50 000 대 1이라고 하더라도 남의것을 가지고 〈매봉산〉을 지킬수 없다.이렇게 우리는 주저와 동요를 물리치며 끝끝내 새로운 생산공정을 확립하였습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전국신발전시회-2018》과 《봄철전국신발전시회-2019》, 제11차 평양제1백화점상품전시회에서 《매봉산》신발에 대한 호평중 하나가 바로 경량화였다고 한다.

《중요자재를 국산화하는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원료, 자재로 더 좋은 우리의 신발을 더 많이 만들어내는것은 더 중요합니다.우리는 목표를 부단히 높이 내세우고 인민이 선호하는 〈매봉산〉신발의 개발생산에 계속 박차를 가하겠습니다.》

일군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취재자료를 다시금 더듬어보았다.

결국 취재는 500과 0이라는 두개의 수로 끝난것이였다.

500 대 1과 500 대 0, 그것은 단순히 수량들사이의 비률관계가 아니였다.

우리의것과 남의것 나아가서 자존과 의존에 관한 문제였다.

본사기자 김충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