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성땅의 《복숭아나무집》

자성군도로건설대 로동자 안석철동무와 그의 가정

 

복숭아나무는 추운 지방에서 잘 자라지 못하는것으로 알려져있다.그러나 두메산골이며 춥기로 소문난 자성땅의 곳곳마다에서는 오늘 《자성9월복숭아》로 불리우는 크고 맛좋은 복숭아가 그윽한 향기를 풍기며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고있다.우리는 이제 여기에 그 사연을 전하려고 한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애국은 자기 집뜰안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자성군도로건설대 로동자 안석철동무는 앞지대에서 떠온 한그루의 복숭아나무를 북부고산지대의 풍토에 순화시키고 수천수만그루의 나무모를 퍼치여 《자성9월복숭아》가 국가품종으로 등록되도록 한 안성하로인의 둘째아들이다.

집뜨락의 복숭아나무숲에서 우리와 만난 안석철동무는 이렇게 말머리를 뗐다.

《한그루의 복숭아나무에서 첫 씨를 받던 때로부터 이제는 퍼그나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지금으로부터 50여년전 자성땅사람들에게 복숭아구경이라도 시킬 소박한 마음으로 자그마한 복숭아나무를 애지중지 키우던 안성하로인과 그의 안해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상무위원회 북청확대회의에서 하신 결론 《과수원조성사업을 전인민적운동으로 전개할데 대하여》를 크나큰 격정속에 받아안게 되였다.

과수원을 대대적으로 늘이는 사업은 자기 세대의 행복을 위한 사업일뿐만아니라 우리 후대들의 행복을 위한 영광스러운 사업이라고 가르쳐주신 위대한 수령님!

그날 안성하로인내외는 복숭아를 정성다해 가꾸어 자성군아이들이 복숭아를 마음껏 먹을수 있게 하리라 굳게 맹세했다.그들은 봄과 여름이면 터밭의 곡식보다 복숭아나무에 더 마음쓰며 덧거름도 듬뿍 주었고 온갖 정성을 기울이였다.겨울이면 나무가 얼세라 새끼줄을 두툼히 감아주었고 모진 강추위가 들이닥칠 때면 덮고자던 이불도 기꺼이 들고나왔다.

어느날 며칠동안 《과수재배경험집》을 붙안고 밤을 새우다싶이 하던 맏아들이 무슨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무릎을 치며 뜨락으로 달려나갔다.한동안 애어린 복숭아나무를 유심히 살펴보던 그가 아버지에게 말했다.

《두가지로 뻗은 복숭아나무를 갈라심는것이 어떻습니까.일명 가지심기라고 하는 과일나무번식방법인데 이렇게 하면 더 많은 복숭아나무를 키울수 있을것 같습니다.》

이렇게 되여 복숭아나무는 두그루로 되였다.한해가 저물어가던 어느날이였다.때식을 끓이느라 아궁에 장작불을 지피던 안해가 급히 남편을 찾았다.

《여보, 훈훈한 부엌바닥을 파고 거기에 씨를 심는것이 어때요?》

《좋은 생각이요.큼직한 영양단지를 만들어서 심기요.》

그들은 함을 짜서 영양단지를 만든 다음 300알의 복숭아씨를 심고 부엌바닥에 묻었다.초봄에 거기서 7개의 싹이 움터나왔다.그 싹들이 뒤뜰에 옮겨졌다.

3년후 9그루의 복숭아나무에 열매가 맺혔다.그들은 거기서 수확한 씨를 다음해에 부엌바닥에 심고 다시 싹을 틔웠다.그리고 봄이 오면 뒤뜰에 나무모를 내고…

그러기를 10여년, 마침내 자성땅에 뿌리내린 복숭아나무는 북부지대의 기후와 토양조건에 완전히 적응되게 되였다.

그 나날 안성하로인과 그의 가정은 집뜨락만이 아니라 온 자성땅에 복숭아꽃향기가 넘치게 할 일념을 안고 집뒤의 둔덕을 깎아 다락밭을 만들었으며 비경지들을 일구어 복숭아나무모밭면적을 늘여나갔다.어느덧 수백평이던 밭면적이 여러정보로 늘어났다.로인내외는 여기에서 생산된 수만그루의 복숭아나무모를 군안의 협동농장들과 학교, 휴양소, 공장, 기업소들에 보내주었다.그후 자성땅의 복숭아나무는 중강군과 시중군, 화평군과 만포시, 강계시에도 퍼져갔다.

지금도 안석철동무는 크고 잘 익은 첫물복숭아를 넣은 배낭을 메고 상평고개를 넘어 군소재지로 떠나던 날을 잊지 못하고있다.

《지금으로부터 꼭 26년전의 일입니다.그해 례년에 없이 잘된 복숭아를 놓고 깊은 생각에 잠겨있던 아버지가 자식들을 앉혀놓고 말하더군요.이제는 우리 수령님께 다진 맹세대로 자성군의 아이들에게 복숭아를 먹일수 있게 되였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수백㎏의 첫물복숭아를 군소재지의 유치원, 탁아소아이들에게 보내주게 되였습니다.전 안해와 함께 련 이틀동안 복숭아를 지고 상평고개를 넘었지요.그렇게 시작된 걸음이 이제는 30년을 가까이하고있습니다.》

절세위인의 고귀한 가르치심을 받들어 수십년세월 자라나는 후대들을 위해 헌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자성땅의 《복숭아나무집》일가!

그 걸음은 온 나라가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던 고난의 시기에도 드틸줄 몰랐고 안성하로인의 손자, 손녀들이 다 자란 오늘에도 변함이 없다.시련의 나날이 계속되던 어느해 가을 자식들이 상자마다에 가득한 복숭아를 조금 덜어내려고 한적이 있었다.

그때 로인은 《제 집 뜨락에 있다고 해서 자기의것이라고 생각지 말아라.저 복숭아는 나라의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공화국창건 50돐을 맞는 해 안성하로인과 그의 가정은 집주변과 산기슭의 과수밭에서 따들인 8t의 복숭아를 군안의 모든 유치원, 탁아소아이들과 주민들에게 보내주었다.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들의 소행을 보고받으시고 은정어린 감사를 보내주시였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우리는 집주인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뜨락에 나섰다.뒤돌아보니 이제는 60년을 가까이한다는 오랜 살림집의 대들보가 올해에도 1t이 넘는 복숭아를 땄다는 무성한 과일나무숲과 대조를 이루며 눈가에 밟혀왔다.그리고 가정에 소중히 보관된 많은 대회참가증들과 훈장, 메달증서들이 한생의 기쁨이고 가보라고 하던 사회주의애국공로자 안석철동무의 젖은 목소리가 가슴을 치며 다시금 귀전에 울려왔다.

본사기자 리남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