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감행한 악랄한 비밀전의 내막을 파헤친다(8)

전범죄를 감추기 위한 증거인멸행위

 

일제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직후 증거인멸에 달라붙었다.

1945년 7월 26일 미국과 영국, 중국 국민당정부가 도이췰란드의 포츠담에서 일본에 무조건항복을 요구하는 선언을 발표하였다.선언은 일제침략자들의 정권과 세력을 청산하고 무장력을 해체하며 일본에서 전범자를 처벌하고 민주주의적자유를 실현하며 일본을 점령할것 등을 선포하였다.

포츠담선언이 발표된 직후 일제는 그 요구를 거부하였다.그러나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앙양되는 반일투쟁과 쏘련의 대일전쟁참전으로 더는 견딜수 없게 된 일제는 1945년 8월 14일 무조건항복에 관한 포츠담선언을 수락하였다.

포츠담선언가운데 전범자들에 대한 처벌항목이 있었기때문에 일제는 전쟁과 관련한 자료를 일체 없애버리려고 꾀하였다.

일제는 증거인멸작업을 포츠담선언수락후 2주일어간에 본격적으로 벌렸다.그것은 일제가 포츠담선언을 수락한것이 8월 14일이였지만 미군이 일본본토에 발을 들여놓은것은 8월말이였기때문이였다.다시말해서 일본이 항복은 했어도 점령되지 않은 2주일정도의 기간이 남아있었기때문이였다.

노보리또연구소와 관련된 증거서류의 소각, 실험기구와 제조한 무기들을 파괴하는 작업을 선참으로 내밀었다.

1945년 8월 15일 오전 륙군성의 제일 중추인 군사과로부터 노보리또연구소의 《HU》호와 관련한 자료 및 기재는 우선적으로 증거를 인멸할데 대한 특수연구처리요강이 하달되였다.《HU》호라는것은 미국본토타격을 노린 공격용무기로서의 기구폭탄을 의미하였다.

전쟁기간 노보리또연구소는 공습피해를 받지 않았으므로 건물은 파괴된것이 없었다.이것을 파괴하는데 숱한 사람들이 동원되였다.

여기에 동원되였던 관련자들은 《구뎅이를 파고 노보리또연구소의 증거서류와 실험기구들을 소각하고 묻어버렸다.》, 《증거인멸작업으로 연구소주변은 연기로 가득찼다.》고 이구동성으로 증언하였다.

노보리또연구소가 소개되였던 곳에서는 일제의 패망직후 불태워 묻어버린 실험기구들과 불탄 나무찌꺼기, 유리가 섞인 잔해들이 대량 발굴되였다.

이께다지방에서는 위조지페처리가 진행되였다.8월 15일까지 위조지페를 인쇄하였으므로 대량의 위조지페가 남아있었다.

위조지페는 묶음으로 되여있었기때문에 불에 잘 타지 않아 잔해가 남아있었다.

일제는 위조지페를 다마강에 버리기로 하였으나 강기슭에 표착되여 바다에서 처리하였다고 한다.

연구소관계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증거인멸을 위하여 땅크까지 동원되였다고 한다.

노보리또연구소에 있던 인쇄설비는 파괴하여 땅에 묻어버렸거나 회사들에 판것으로 추측되고있다.

또한 위조지페와 기구제작에 리용하던 종이재료들은 그 지방의 종이업자들에게 팔아넘겼다.

전범죄를 감추어보려고 발악한 증거인멸행위는 오히려 일제가 저지른 피비린 전범죄의 엄중성을 부각시켰으며 일본의 도덕적저렬성만을 세계앞에 드러냈다.

본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