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인간, 아름다운 인간관계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실제로 당과 조국의 품속에서 그 자애로운 은덕에 보답하기 위하여 자기의 모든 힘과 지혜를 바쳐 일하는 사람들의 보람찬 생활은 우리 시대의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운 하나의 화폭인것이다.》

이 이야기는 이미 18년전에 세상을 떠난 한 영예군인작가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우리의 문단에 지울수 없는 흔적을 남긴 리재남, 그와 더불어 끝없이 펼쳐지고 끝없이 이어지고있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생활이 있다.

* *

지금으로부터 57년전,

《붕-》

렬차의 출발을 알리는 소리가 길게 울렸다.하지만 사리원청년역 기다림칸안에서는 굳게 잡은 두손이 좀처럼 서로 떨어질줄 몰랐다.

《편지하세요.》

《…》

제대배낭을 진 쌍태머리처녀는 간절한 어조로 말을 떼는데 그에게 두손을 맡긴 청년은 머리를 수그린채 아무 말도 없었다.

기적소리, 호각소리, 바래우는 사람들의 목소리…

이어 청년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어서 떠나오.》

하지만 처녀의 두발은 땅에 못박힌듯 움직일줄 몰랐다.

…그들은 참으로 류다른 인연을 맺고있었다.

서재렬은 군사임무수행중 부상당한 리재남의 수술에 참가했던 간호원이였다.리재남의 건강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있는 서재렬이 옛 전우와의 뜻밖의 상봉속에 아직 그가 가정을 이루지 못하고있다는 사실을 듣게 된것이다.

그런 리재남이 처녀에게 편지는 어떻게 쓴단 말인가.그것은 제대되여 해주의학대학입학통지서를 안고 떠나는 서재렬의 두발을 꽉 붙잡았다.…

《난 동무곁에 남겠어요.동무의 몸에는 지금… 제 피도…》

이러며 서재렬은 대학입학통지서를 색바랜 배낭속에 깊숙이 넣었다.

그후 그들은 가정을 이루었다.

당시 리재남은 황해북도일보사 기자로, 서재렬은 황해북도방송위원회 기자로 사업하게 되였다.

결혼한 날 달빛이 흘러드는 창가에 앉아 리재남은 서재렬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재렬이, 고맙소.내 비록 오래 살수 없고 후대를 남길수 없는 몸이지만 심장이 뛰는 매일매일을 무의미하게 보내지 않겠소.》

이것은 리재남동무가 흥분에 떠서 한 빈말이 아니였다.그후 그는 진할줄 모르는 정열로 온몸을 깡그리 태우며 문학수업을 하였다.

생의 전기간 그는 수많은 중편, 단편소설, 100여편의 서정시, 시초, 가사, 동요, 동시를 출판물에 발표하였을뿐아니라 근 100명의 문학가후비를 양성하였다.

조국을 위해 청춘을 바치였고 조국의 미래를 위해 자기의 생을 초불처럼 태운 리재남동무의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것인가.

하지만 훌륭한 남편의 뒤에는 훌륭한 안해가 있듯이 말 못할 괴로움과 사연을 가슴에 묻어둔채 한생을 묵묵히 영예군인남편의 동지가 되고 문우가 되여주며 필사원, 독자, 통신원이 되여준 서재렬동무의 삶도 그에 못지 않게 고결한것이였다.

우리는 여기에 그가 수십년동안 걸어온 인생의 자서전과 같고 훈장과 같은 많은 호칭을 적어본다.

《삼지연혁명전적지건설장 석공작업반 명예석공》

《황해제철련합기업소 명예용해공》

《천리마제강련합기업소 초고전력전기로 명예용해공》

《수도려객운수국 송산궤도전차사업소 명예종업원》

《칠골혁명사적지 명예종업원》

그곳마다에 슴배인 그의 땀방울을 어찌 다 헤아릴수 있으랴.

지금까지 그가 모은 파철만 해도 1 300여t, 위대한 수령님들의 령도업적이 깃들어있고 경애하는 원수님의 발자취가 어려있는 사적지마다에 심은 꽃과 나무만 해도 수만그루, 병사들에게 보내준 원호품 3만여점…

하기에 그를 아는 사람들은 조국의 제일 중요하고 힘든 곳에 가보면 서재렬녀성의 삶의 흔적을 찾을수 있다고들 한다.

어딜 봐도 특별한데란 찾아보기 힘든 로인, 80고령인 그에게 류다른것이 있다면 온몸에 남에게 피부를 이식해준 자리가 가득한것이고 험한 일을 찾아하느라 두손바닥에 장알이 박힌 그것이였다.

영예군인의 일생의 길동무가 된것만도 아름답다.하물며 영예군인남편과 함께,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에는 그의 몫까지 합쳐 나라에 보탬되는 일을 스스로 찾아해온 서재렬녀성의 인생관은 얼마나 고결한것인가.

하지만 그의 생활을 들여다보느라니 그렇듯 돋보이는 서재렬녀성의 뒤에는 또 훌륭한 인간들의 삶이 아름답게 비쳐져있었다.

서재렬로인은 지금 보통강구역의 양지바른 곳에 자리잡고있는 아담한 살림집에서 살고있다.

만경대구역 칠골2동에서 살던 그가 어째서 보금자리를 옮겼는지.

여기에도 사연이 있었다.

그에게는 몸이 아프면 찾아오는 일군들도 있고 명절날이면 함께 즐기자고 모여오는 유명무명의 식솔들도 있다.그리고 이제는 혈육처럼 가까와진 만경대구역 팔골2동의 오영순, 홍성옥어머니도 있고 나어린 꼬마들도 많다.

그속에 바로 서재렬로인의 고결한 인생관에 감동되여 그를 자기 집의 어머니로 모신 고마운 방송원도 있다.

지금 그가 살고있는 서장동의 그 집이 바로 조선중앙방송위원회 공훈방송원 박옥희동무네 집이다.

방송원네 가정에는 지금 서재렬로인까지 세식구가 오붓이 살고있다.

늘 일에 묻혀 나무를 가꾸고싶어하는 서재렬로인의 심정을 헤아려 박옥희동무네 부부는 아빠트밑 빈땅에 나무모밭을 꾸려주었다.

온종일 그곳에서 꽃과 나무를 가꾸는것은 서재렬로인의 하루일과이다.그런 그를 위하는 박옥희동무네 부부와 이웃들의 진정은 또 얼마나 뜨거운것이던가.

지난해 어느날 여느때와 같이 길다란 호스를 끌고 나무모밭을 향해 걷던 서재렬로인은 뜻밖의 광경을 목격하게 되였다.

낯익은 이웃들이 자기에게로 달려오고있는것이 아닌가.

그날은 서재렬로인의 생일이였다.그날 보기만 해도 향기가 물씬 풍기는 꽃묶음을 안겨주며 녀인들이 한목소리로 하던 말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 서재렬로인은 자주 되새기군 한다.

《우리 아빠트 애국자할머니, 건강해서 오래오래 앉아계십시오.》

우리, 그 말이 너무도 정답고 소중하게 들려와 서재렬로인은 코마루가 찡해지는것을 금할수 없었다고 한다.

어찌 그렇지 않으랴.

단 한명의 혈육도 없는 그에게 있어서 자기가 하는 일을 애국으로 여겨 지지해주고 떠밀어주며 도와주고 내세워주는 고마운 사람들, 아플세라 찾아오고 힘들세라 부축해주며 뜨거운 정과 사랑을 합쳐주는 그런 손길이 없었다면 정녕 한생토록 이어올수 없는 애국의 한길이였다.

오늘도 그는 정다운 이웃들 그리고 만경대구역과 보통강구역의 고마운 사람들, 수많은 제자들의 뜨거운 사랑과 정에 떠받들려 값높은 삶의 길을 변함없이 걷고있다.

* *

한 영예군인작가의 아름다운 인생관으로부터 시작된 우리의 이야기는 수많은 아름다운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로 끝맺게 된다.

하지만 생활이 낳는 이야기가 끝이 없듯이 이 땅에는 아름다운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도 끝이 없으리라.

아름다운 사람뒤에 또 아름다운 사람들로 가득찬 우리 사회, 이 아름다움의 생명유기체가 바로 세상에 둘도 없는 우리 식 사회주의인것이다.

본사기자 오은별